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현재 12학급의 작은 학급이다. 지금도 작은데 내년에는 9학급 수준으로 줄어들 게 확정적이다. 학교 위치가 아파트 숲에 둘러싸여 있고 3호선 지하철역이 바로 근처에 있지만 저출생의 직격타를 인근에서 제일 빠르게 맞았다. 5년 안에 근처 초등학교들도 우리 학교와 비슷한 비율로 학생 수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대부분 학교의 학급수가 작아지는 데에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먼저 구도심이라고 불리는 곳보다는 신도시라고 불리는 곳에 신혼부부와 아이들이 많다. 여기서 차로 25분 정도 걸리는 신도시에는 한 학년에 10반씩 있는 학교들이 몇 개나 된다. 그곳은 입주를 앞둔 아파트들이 있어서 학생들이 더욱 늘어날 예정이다. 우리 학교에서 그곳으로 전학 간 아이들도 꽤 있다. 학급 규모 축소의 더 근본적인 이유는 출생률이 낮아진 탓이다. 특히 출생 절벽이라고 불리는 18년생부터 22년생 아이들이 순차적으로 학교에 입학하는 25년부터 29년까지가 큰 문제다. 5년 동안 대부분의 학교가 현재 학생 수의 절반으로 줄어드는 게 확정이다. 지금도 작은 우리 학교가 5년 뒤에 학생 수가 절반이 된다면 그땐 폐교되거나, 학년 통합반을 운영하고 있을지도 모
몇 년 전 인상 깊게 봤던 동영상이 있다. 성인이 된 제자가 초등학생 때 담임 선생님을 만나는 내용이었는데 꽤 감동적이었다. 어린 시절 제자는 집안 사정이 어려운 데다가 반에서는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 그나마 위안이 방과 후에 매일 담임 선생님과 루미큐브라는 게임을 하는 거였는데, 선생님과 같이 논다는 사실이 학생의 마음에 안정을 줬다고 했다. 제자는 지금 초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었다. 별 거 아닌 놀이가 학생에게 위안을 준 것이다. 영상을 보면서 나도 학생과 함께 놀 수 있는 교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실행에 옮겼다. 아이들과 같이 논다는 게 무슨 효과가 있을까 싶은데 생각 이상으로 좋았다. 몇 가지 장점 중에 가장 좋았던 점은 교사가 놀이에 참여하면서 교실에서 소외되는 아이들이 없어졌다는 거다. 이것만으로도 함께 놀기를 시도해볼만한 가치가 있었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이 되면 혼자 앉아 있는 아이들이 한, 두 명씩 있다. 왜 함께 놀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혼자 있는 게 편하고 좋다고 말한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이 아닌 경우가 많다. 마음속으로는 어울리고 싶은데 친구들에게 거절 당할까봐 용기가 안 나서 가만히 있는 거다. 이런 아이들은 교사가 주도
내년부터 AI를 바탕으로 한 디지털 교과서가 도입된다고 한다. 당장 5개월 뒤인 25년도 신학기부터 바뀐다는데 가르쳐야 하는 교사는 뭐가 뭔지 어리둥절한 상황이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작은 학교라 이미 학생당 하나씩 태블릿이 보급된 상태인데 거기에 앱으로 교과서가 들어오는 건지, 다른 기계가 들어오는 건지 정확히 모른다. 당연히 AI 교과서로 뭘 활용할 수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이대로라면 큰 예산을 들여 만든 교과서가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수업 시간에 디지털 기기를 활용하는 것에 대한 학부모들의 반응도 썩 좋지 않은 듯하다. 얼마 전 2학기 상담 때 학부모 한 명이 꺼낸 이야기를 보면 그렇다. 우리 반 아이의 중학생 형 공개수업 때 태블릿을 활용한 수업을 봤는데 굉장히 실망스러웠다고 했다. 실망한 이유를 묻자 그 수업에서 아이가 뭘 배우는지 모르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수업 중 교사가 올린 링크에 학생들이 접속하고 자신의 닉네임을 정하는데 수업 시간의 반이 지나간 것부터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수업 내용은 아이들이 올린 미술 작품에 서로 댓글을 다는 활동이었는데 학생들이 각자 자기 태블릿만 쳐다보며 웃는 게 학부모 눈에 굉장히 이상해 보인 듯했
