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말복이다. 삼복이 모두 지나 무더위가 한 풀 꺾인다고 생각하니 이제 시원해지려나 하는 기대보다 아직도 습기가 마르지 않아 눅눅한 집안 같은 개운치 않은 느낌이다. 중부 내륙인 우리 고장에서는 삼복 내내 더위보다는 끈질긴 장마에 시달렸고, 장마가 끝났다는 보도 후에도 연일 소나기가 내린다. 무슨 영문인지 하루라도 비가 오지 않은 날은 없었고 그것도 한두 차례 지나가는 소나기가 아니라 하늘에 금이 가듯 요란한 벼락과 함께…. 이제 기록적인 장마가 제발 끝나기를 바라면서 달력을 보는데 내일이 또 비가 올 확률이 높은 날이다. 바로 칠월 칠석이 기다리고 있다. 칠석날도 이제는 아득한 옛날처럼 가물거린다. 예전 같으면 햇밀에 애호박 썰어 넣고 전을 부치고 시원한 샘물을 긷고 오이 덩굴을 뒤져 연한 오이를 골라 냉국을 먹었다. 할머니는 치아가 없어 주름이 자글자글 잡혀 오목해진 입술로 오물오물 옛날 얘기를 시작하신다. “오늘 까마귀나 까치 한 마리도 못 봤지? 있다가 캄캄해지면 견우직녀가 만나거든. 그런데 하늘에도 장마가 져서 은하수가 깊어 건너갈 수가 없었단다. 너도 생각해 봐라. 얼마나 슬펐겠니? 일 년 내내 기다려서 보고 싶은 직녀가
헌법재판소가 현행 19세 이상 선거권 부여는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6대3. 혹시나 했던 낭랑 18세 투표권은 당분간 일단 물 건너갔다. 3명이나 소수의견을 냈으니 뒤집어질 날 멀지 않았다고 봐야 하나? 우리나라 18세가 겉으론 성숙해 보여도, 정치적 판단을 내리기엔 미숙하다는 판단을 반박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19금 영화는 볼 나이, 즉 민법상 성인인 19세는 돼야 선거의 권리를 행사할 만하다는 견해를 수긍하기도 역시 쉽지 않다. 1년 사이에 정치적 식견이 부쩍 큰다? 글쎄…. 오히려 요즘 애들 성숙도를 감안해서 19금을 18금으로 고쳐야 맞지 않나? 정치적 판단이 서투른 건 스물이 돼도, 스물다섯이 돼도, 심지어 마흔이 된다고 저절로 나아지지 않는다. 육십이 넘어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19세 선거권은 민법상 성년이라는 형식적 기준에 맞춘 것에 불과하다. 대한민국 청소년은 만 17세 생일이 지나면 통지서를 하나 받는다.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으라는 통보다. 성인도 아닌데 왜 이들에게 주민등록증을 발급하지? 몸이 이제는 국가가 관리를 해도 될 만큼 다 컸다는 인증이다. 민법상 여자는 부모의 동의를 얻으면 16세부터 혼인을 할 수 있다.…
진표야, 기억나니? 정확히 20년 전 오늘 아침,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혔던 사실을. 당시 너는 김영삼 대통령이 TV를 통해 금융실명제를 도입하는 긴급명령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보면서, “드디어 해냈구나” 안도감을 느꼈었지. 나는 지금도 대한민국 금융거래 질서를 바로잡고 투명성을 높여서 우리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꾼 그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오른단다. 그때 너는 재무부 국장으로 승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40대의 팔팔한 나이로 조세연구원 파견 근무를 나갔다가, 그해 4월에 갑자기 세제총괄심의관으로 발령받아 극비리에 금융실명제 도입 작업을 맡았었지. 금융실명제는 보안이 생명이라서 당시 이경식 경제부총리, 홍재형 재무부 장관, 김용진 세제실장과 ‘젊은 진표’, 딱 네 사람만 그 내용을 알고 있었지. 보안이 누설되면 책임지겠다고 사표를 쓰면서 “30대 사무관 시절의 좌절을 답습해선 안 된다”며 각오를 다졌지. 너와 금융실명제의 인연은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더군. 1982년 전두환 대통령의 5공화국은 장영자 이철희 어음사기 사건으로 정권의 부도덕성이 드러나면서 온 나라가 들끓었지. 이처럼 발등에 불
