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투고 [기고] 경기북부, 3·1 독립만세운동!
3·1운동은 정형화된 원형이 없는 운동이었다. 운동은 대중들이 만들어 갔고, 운동이 진전되면서 끊임없이 다양한 변주가 이루어졌다. 시위운동은 양상과 질적인 면에서 3단계의 변화상을 보여준다. 첫 단계는 대체로 민족대표의 평화시위의 규범에 따른 시위가 많았다. 2단계는 향촌유지층 주도의 공세적 시위운동이었다. 3단계는 향촌공동체의 상하남녀노소가 전면적 투쟁을 전개하는 독립만세운동이었다. 경기도 지역은 서울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지리적 특성과 한말 애국계몽운동과 의병운동의 맥을 이어 전국에서도 가장 치열하게 시위운동을 전개했다. 지방시위의 경우 3월 10일에서 15일 사이에 지방의 보통학교 학생들의 시위가 선도적이었으나 파급력은 크지 않았으며, 단발성으로 끝난 경우가 많았다. 남양주 화도읍 마석우리 거사는 시위운동의 규모와 양상면에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일제와의 전면적인 투쟁의 양상을 띠었으며, 무단 발포하는 일제 관헌 격살, 일제 주재소 등 관공서, 면사무소 파괴와 방화 등의 격렬한 양상을 띠었다. 남양주 화도지역 3·1독립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6일 교회지도자 이인하, 이택하, 김우동, 김필규,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