졸업앨범은 1학기 중반인 5~6월에 촬영한다. 봄 배경을 바탕으로 야외 사진을 찍으면 자연광의 화사함과 다양한 꽃들이 아름답게 나오고, 너무 덥지 않아서 좋다. 대부분의 학교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저 시즌에 졸업앨범 촬영을 마친다. 사진을 찍는 몇 시간 동안은 수업을 할 수 없으니 대다수 아이 모두가 행복해하는 날이기도 하다. 촬영 당일에는 아이들이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 특이한 소품을 준비해온다. 최근에는 장래 희망과 관련된 프로필 사진을 찍는 게 유행이다. 축구 유니폼과 축구공, 판사복과 법봉, 컴퓨터 키보드와 방송 마이크처럼 직업이 연상되는 물품을 많이 들고 왔다. 수의사가 꿈인 친구는 의사 가운과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를 데려와서 다른 아이들의 부러움을 샀다. 경력 많은 사진 작가님을 만나면 평소 경직된 표정이 대부분이던 아이들의 다채로운 얼굴을 볼 수 있다. 작가님이 처음에는 친구야 웃어~ 웃자!를 외치다가 아이가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는 데 그치면, 그때부턴 혼신의 힘을 다해서 아이를 웃기려고 노력하신다. 그러다 아이가 폭소하면 그때 연신 셔터를 누른다. 결과물에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 한 명이 서 있다. 나이스 정보란에는 아이들 사진이 들어간다
필자는 야구를 좋아해서 특정 팀을 오랜 기간 응원했다. 방학을 맞이하여 집에서 차로 4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홈구장에 경기를 구경하러 갔다. 저녁 경기임에도 점심쯤에 도착해서 사고 싶었던 유니폼을 1시간 동안 줄 서서 구입했다. 지치지 않고 또 다른 이벤트를 위해 기꺼이 줄을 섰다. 이날 대략 2시간 30분 정도를 기다렸다. 평소였다면 바로 포기했을 텐데 멀리까지 왔으니 계획했던 일들을 다 해치울 심산이었다. 7월 마지막 날 여름 날씨는 그늘에 앉아 있어도 곧 땀이 흐를 정도였다. 야구단 직원이 연신 돌아다니며 몸에 이상 증세가 있으면 바로 알려 달라고 말할 정도였다. 공놀이가 뭐라고 땡볕에 서 있는 내 모습이 웃겼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대단하고 저 사람들도 대단하다고 느꼈다. 푹푹 찌고 습한 날씨에도 경기가 시작할 무렵이 되자 금세 관중석이 들어찼다. 오늘 경기는 매진이라는 문구가 전광판에 뜨고, 투수가 공을 던지기 시작하자 설레서 심장이 쿵쾅거렸다. 기분 좋은 설렘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날은 응원하는 팀이 KBO 최다 실점 신기록을 낸 날이었다. 무려 30실점을 했다. 경기 초부터 대량 실점하는 등 조짐이 좋지 않아서
1박 2일 야영은 오래간만이었다. 중학교 때 반장, 부반장들을 대상으로 야영을 떠났던 게 마지막이니 까마득한 옛날이다. 가서 뭘 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다. 얼기설기 설치된 그물을 타고, 산 타고, 높은 곳에 있는 평행봉을 걷기도 하고, 뭘 자꾸 탔었던 잔상들만 남아있다. 평행봉에서 다리가 사시나무처럼 떨리던 장면처럼 고소공포증과 관련된 기억들만 남아있는 걸 보니 야영 자체가 썩 재밌진 않았던 것 같다. 이후에는 야영을 간 적이 없다. 야영은 다른 숙박형 활동보다 안전사고 확률이 높고, 1일형 체험학습들도 없어지는 상황이라, 직접 밥을 해 먹고 잠자리도 불편한 야영이 살아남을 리 만무했다. 중, 고등학교면 모를까 주변에 야영하러 갔다는 초등학교를 찾는 게 흔치는 않았다. 우리 학교는 학생 수가 적은 소규모 학교라 다양한 활동을 하는 와중에 숙박형 야영이 들어왔다. 부모님과 놀러 다닐 때 주로 호텔과 펜션을 다니는 어린이들이 경험하기에 야영장은 너무 힘든 환경일 것 같았다. 산 주변이라 벌레가 많고, 샤워장과 화장실이 불편하고, 다닥다닥 붙어서 단체로 잠을 자야 한다. 수학여행 다녀와서도 숙소와 교통으로 불만을 토로하는 세대인데 애초에 고생이 목적인 야영
오래 전 2학년 담임을 할 때의 일이다.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도서실서 책에 쪽지를 숨겨 놓고 찾는 술래잡기를 종종 하고 놀았던 모양이다. 도서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교실에 있던 나는 알 수 없었고, 사서 선생님께서 나에게 지도를 부탁하고 나서야 어린이들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물론 9살이었던 친구들은 도서실에서 조용히 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계속 뛰어 놀았다. 결국 뛰어다닌 아이들이 2주 동안 도서실 출입이 금지되면서 책 읽는 공간은 평화를 되찾았다. 여기까지는 있을 법한 내용의 이야기들이다. 예상치 못했던 건 학부모의 반응이었다. 부모로서 아이가 도서실에 출입을 못한다는 사실이 화가 났을 수 있다. 화가 난 학부모가 보인 첫 번째 반응은 ‘왜 도서실에서 뛰면 안 되냐?’는 것이었다. 뭐라고 답할 말이 없어서 가만히 있자, 그럼 아이들은 어디에서 뛰어놀아야 하냐고 재차 물었다. 운동장에서 뛰어 놀아야 한다는 나의 답에 2학년은 왜 애들이 뛸 수 있는 체육이 없냐며 크게 화를 냈다. ‘체육이 교과서가 없긴 없는데요. 실제로 없는 건 아닙니다.’라고 답했던 기억이 있다. 며칠 전에 나온 <초등학교 1~2학년에 체육 수업 없는 나라는 대