군포문화재단이 인사채용을 둘러싼 심각한 공정성 논란에 휩싸였다. 군포시의회가 문제점이 드러난 합격자들에 대해 임용 취소 등을 군포시에 요구했으나, 시가 이를 정면 거부하면서 시의회가 급기야 감사원 감사를 청구하겠다고 나섰다. 그동안 기초자치단체가 설립한 문화재단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뒷소문이 나돈 적은 있지만, 이 같은 정면대결이 벌어진 것은 처음이다. 시작부터 심하게 삐걱대는 문화재단이 지역 문화예술 진흥과 기반 확충이라는 본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심히 우려된다. 군포문화재단은 지난 3월 출범 직전부터 잡음이 무성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해서 경력직들을 시장의 사람들로 채웠다는 것이다. 간부직인 본부장급 3명을 포함한 경력직 16명 가운데 시장의 선거 캠프와 직간접으로 관련된 인사가 많았기 때문이다. 선거대책본부장, 공보물 제작 기획사 대표, 캠프 전산담당자 등 관련자 다수가 문화재단에 자리를 잡은 탓이다. 이에 따라 시의회는 전체 시의원 9명 가운데 7명으로 행정사무조사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3~5월에 걸쳐 집중조사를 벌였다. 여야를 아우른 특위는 조사 결과 합격 직원 16명 가운데 11명이 자격 등에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특위는 1
8일 정부의 세법 개정안이 월급생활자의 유리지갑만 털게 될 거라는 불평이 거세게 일고 있다. 정부는 지난 8일 세제발전심의위원회에서 ‘2013년 세법개정안’을 확정했다. 이 세법개정안은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 연간 근로소득 3천450만원 초과(상위 소득 28%) 근로소득자 434만명의 세금부담이 늘어난다. 이들이 더 내는 세금은 평균 40만여만원, 총 1조3천억원이다. 이에 4천억원을 더해 근로장려금과 자녀장려금으로 1조7천억원이 저소득층에 지급될 계획이다. 그런데 이게 중산층의 세 부담을 늘리는 실질적인 ‘증세’라는 것이다. 특히 박근혜 정부는 연간 소득 5천500만원 초과 가구를 고소득가구로 여기고 있어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들끓고 있다. 물론 이번 세제개편안이 모두 잘못된 것은 아니다. 참여연대는 이번 세법개정안에 소득세제나 상속·증여세 등에서 일부 합리적이고 발전적인 세제개편이 포함된 것을 환영한다는 뜻을 밝혔다. 소득공제의 세액공제 전환은 점차적으로 소득세의 조세부담률을 올려나가기 위해 필요한 조치로서 이를 통한 세입확충 역시 분명 이뤄질 것이라며 반기고 있다. 영리법인을 이용한 변칙상속 과세가 강화된 점 역시 고소득층의 교묘한 상증세…
지난 7월 방학을 맞아 두 주일 프랑스에 다녀왔다. 출장에 가까운 여행이었다. 몇 년 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주도 아래 서울시가 ‘디자인 도시’ 사업을 열정적으로 추진할 때, 성동구청에서 ‘인문학과 공공디자인’ 특강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담당 공무원들이 보여준 관심에 힘입어 주 전공은 아니지만 얇은 책 한권 분량의 원고를 썼는데, 자료 사진이 없어 직접 찍으려고 나선 여행이었다. 6년 만에 다시 찾은 파리는 서유럽의 오래된 도시답게 변화가 없었다. 사실 지금과 같은 근대도시 파리는 일찍이 19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이다. 나폴레옹 3세로부터 전권 위임을 받은 파리 시장 오스만 남작은 1850년대부터 낡은 도시 파리의 개조 작업을 시작한다. 개선문과 샹젤리제, 파리를 가로지르는 대로들, 공원과 문화시설 등등, 우리가 아는 파리의 3분의 2 가량이 오스만의 주도 아래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그의 이름은 프렝탕과 갤러리 라파이에트 백화점이 위치한 오스만 대로에 자랑스럽게 남아 있다. 물론 오스만의 파리 개조에 대해서는 비판적 시선이 있다. 도시의 하층민들을 파리교외로 몰아내고 부르주아 자산계급의 도시로 만들었다
도심 고물상 관계자들이 찌는 듯한 복더위 속에서도 등이 달아 뛰어다닌다는 소식이다. 지난 6일엔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들의 딱한 처지를 호소했다. 이들 고물상은 지난달 하순 폐기물관리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존망의 벼랑에 몰렸다. 개정 법안대로라면 도심 내에 있는 부지규모 2천㎡(특별시와 광역시는 1천㎡) 이상 고물상은 의무적으로 폐기물 처리 신고를 해야 하고, 잡종지 외에 입지한 경우 반드시 이전을 해야 한다. 신고 조항이야 그렇다 쳐도. 주거지나 상업지에 있게 마련인 고물상들이 당장 문을 닫을 판이다. 대부분 영세업자인 이들이 도심 외곽 잡종지로 나갈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법 개정안의 취지에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도심의 미관을 해치는 고물상들을 정비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고물상 정비가 반드시 이 같은 도심 외곽 추방의 방식을 취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도시 생활에서 불가피하게 쏟아져 나오는 ‘고물’을 제대로 처리하는 게 우선이지, 눈에 보이지 않게 추방해 버리는 게 능사는 아니다. 따라서 시설기준을 통한 규제가 아니라 부지 지목에 따라 규제하는 것은 합리적이라고 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번 법 개정안은 취지가 어디에
