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의 큰 별이요, 국민배우라 불린 안성기가 지난 1월 5일 7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그는 다섯 살 때 아역배우로 데뷔하여 70년간 17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우리나라 3대 영화상인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 대종상영화제의 남우주연상을 받아 트리플 크라운을 이루었으며, 그 외 수상 경력도 너무나 화려하다.
영화계는 특별히 고인이 주연을 내려놓기 시작했던 1990년대 후반 이후 그의 모습을 높이 산다. 조연도 흔쾌히 출연했고, 작은 역을 맡아서도 혼신을 다해 연기했다. 앞자리를 내어주고 뒤로 물러서 스스로 내리막길을 갈 때에도 그 길을 아름답게 만들었던 그였다. 그는 한결같이 후배나 스태프들의 어려움을 헤아리고 그들의 필요를 도왔다. 한국 영화계가 어려울 때 스크린 쿼터제 폐지를 위한 영화인공동대책위원장을 맡았고, 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우리나라 독립영화의 후원자를 자처했으며, 유니세프 친선대사를 맡기도 했다. 영화인으로서의 품격을 갖추고 선한 영향력을 보인 그의 유산을 계승하겠다는 후배들의 다짐이 이어지고 있다.
이제 영화가 아닌 그의 아들 이야기를 할까 한다. 십수 년 전 한 잡지에서 안성기의 둘째 아들 안필립(1991년생)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그가 사진을 전공하기 위해 시카고 예술대학을 지원할 때 아버지의 표정을 담은 사진들을 포트폴리오로 제출했고, 그것으로 3만 달러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는 일화였다. 유명 배우의 표정 사진이면 그 표정을 지은 배우의 공이 더 큰 게 아닌가 싶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작품 기획과 사진 표현 등은 온전히 사진작가의 능력으로 검증받았을 것이다. 가장 가까이에 계신 아버지의 모습에서 예술성을 표현해 낸 것은 아버지의 배우로서의 능력과 인품을 알아차렸기 때문일 것이다. 환하게 웃을 때 더 진하게 깊어지는 주름이 인상적인 안성기의 표정은 정말 그 자체가 예술이다. 힘들고 지쳐 아버지를 떠올리고 싶을 때면 그 사진에 담겼던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장례식장에서 첫째 아들 안다빈(1988년생)은 30여 년 전 아빠가 준 편지를 읽어 모든 이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다. ‘항상 겸손하고 정직하며 남을 사랑할 줄 아는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는 편지 내용은 우리 모두에게 들려주는 듯하다. 안성기가 두 아들을 일찍이 유학 보낸 건 그들이 누구의 아들로 살기보다 스스로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안다빈이 2006년 미국 화단에 등단할 당시, 그는 색약을 극복한 압도적인 묘사력의 화가로 주목받았다. 화가로서는 치명적인 색약을 극복하고자 그는 색보다 형태와 질감, 빛의 유입에 따라 만들어지는 명암에 집중하는 하이퍼리얼리즘으로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갔다.
안다빈의 작품 '휴식(Repose) 2025'을 인스타그램에서 보았다. 빛을 받아 형체가 드러난 청자 앞으로 약간 두꺼운 나무판자가 놓여있고, 그 위에 메모지 같은 하얀 종이가 있는데, 그 위로 일에 몰두하다 잠시 벗어놓은 안경과 검은 가죽끈 시계가 놓였다. 그런데 안경 너머로 종이에 쓴 글씨, ‘아빠,’가 보인다. 그는 아버지가 남기고 가신 따뜻한 기억을 잘 보존하고 싶다, 한동안은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작품 속에 담게 될 것 같다고 썼다.
세상 아버지의 마음은 다 한결같을 것이다. 19세기 러시아 사회의 세대 갈등과 사상 충돌을 그린 소설, 이반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1862)'에서도 아들 바자로프는 죽음을 앞두고서야 자신의 니힐리즘이 삶 전체를 설명하지 못했고, 아버지의 사랑과 헌신이 진실임을 체감한다. 아버지의 사랑은 큰 나무와 같다. 故 안성기 배우의 영면을 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