얼마 전 수능 6등급을 받은 학생이 교육대학교에 합격했다는 기사가 났다. 이 사실은 전국 9개 교육대학교에서 입시 결과를 발표하면서 알려졌는데, 전국 교대에서 합격 점수가 전반적으로 떨어지는 현상이 두드려졌다. 지방 교대여도 1~2등급이 입학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6등급을 받은 학생이 입학했다는 건 드라마틱한 변화다. 수능이나 내신 상위권 학생 중에서 초등교사를 희망하는 사람들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공교육 교사직에 엘리트들이 몰렸던 건 경제 과도기에 있던 한국의 특이한 현상이었다. 이미 미국이나 일본, 프랑스, 스웨덴처럼 대륙을 막론하고 선진국에서 공교육 교사는 비인기 직업이었다. 낮은 급여와 과중한 행정업무, 교사 처우의 꾸준한 질적 저하가 낳은 결과였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교사의 질이 높다고 자부했던 한국도 이제 다른 선진국들처럼 공립 교사는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선진국에서 겪은 공교육 교사의 인기 저하가 어떤 결과를 불러왔을까. 학급 담임이 가정통신문을 못 쓰거나, 고학년을 가르치지 못하는 등의 해프닝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 정도까지는 ‘학교에서 교사는 교육할 필요 없고, 보육이나 하면 된다’라고 주장하는
중학교 자율학기제가 끝난 뒤 첫 번째 중간고사를 치고 나면 아이도 학부모도 혼돈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우리 아이는 분명히 초등학교 때 꽤 공부를 잘하는 편에 속했는데 점수가 왜 이러지.’ 초등학교 상담 때 담임 선생님도 분명히 잘한다고 말했으며, 종종 가져오는 단원평가지나 수행평가지를 보면 점수가 높은 편이었다. 중학교 첫 번째 시험이라 나름 준비도 했는데 기대 이하의 성적이 나온 것이다. 중학교 교사인 친구의 말을 들어 보면 첫 시험이 끝나고 상담을 요청하는 학부모들이 종종 있다. 우리 아이가 초등학교 때까지는 공부를 잘했다는 말과 함께 찾아오는 학부모들의 표정에는 당혹스러움이 엿보인다. 중학교에서도 초등학교 때처럼 어느 정도 이상은 해줄 거라는 기대가 깨진 것이다. 초등학교 때까지 상위권이었던 아이가 중학교에서도 상위권일 확률이 얼마나 될까. 학습 관련 다큐에 따르면 초등 우등생의 70~80% 정도가 중학교에 가면 평범한 성적의 학생이 된다고 한다. 열 명 중에 둘, 셋 정도만 기대에 만족하는 성적을 받고 나머지 학생들은 실망하게 된다고 하니 적은 숫자가 아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걸까. 아이들의 성적이 떨어지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새 학기가 되어서 반 아이들과 친해지려고 쉬는 시간에 열심히 말을 거는 중이었다. 학교가 끝나고 무얼하는지, 좋아하는 취미가 어떤 건지 슬쩍슬쩍 묻는데 아이들끼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A는 나중에 의사가 되고 싶어서 학원에 갔다가 매일 밤 9시에 집에 들어간다고 했다. 함께 대화하던 B도 의사가 꿈이라고 했다. A가 B에게 의사가 되려면 지금부터 엄청나게 많은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핀잔을 줬다. A가 쓴 자기소개서를 다시 살펴보니 이렇게 쓰여 있었다. 과학고에 입학했다가 의대를 가서 의사가 되는 꿈이 생겨서 열심히 공부 중입니다. 사실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의 장래희망이 확실해서 매일 밤까지 공부를 하는 건 기특한 일이다. 대체로 많은 학생이 뭘 하고 싶은지 잘 모르는 게 요즘 교실의 분위기니까. 약간의 문제라면 의대에 가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많아졌다는 거다. 10년 전에는 ‘저의 꿈은 의사입니다’라고 말하는 친구가 반에 한, 둘 정도 있었다면, 지금은 그 숫자가 확실히 늘어났다. 구체적으로 ‘의대 준비반’ 타이틀이 붙은 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이 많아졌다. 일반 학원의 최상위권 반 이름이 의대반으로 바뀌었다는 기사를 봤는데, 아이들이 그 반에 들어가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