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이 주는 선물 ‘밀레니얼 세대 이후 코로니얼 세대가 왔다’고 누군가 말했다. 항상 언제 어디서든 접속할 수는 있지만 늘 외로운 세대로부터, 실제로 접촉하지는 않지만 늘 소통하고 공유해야만 살아남는 세대로 넘어간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싶다. 20세기 말에 온 밀레니얼 세대는 지금의 디지털 생활을 창조했다. 하지만 왕성한 스마트 소통 속에서 줄곧 원자의 고독을 느껴왔다. 그런데 코로나19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 세대가 왔다. ‘팬데믹’이라고 부르는 감염의 세계적 대유행 속에서는, 고립될 수밖에 없지만 더욱 공감을 위해 노력하는 콜로니얼 세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본다. 우리는 21세기가 시작 될 무렵부터 20여 년 간, 온라인 커뮤니티 안에서 개인주의적이면서도 창의적인 표현을 할 수 있는 미레니엄 이후 세대들의 활약을 보아왔다. 서구에서는 X세대 다음으로 찾아온 N세대들이 청년기에 그 주역을 담당하였다. 한국사회에서는 호황의 꽃에 해당하는 1990년대 신세대, 혹은 ‘서태지 세대’라는 존재들 다음에 그런 존재가 등장했다. IMF 이후 세대, 혹은 ‘88만원 세대’라고 부르는 불황의 꽃들로서, 경기침체 속에 세상에 나간 21tpl의 청년들은 적어도 사이버 세상에서만큼
코로나19와 일상의 변화 코로나19, 다시 대유행이 왔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에 닥친 2월의 변화는 12월이 된 지금 창의적인 모습으로 자리잡았다. 모임과 만남의 문화가 바뀌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온라인 소통과 디지털 공동체가 각광받겠지만, 그에 비례해서 작은 동아리와 사랑방의 가치 역시 부상한다. 소중해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항상 누려왔던 모임과 만남은 지금 사회적 결핍이 되었다. 사이버 연결상태의 과잉은 피로를 동반한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SNS와 스마트폰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지도 않고 삶을 해방시키지도 않는다. 화상회의가 늘고, 스마트폰 전화통화가 많아지고, 업무가 채팅방 대화창에서도 전개되는 것을 바라는 이는 많지 않다. 업무는 편해졌지만, 쉬는 시간까지 그 업무를 온라인으로 해서야 되겠는가, 자문들을 하게 된다. 스마트폰으로 이동 중에 영화를 즐기고 인기 드라마를 시청하는 횟수를 늘이고 싶어 하지만, 인터넷으로 효율적인 일처리를 하고 대소사를 피곤하게 챙기는 것에 대해서는 복잡한 심경을 토로한다. 우리가 디지털 소통장비를 통해서 효과적으로 일을 할 자유를 얻었다고는 생각하지만 일상 속에서 구속되지 않을 자유는 놓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후 세대는 새로운 여건에서 새로운 사고를 하며 살 것이다, 코로나 위기 속에는 새로운 사회경제적 변화가 있다. 사회적 경제조직이 해야 할 새로운 역할들 역시 그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코로나19 같은 감염병 뿐 아니라 기후변화 같은 전지구적 위기는 여러 사회경제적 기회를 낳는다. 새롭게 오는 시대를 새로운 눈으로 봐야 한다. 코로나로 사회안전망이 뻥 뚤렸으니 세계의 시민들은 세금의 사용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사회보장이 약한 나라의 시민들은 나라가 돕지 않으면 전쟁터에서 죽듯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내가 낸 세금으로 기본소득을 달라는 인식이 커져간다. 만일 기본수당을 받아야 할 취약인구가 많아진다면 그만큼 사회적 경제조직이나 시민단체, 비영리기구와 공익조직들이 할 일은 많아진다. 정부는 시민이 낸 세금을 그곳에 투여해야 할 것이고, 그 부분에 해당하는 공공시장은 그만큼 많아진다. 모든 일을 공무원들이 다 할 수 없으니, 행정은 민간의 봉사, 용역을 하는 파트너를 늘일 수밖에 없다. 세금으로 일 없는 시민이 공익적인 근로를 할 수 있도록 고용도 해야 하고, 세금으로 다 할 수 없으니 민간에게 노동을 나눠 맡기고 생계를 사회적인 차원에서 보장해야 한다.
새로운 시민행동의 가능성 코로나19를 계기로 시민들이 만들어낸 작고 직접적인 변화들은 쌓이고 쌓여 사회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시민사회의 구체적인 움직임은, 세금에 대한 태도와 사회보장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될 가능성이 크다. 시민으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안전의 맹지를 없애고, 국민보건의 사각지대를 제거하자는 이야기가 일어난다. 재난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공공자금 운용제도를 개선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사회적 안전망을 재구축하자는 이야기가 많아진다. 국민들이 기본수당을 받으면서 사회적 생산력을 늘이는 실험을 해야 한다거나, 세금으로 기본소득을 받는 대신 더 많은 시민이 공공근로와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봉사를 하게 만들자는 의견도 있다. 사회 전체에 팽배한 경제적 불안을 극복하면서, 동시에 공익적인 일거리를 늘이자는 것이다. 사회적 보장을 근본적인 국민복리로 생각하는 시민들의 요구는 커질 수밖에 없다. 소득 양극화 문제를 제기하면서 경제적 주장을 하는 집단행동은 촛불집회 같은 상징적이고 축제적인 플래시몹 방식을 취할 것이다. 미국에서 ‘월 스트리트를 점령하자’며 SNS로 퍼진 2011년의 경제적 정의 관련 시위들의 후속타들이 늘 것이다 2018년 프랑스의 ‘
코로나19의 위기로 시장경제와 기술산업 쪽에서 변화의 강력한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먼저 재택근무와 원격노동을 더욱 쉽게 만들 사회연결망 서비스가 부상하고 있다. 생활의 혁신, 소비의 혁신, 시민사회의 혁신이 이러한 ‘접속’의 산업을 타고 일어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다음으로, 보험과 안전 분야의 서비스가 꾸준히 발달하고 있다. 2014년 메르스와 세월호 사건 이후 한국사회는 공공영역에서 안전문제를 강조했다. 이를 받쳐주는 서비스군이 발전했다. 보장과 보안, 경호 등의 분야 서비스가 발전하고 일반 시민들이 소비하는 서비스가 될 가능성이 크다. 재난으로 훼손된 것을 보존하고 복원하는 기술, 이에 관련된 보험 서비스 등도 가시적인 변화를 보일 것이다. 핀테크, 블록체인을 비롯하여 공인, 보증에 관련된 기술에 대한 투자도 늘고 있으며, 금융거래, 공유경제 등에서 개인재산의 보장과 안전에 관련된 각종 제도의 개선을 촉구하게 된다. 한편으로, 피부에 와닿을 정도로 생태환경에 관한 시민운동이 주류 사회운동으로 부상하고 있다. 일시적 현상은 아니다. 이는 환경기술, 생태적 기술이라고 부르는 분야를 발전시키고 있다. 에너지, 바이오, 쓰레기저감, 보건, 의약 등을 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