이명박 정권이 국민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4대강 사업을 하면서 내건 이유는 홍수방어나 물 확보, 수질개선 등이었다. 그러나 이와는 무관한 사업이라는 사실이 점점 밝혀지고 있다. 전 정권이 목숨을 내놓은 사람들처럼 추진한 4대강 사업의 목표는 대운하 사업의 전 단계였다는 점도 드러나고 있다. 참 흉악한 사람들이다. 지난주 대운하 추진 비밀 문건이 공개되고 4대강 사업의 허구성이 만천하에 드러났음에도 이 전 대통령 측은 4대강 사업이 강 살리기 사업이었다는 궁색한 말만 계속하고 있다. 그들은 ‘많은 물을 확보해 가뭄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변명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가뭄은 4대강의 물 부족 때문이 아니다. 강의 지류 지천이 마르면서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4대강에 물을 채울 것이 아니라 지류 지천에 물을 채웠어야 했다. ‘낙동강 수질이 악화된 건 가뭄 때문이지 4대강 사업 때문이 아니다’라는 주장도 공허하다. 4대강 사업으로 물살이 느려지고 물의 온도가 높아진 이상 녹조 발생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환경부의 입장은 ‘낙동강 녹조와 4대강 사업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랬던 환경부가 6일 ‘부분적으로 영향을 준 게 맞다’며 꼬리를 내
우리나라 최초의 글로벌 상품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반도체, 휴대폰, 김치 등으로 생각하겠지만 그 시초는 인삼이다. 인삼은 고대 동양에서 귀한 약재로 인식됐으며, 특히 우리나라 고려인삼은 뛰어난 약성으로 공물이나 선물로도 활용됐다. 삼국시대부터 중국의 위(魏), 수(隨), 당(唐)나라와의 외교활동이나 교역에 사용된 귀한 물품이었다. 일본에서는 17세기 조선인삼을 수입하기 위해 특별 제조한 은화가 있었는데, 이는 일본 내에서는 통용되지 않았고 오로지 조선인삼 무역에만 사용토록 했다. ‘인삼대왕고은’(人蔘代王古銀)이라는 화폐(길이 10cm, 무게 210g, 순도 80% 은)로 일본 동경은행의 화폐박물관에 남아 있다. 서양에는 17세기 초 네덜란드인에 의해 처음으로 고려인삼이 서구에 소개됐으며 하멜(Hamel)의 ‘조선표류기’에도 조선 특산물로 인삼이 기록돼 있다.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 자연주의 철학자 루소, 러시아의 대문호 막심 고리키도 인삼을 애용했다고 한다. 또한, 이 당시 은이 풍부했던 볼리비아의 포토시(스페인 지배)에도 전 세계의 값비싼 물품이 유입되면서 조선인삼도 일본과 필리핀을 거쳐 아메리카 대륙
부부가 살면서 서로를 챙겨주어야 하는 특별한 날들이 있다. 생일과 결혼기념일이 그 중 대표적인 날이다. 특히 결혼기념일은 부부에게 있어서 뜻 깊게 되새기며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래서 혹시 어느 한쪽이라도 까맣게 잊고 지나칠 경우 두고두고 서로 간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한다. 특별한 만큼 예부터 지칭하는 명칭도 결혼 후 특정한 주년(週年)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영국에서는 19세기부터 결혼 후 5년째 되는 해를 나무(木)로, 15년째를 동(銅), 25년째는 은(銀), 50년째는 금(金), 60년째를 다이아몬드 혼식(婚式)이라 명명하고 서로 축하를 하고 축하를 받아 왔다. 부부의 해로 연차를 나름대로 명칭을 붙여 5회로 나눈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풍습은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점차 사치스러워져서 결혼 후 10년째에는 주석(朱錫)을, 20년째에는 도기(陶器)를 추가했고 동시에 15년째의 동(銅)이 수정으로 바뀌어서 부여하는 연차도 모두 7회로 늘어났다. 최근에는 더욱 세분화 됐다고 한다. 1년째에 종이(紙), 4년째에 가죽, 30년째에 상아, 40년째에 모직, 45년째에 명주라는 명칭을 더하는 등 모두 17회로 나누고 있다. 남편들로선 어지간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