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에는 세계적인 명문고가 두 개 있다. 앙리 4세(Henri IV)와 루이 르그랑(Louis Le Grand)이 그것이다. 전자는 종교전쟁의 소용돌이를 살다간 앙리 4세를 기리기 위한 것이고, 후자는 태양왕 루이 14세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그중 전자는 브르봉 가(家) 최초의 왕이자 평화의 사도로 현재까지 프랑스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그러나 앙리 4세는 안타깝게도 통치 기간 동안 20여 차례의 암살 위협에 시달렸고 끝내 살해당했다. 1610년 5월 14일 앙리 4세는 쉴리 고문(顧問)의 병문안을 위해 그의 충신 에페르농 공작과 몽바종 공작을 대동하고 파리 아르스날(Arsenal) 지구로 향했다. 그러나 성금요일 오후의 거리는 너무나 혼잡했다. 왕의 마차는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그만 수도의 중심부 페론느리(Ferronnerie) 거리에서 멈추고 말았다. 이때 한 남자가 뛰어오르더니 왕에게 세 차례 칼을 들이대다 결국 목을 쳤다. 급하게 루브르궁으로 옮겨진 왕은 “별일 아니야”라고 말했지만 끝내 눈을 감아야 했다. 암살자 프랑수아 라바이악은 그 자리에서 체포됐다. 1577년 앙굴렘에서 태어난 그는 가톨릭 수사인 삼촌들의 보호 아래 성장했다.
2024년 여름의 무더위는 혹독했다. 추석 연휴에도 푹푹 쪘고 9월 하순까지도 이 더위는 계속됐다. 전혀 꺾일 것 같지 않던 기온이 어느 순간 뚝 떨어졌다. 가을 없이 겨울로 접어들 것만 같은 기세다. 이제 기후 변화는 현실이고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인간보다 기후변화를 더 빨리 감지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빙하의 상태다. 지난 8월 세계의 유튜브를 달군 두 장의 사진이 있다. 영국 사진작가 던컨 포터(Duncan Porter)는 스위스 빙하의 현재 모습과 15년 전 모습을 담은 두 장의 사진을 자신의 SNS에 올렸다. ‘눈물을 흘리게 한 시간 여행’이라는 캡션을 단 이 두 사진은 알프스 론의 빙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쪽 사진에는 론의 빙하가 잘 담겨있지만 다른 한쪽에는 빙하가 완전히 녹아내려 호수를 이루고 있다. 이 사진들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약 300만 조회 수를 기록했다. 미국의 기후 운동가 제네비에브 귄터(Genevieve Guenther)는 이 사진을 다시 게재하며 “우리는 기후 변화가 느린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15년 만에 빙하 전체가 사라졌다. 우리에게는 잃을 시간이 없다”라는 걱정 어린 글을 올렸다.
텔레그램의 피해가 일파만파다. 카카오톡이 개인정보 유출로 소란스러울 때 많은 사람은 텔레그램이 안전하다며 갈아탔다. 같은 이유 때문일까? 텔레그램은 전 세계 10억 명의 활성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을 기만이라도 하듯 지금 가장 위험한 메신저로 주목받고 있다. 딥페이크 성 착취물이 텔레그램을 통해 유포되기 때문이다. 사실 텔레그램은 태생부터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러시아에서 만들어진 이 앱은 권위주의 국가가 주요 시장으로 이란, 러시아, 우크라이나 및 구소련 국가들에서 큰 영향력을 떨쳤다. 특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주요 정보는 이 앱을 통해 퍼져 나갔다. 따라서 일부 분석가는 텔레그램을 ‘가상의 전쟁터’라 불렀다. 이를 방증이라도 하듯 최근에는 또 다른 전쟁터가 되고 있다. 특정 인물의 얼굴 등을 영상에 합성한 딥페이크의 온상지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CEO 파벨 두로프(Pavel Durov)는 지난달 24일 프랑스 부르제 공항에서 체포됐다. 사기, 마약 밀매, 조직범죄, 돈세탁, 테러 조장, 아동 성범죄 등을 텔레그램에서 방치한 혐의다. 그동안 인터뷰를 꺼리고 베일에 가려 지내던 두로프는 갑자기 세상에 전면 노출됐다. 두
