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의료원은 2003년 성남병원과 인하병원의 폐업으로 수정구와 중원구의 의료 공백을 해결하기 위해 주민들이 18년간 투쟁하여 얻어낸 시민의 소중한 자산이자 대한민국 공공의료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할 잠재력을 지닌 공공병원이다. 최첨단 의료시설과 높은 접근성으로 성남시민의 건강 증진에 기여하고자 탄생했으나, 개원 직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정상적인 진료가 어려워졌다. 국립중앙의료원의 공식 발표에 의하면, 코로나 진료 축소 이후 지방의료원이 코로나 이전의 일반진료능력을 회복하기까지 최소 4년이 걸릴 것으로 예측했다. 성남시의료원의 재정적자는 팬데믹 이후 정상화 시기를 겪으면서 불가피하게 발생했다. 이에 더해 경영진의 무능과 무책임으로 인해 진료 정상화가 어려워졌고, 전임 원장 사퇴 이후 22개월간의 원장 공석으로 인해 의료원 경영에도 큰 차질이 발생했다. 또한, 전임 원장의 독단적 운영으로 의료진 이탈과 진료 공백이 발생해 시민의 신뢰도 잃으면서 성남시의료원은 점차 망가져 왔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회복기를 겪는 성남시의료원의 정상화에 무한한 책임은 신상진 시장에게 있다. 신상진 시장과 국민의힘 시의원들은 ‘만성적자 해소’, ‘우수 의료진 확보’, ‘시민
코로나19 시대 아버지들의 아픈 사연이 속속 들려 온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고령의 아버지가 객지에서 방문한 아들의 손을 잡으며 반갑게 맞이했다가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숨졌다는 참 어이없고 슬픈 소식이다. 돌아온 아들을 환대하기 위해 마련한 가족 모임에서 아들과 접촉한 부모 등 일가족 16명이 한꺼번에 양성 판정을 받았다. 지난 겨울 어느 날 밤 11시, 부산 엄궁동 강변도로서 구포 방면으로 달리던 승용차가 길가 전신주를 들이받고 사망한 사고가 있었다. 가족의 생계 때문에 밤낮으로 일하던 한 50대 가장이 심야에 배달 일을 하러 가기 위해 차를 몰다 전봇대를 들이받고 숨지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경찰은 A씨가 피곤한 상태에서 운전하던 중 사고가 난 것으로 파악했다. 두 아이의 아버지였던 A씨는 학원을 운영했지만, 생계가 어려워지자 1년 가까이 부산 사상에 있는 한 농산물 시장에서 배달 일을 하고 있었다. 사고가 일어난 이날도 밤에 농산물시장에 배달 일을 하기 위해 가던 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직장인 및 자영업자 903명을 대상으로 ‘직장인 투잡 백서’를 주제로 설문조사 한 결과 직장인 10명 중 7명꼴로 부업을 해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4월 말 잦아들 것처럼 보였던 코로나19 감염병 사태는 5월 연휴가 끝나자마자 용인 66번 확진자에서 시작하여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이태원발(發) 감염은 마침내 인천의 학원 강사를 거쳐 그의 수강생이 방문한 노래방, 동승한 택시기사가 참석한 돌잔치, 돌잔치를 다녀온 택배센터 직원 그리고 그들의 가족까지 등등 7차 감염자가 발생했다는 소식 이후 물류센터, 콜센터, 학원, 뷔페식당 등에서 지속적으로 감염이 이어지고 있어 온 국민이 불안에 떨고 있다. 소위 ‘n차’(4차 감염자 이후 감염자는 역학적 추적이 무의미한 자연수로 ‘n차’라 칭함)라는 수학용어 까지 등장하는 미로(迷路)의 감염의 확산에는 어김없이 등장하는 ‘n차’라는 특정화된 시민들이 있다. 그들의 사회적 위치는 대부분 사회 안정망에서 소외된 일용직 근로자로서 거의 ‘투잡(Two-Jop)’을 뛰어야 겨우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위기의 노동자들이었다. 코로나19 ‘n차’ 감염에 걸린 노동자들 대부분은 하루하루 생애가 갈급한 인생들이었다. 그들은 안정된 직장의 정규직이 아니었으며, 저마다 감당하기 버거운 빚을 지고 있었으며, 자라는 자녀들이 있었고, 학비가 필요한 일용직이었다. 일용직은 굳이 인사
며칠 전 모 방송사에서 일하는 엄마들의 현실적 애환을 그린 특집드라마 「외출」(극본 류보리, 연출 장정도)이 방영되어 시청자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드라마의 요지는 대한민국의 현실 속에서 워킹맘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일과 자녀 양육(養育)보다 훨씬 무거운 편견과 무책임의 구조적 모순이 여성들의 어깨와 심장을 억누른다는 것이다. 여성들의 사회적 예우나 인식이 많이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아이들의 양육은 엄마의 몫이다. 따라서 ‘일하는 엄마’는 아이들과 일터와 세상에 죄인 아닌 죄인처럼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결국 미혼 여성들의 혼인기피, 출산기피로 이어지고 결국 인구감소라는 사회적 위기로 치닫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이즈음에서 다시 반성해야할 것은 양육은 온전히 여성의 몫인가를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되짚어 보아야 한다. 