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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갑의 난독일기] 보이는 것 너머

 

여덟 살일까요, 아홉 살일까요.

 

책가방을 등에 멘 사내아이가 무인카페 안으로 들어옵니다. 잠시 둘러보더니 자판기에 카드를 밀어 넣습니다. 그러곤 버튼을 눌러 메뉴를 선택합니다. 계산을 마친 자판기가 카드를 뱉어냅니다. 뱉어낸 카드를 아이가 갈무리합니다. 아이의 눈길이 다시 자판기로 향합니다. 갸웃거리는 게 무언가 망설이는 눈치입니다. 주춤주춤, 아이의 손끝이 자판기 어디론가 향합니다. 아마도 얼음이 든 음료가 먹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버튼을 누르자 자판기에서 얼음이 쏟아집니다. 먼저 컵을 놓고 버튼을 눌러야 한다는 걸 아이는 몰랐습니다. 손바닥으로 얼음을 받아 보지만 속수무책입니다. 와르르, 밀려 내려온 얼음 알갱이가 가게 바닥에 나뒹굽니다. 놀란 아이의 표정도 함께 나뒹굽니다. 이런 걸 엎친 데 덮친다고 하는 걸까요. 놀리기라도 하듯, 이번엔 음료수가 얼음 위로 쏟아집니다. 종이컵에 담겨야 할 음료수가 철철 쏟아져 가게 바닥을 흥건히 적십니다. 아이는 도망치듯 가게를 빠져나갑니다.

 

아이는 떠났지만, 아이의 모습은 가게 안 CCTV에 고스란히 남습니다. 떠났다고 떠난 게 아니듯, 보인다고 해서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세상은 보고 듣고 배우고 경험한 대로 움직여주지 않습니다. 움직이는 건 하나인데,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걸 느끼게 합니다. 이를테면, 계절과 기억과 상처와 흔적 같은 것 말입니다. 이번 경우만 해도 그렇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인카페 문이 다시 열립니다. 들어서는 건 도망치듯 떠났던 그 사내아이입니다. 쭈뼛거리는 발걸음으로 들어온 아이는 CCTV를 향해 꾸벅 인사합니다. 그러곤 쥐고 있던 쪽지를 자판기 옆에 두고 가게를 빠져나갑니다.

 

뒤늦게서야, CCTV 영상을 확인한 주인이 무인카페로 향합니다. 아이가 남긴 쪽지도 궁금하고, 바닥에 흥건한 물기도 닦을 요량입니다. 서둘러 가게에 도착했지만 흥건했던 물기는 보이지 않습니다. 자판기 주변도 말끔합니다. 그새 다녀간 또 다른 손님이 어질러진 가게를 치우고 갔기 때문입니다. 주인은 휴지통을 뒤져서 버려진 아이의 쪽지를 찾아냅니다. 물기가 적신 체 꼬깃꼬깃 구겨진 쪽지에는 천 원짜리 한 장과 함께 이런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무인카페를 처음 와서 모르고 얼음을 쏟았습니다. 다음부터는 그러지 않고 치우겠습니다. 작은 돈이지만 도움 되길 바랍니다. 장사 오래오래 하시고, 행복하게 지내세요.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어떤 기분이었기에, 주인은 그 쪽지를 아이가 나온 CCTV 영상과 함께 인터넷에 올렸을까요. 어떤 느낌과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고 세상 밖으로 소식을 전했을까요.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니 희망을 버리지 말자는 뜻일까요. 아니면, 다리만 만져보고 전체를 상상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자는 걸까요. 글쎄요. 나무만 보면 숲을 보지 못하는 것과도 같은 맥락이겠지요. 한참을 생각하다가 거울에 비친 내게 물었습니다. 자세히 볼 욕심에 빌딩 숲에 들었다가, 세상은커녕 사람조차 못 보고 있는 건 아니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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