예술의 영원한 아이콘 알랭 들롱(Alain Delon). 그가 지난 18일 새벽 3시 프랑스 자택에서 숨졌다. 19일 아침 세계 언론은 이 배우의 죽음을 애도했다. 이탈리아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는 ‘위대한 배우이자 위대한 반동’이라는 타이틀로 그에게 감사했다. 영국 가디언은 “잘생기고 최면에 걸린 듯한 알랭 들롱은 영화계에서 가장 신비로운 스타 중 한 명이었다”라고 보도했고, BBC는 “살인자부터 카리스마 넘치는 사기꾼까지 어떤 역할이든 팬들의 심장을 뛰게 만든 배우였다”라고 표현했다. 독일도 질세라, 뮌헨 메르쿠르지는 ‘고마워요, 지니(천재)!’라는 헤드라인을 뽑아,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지는 ‘치명적인 남자’라는 제목으로 들롱에게 감사했다. 특히 이 프랑스 배우가 큰 인기를 누렸던 일본에서는 NHK가 앞장서 “들롱은 영화 속 매력과 몸짓으로 우상화되었다”고 회상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강렬하게 잘생긴’, 당대 최고의 영화 제작자들이 구애한 ‘국제적인 스타’라고 죽은 이를 애도했고, 뉴요커는 “영화 역사상 가장 잘생긴 남자”라고 요약했다. 스위스의 르땅(타임)지는 들롱을 ‘프랑스 영화의 마지막 위대한 신화’, 그리고 ‘천사의 얼굴을 가진 진정한 터
파리 올림픽. 지난 금요일 드디어 막이 올랐다. 흩날리는 빗속에서 센 강의 다리 위를 수놓은 프랑스 삼색기와 축구선수 지단이 아이에게 건넨 올림픽 성화, 셀린 디옹이 부른 ‘사랑의 찬가’는 감동 그 자체였다. 레이디 가가의 파리 ‘리도쇼’와 아야 나카무라의 ‘자자’와 ‘푸키’ 메들리는 첨단쇼를 연상케 했다. 전 세계에서 10억 명이 지켜본 이번 올림픽 개막식에서 가장 이색적인 장면은 아마도 배를 타고 등장한 각국 선수단 이었을 것이다. 이 선수단은 남녀가 비슷한 비율로 섞여 있어 올림픽의 민주화가 진전되고 있음을 감지케 했다. 1900년 제2회 파리 올림픽이 열렸을 때 출전한 여자 선수는 2%에 불과했다. 총 997명의 선수 중 22명의 여성은 테니스, 요트, 크로켓, 승마, 골프, 5개 종목에 출전했다. 이 중 골프와 테니스만 여성 전용 종목이었다. 올림픽 헌장에는 “IOC(국제올림픽위원회)의 역할은 남녀평등의 원칙을 구현하기 위해 모든 수준에서 여성의 진흥을 장려하고 지원하는 것”이라고 명시돼 있다. 그런데 이 실천은 아직도 요원하다. 올림픽에서 여자 선수 비율이 30%를 넘는 데는 약 100년이 걸렸다. IOC는 지난 20여 년 동안 국제연맹 및 올림픽
오는 7월 26일, 드디어 세계올림픽이 시작된다. 서른세 번째 열리는 이 올림픽의 개최지는 파리다. 이 도시는 이미 두 차례나 올림픽을 치른 전적이 있다. 1900년과 1924년이 바로 그것이다. 한 도시에서 올림픽이 세 번이나 열리는 일은 그리 흔치 않다. 그래서일까? 프랑스는 이번 대회를 이색적으로 끌어가려고 분주하다. 개막식도 경기장이 아닌 센 강가에서 실시한다. 저 멀리 에펠탑이 우뚝 서 있고 찬란한 물빛 위에는 만국기를 실은 유람선이 둥둥 떠다니는 센 강의 야경무대. 꿈과 낭만의 축제, 마법의 축제가 아닐 수 없다. 이 행사가 끝나면 바로 다음날부터 단거리 달리기, 멀리뛰기, 원반던지기, 스노보드, 피겨 스케이팅 등 각종 경기가 펼쳐진다. 전 세계 수많은 나라에서 온 수천 명의 선수가 자국의 국기를 가슴에 달고 금, 은, 동메달을 놓고 치열한 쟁탈전을 벌일 것이다. 그렇다면 올림픽은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을까? 올림픽 경기가 최초로 실시된 건 기원전 776년 여름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신들의 왕인 제우스를 기리기 위해 남부의 올림피아에서 경기를 치렀다. 선수들은 4년 마다 제우스신께 승리를 기원하고 그들의 성공에 감사하는 제물을 바쳤다.