몇 해 전 한국 여성이 일본 여성에 비해 가족구성과 가족돌봄 등에서 비교적 큰 부담을 느낀다는 조사결과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표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양성평등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표출되고 있지만 여전히 남성은 ‘생계부양자’, 여성은 ‘돌봄자’라는 고정화된 성별분업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
온 나라와 세계가 코로나19 감염증으로 혼란에 빠졌다. 경제도, 문화도, 교육 등 모든 사회적 역동성이 얼어붙은 미증유의 겨울공화국이 계속되고 있다. 그야말로 독한 감기가 온 나라에 마스크를 씌움으로 길고도 혹독한 동면을 하고 있는 형국이다. 1980년대 군부독재시절에 선배의 출판사 사무실 작은 난로에 누군가 ‘봄은 온다’라고 매직펜으로 쓴 것을 보고 나름 ‘아, 살아내야겠다, 살아나가야겠다’ 고 스스로 격려한 적이 있다. 지금, 코로나바이러스로 모든 것이 위축된 듯 하지만 정치권은 아직도 책임공방으로 활발하며 총선의 유불리를 놓고 설왕설래하고 있다. 일부 언론은 희망과 대안을 제시하기보다 과도한 불안감과 정치공세적 진영 싸움으로 몰아가는 기사가 나오고 있어 국민의 마음을 심란하게 하고 있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에서 지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한 문장이 눈에 띈다. “한 도시를 이해하려면 그곳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사랑하며, 어떻게 죽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좋다”라는 대목에서 위기 앞에 선 대한민국과 정치지도자와 언론, 그리고 국민들의 자세를 상기하게 된다. 지금은 온 사회구성원이 바이러스라는 폭풍한설에 문을 꼭 닫고 지내야 하지
중국발 신종코로나바이러스로 온 나라가 뒤숭숭하다. 사스와 메르스를 거쳐 점차 진화된 바이러스의 창궐은 자연생태계를 파괴를 눈감은 인간에 대한 자연의 저항으로 보인다. 문제는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는 신종바이러스는 단순히 몇몇 사람의 건강 문제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감염의 두려움이 더 할수록 인간의 정신까지 오염시키는 현상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더욱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최근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중국 우한교포 임시 숙소를 놓고 진천, 아산 주민이 감염 공포로 일시적 님비현상을 보일 때 모 야당 의원이 숙소 선정을 놓고 정치적으로 공세를 퍼붓는가 하면, 제1야당 국회의원 출신인 A대 법학과 B교수가 정부의 대중국 자세를 두고 대통령에게 ‘중국 시진핑의 개노릇하다 죽으라’는 막말을 쏟아 붓는가 하면, 일부 시민들도 신종바이러스 광풍에 휩쓸려 사람에 대한 측은지심은 커녕 경계와 원망, 차별과 위축된 자세를 보여줌으로 대인관계는 물론 경제에 까지 악영향을 주고 있다. 참으로 심각한 바이러스가 아닐 수 없다. 한 때 ‘집안에 하수구만 막혀도 대통령 욕한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었다지만 감염병에 대한 두려움이 인간이 인간에 대한 예의, 국격을 위한 국민의
2020년 경자년(更子年) 새해가 밝았다. 대부분의 언론과 경제학자나 사회정치학자들은 금년에도 한국경제나 정치 외교적 상황이 그리 녹록치 않을 것을 예고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언제나 우리는 개인사나 국가적으로 우리들은 늘 도전과 극복의 역사를 이어왔다. 바라기는 새해에는 가시적이고 현시적인 물욕중심의 욕망보다 내면의 건강을 이루는 기쁨의 삶을 최우선 순위에 두는 소박한 꿈을 꾸길 바란다. 인생 행복은 기쁨의 대상 셋이 하나를 이루는 ‘삼희일치(三喜一致)의 삶을 이어갈 때 가능하다. 기쁨은 보관하고 저축하는 것이 아니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사실 기쁨은 잘 될 때 보다 어려움을 당했을 때에도 의연히 대처할 수 있는 영적 능력이 있을 때 가능하다. 또한 지금, 여기의 일들에 대하여 긍정적 해석 능력이 있을 때 창조적 기쁨이 가능하다. 이러한 삼희일치의 성공된 삶을 이루려면 첫 번째, 먼저 하늘의 기쁨을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필자는 2020년에는 모든 독자제현들이 자신만의 종교를 갖길 희망한다. 종교는 일상에 지친 영혼을 위무(慰撫)하고 삶의 진정한 기쁨을 누리도록 안내하는 안식처이자 지혜의 보고다. 특히 기독교는 ‘기뻐하는 종교’라고 말하기도 한다. 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