옷더미에 병들어 가는 지구. 그럼에도 대부분의 패션업계들은 유행을 선도해 돈벌이에 혈안이 돼 있다. 이에 반기를 든 업체가 있다. 스페인의 에코알프(Ecoalf)다. 지속 가능성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 회사는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를 시도한다. 2009년 창립한 이 회사는 재활용에 전념하며 이 분야의 선구적 역할을 주도한다. 경제적 이익을 우선으로 하는 많은 브랜드와 달리 에코알프는 생태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한다. 이 브랜드의 여정은 세 명의 어부가 한국산 트롤선(저인망어선)을 이용해 바다에서 플라스틱 쓰레기를 수거하면서 시작됐다. 현재는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태국 등 60개 이상의 항구에서 약 3,500명의 자원봉사 어부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의 도움을 받아 해저에서 쓰레기를 건져 올려 분류하고 재활용함으로써 최고 품질의 원사를 생산해 낸다. 이들은 ‘지구에 B는 없다.’는 슬로건을 외친다. 하나 뿐인 지구를 지키기 위해 에코알프는 더 높은 수익을 희생하더라도 지속 가능한 개발을 추구한다. 수익성이 환경 문제보다 우선시되는 경우가 대부분인 업계에서 생태적 가치에 집중하는 이 업체의 노력은 가히 칭찬해 줄 만하다. ‘에코알프’라는 회사명
바다 한가운데 떠있는 고딕 양식의 경이로운 수도원 몽생미셸! 이곳은 프랑스에서 파리 다음으로 인기가 높다. 지난 5월 19일 이곳을 찾은 관광객은 3만 3000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4㎢도 채 되지 않는 작은 섬에 왜 이리 많은 사람이 모여 든 걸까? 신비롭고 경이로운 몽생미셸의 매력 때문이다. 이곳은 708년 세워졌다. 전설에 따르면 생 미셸 대천사가 오베르(Aubert) 주교에게 나타나 자신의 이름으로 성소를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주교는 이를 믿지 않았다. 그러자 대천사가 다시 나타나 자신의 존재를 보여주기 위해 빛의 손가락으로 주교의 머리를 만졌고 두개골에는 곧 구멍이 뚫렸다. 주교는 대천사의 존재를 확신하고 건물을 짓기로 결심했다. 그 후 966년 베네딕토회 수도사들이 이곳을 점령했다. 이들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수도원 공사를 60년간 지속했고, 수세기에 걸쳐 이 섬의 화강암 위에 여러 건물을 지었다. 그 결과 몽생미셸은 ‘중세 고딕식 건물의 백과사전’이 됐다. 이곳은 무엇보다 갈리시아로 가는 북유럽 순례자들의 산티아고 순례길 중간 기착지다. 따라서 일찍부터 유명세를 탔다. 1965년, 한 기자는 이렇게 묘사했다. “오늘날 몽생미셸은 전 세계의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이 이름을 들으면 여러분은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이 럭셔리 브랜드는 뛰어난 장인정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우아함, 엄청난 풍요로움으로 프랑스 패션의 아우라를 뽐내고 있다. 그래서일까? 불황 속에서도 이들은 호황의 기염을 토한다. 이 명품을 사기 위해 몰려드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회사들이 벌어들이는 연간 수입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 중 에르메스와 샤넬 가방은 특히 고가다. 가방 하나에 천만 원이 훌쩍 넘는다. 아무리 명품이라지만 왜 이렇게 비싼 걸까? 거기에는 비밀이 있는 듯하다. 매거진 챌린지에 따르면, 에르메스는 책정된 고가의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재고 상품을 모두 소각한다. 이 작업은 극비리에 진행된다. 이른 아침, 파리 근교 센 생드니의 생투앙(Saint-Ouen) 소각장 앞. 이곳엔 1만 명의 에르메스 직원 중 무작위로 선발된 열 명의 직원이 모여 있다. 이들은 에르메스의 환상적인 제품들이 재로 변하는 소각장의 대형 굴뚝 앞으로 출근한 것이다. 곧이어 집행 사무실의 대표가 와 합류한다. 에르메스 상품들은 트럭에 실려 도착하고, 일부는 아직 주황색 상자에 담겨 있다. 현장의 한 직원이 “우리의
“선생님, 일본인은 죽음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요? 언젠가 이 주제에 대해 책을 쓰려고 여쭤 봅니다. 한국인은 사후에도 영원히 산다는 생각을 하는 거 같아요. 죽어서도 살아생전에 가진 것들을 못 내려놓아요. 한 예로 대통령들이 죽으면 너도 나도 국립현충원으로 가려고 해요. 그런데 프랑스 대통령들은 죽으면 자연인으로 돌아가 고향에 묻혀요. 두 나라의 문화가 참 다릅니다. 일본인은 어떤가요?” 10여 년 전 동경대에서 연구를 마치고 내게 일본어를 가르쳐 주신 사토 선생님과 송별 점심을 먹으며 드린 질문이다. 그는 왜 하필 죽음이냐며 핀잔을 주시더니 자기 이야기로 서두를 시작했다. “최상(チョイさん)! 내 나이 이제 예순 셋, 요즘 이상하게 죽음을 생각하게 되네. 며칠 전에도 그랬지. 그래서 다음 날 장롱을 정리했네. 여섯 장의 티셔츠만 남기고 나머지 옷은 처리했지. 나는 독신이라 장례를 조카딸에게 부탁하고 있네. 그 애에게 너무 큰 폐를 끼치지 않으려면 짐을 최소한으로 정리해야 한다네. (...)” 그날 우리는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사토 선생님이 장롱에 여섯 장의 티셔츠만 가지고 계시다는 말이 가장 뇌리에 남았다. “나도 저렇게 심플하게 살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