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878억여 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용산 영빈관’ 건립을 추진하려다가 논란 끝에 중단된 일은 결코 유야무야 흘려넘길 사건이 아니다. 아무런 공론화 과정도 없이 기획재정부가 대통령실 수석들조차 모르게 국유재산관리기금 예산안에 슬쩍 끼웠다니 말이 안 나올 지경이다. 한마디로 대통령실의 정무 기능이 전혀 작동하지 않고, 비서나 관료들의 국민 공감 능력이 마비됐다는 증거다. 어물쩍 넘길 생각 말고 책임소재를 따져서 고장 난 의사결정 매커니즘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래야 제2, 제3의 국정 난맥 사태를 막을 수 있다. 대통령실은 기재부가 새 영빈관 건립에 878억여 원 예산을 편성한 데 대해 “국익을 높이고 국격에 걸맞게 내외빈을 영접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용산 시대에 걸맞은 영빈관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많은 국민이 공감할 것”이라고 우겼다. 윤석열 대통령이 과거에 ‘청와대 영빈관을 활용할 용의도 있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서는 “(행사 때마다) 부분 통제할 수밖에 없는 모순이 발생한다”는 궁색한 변명을 늘어놨다. 영빈관 신축 추진 사실이 알려지자 여론은 즉각 들끓었다. 거의 모든 언론이 다각도의 해석을 곁들여가며 옐
교육부는 문재인 정부에서 도입한 민주시민교육과를 폐지하고 박근혜 정부에서 만든 인성체육예술교육과로 통합하기로 했다. 세종교육청의 최교진 교육감은 충청투데이 9월 14일자 기고 <민주시민교육을 허하라!>에서 “인성교육이 민주시민교육의 여러 영역 중 하나로 균형 있게 이루어지고 있었기에 교육부의 ‘인성교육’에 대한 집착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면서 “민주시민교육은 정치적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라고 강조했다. 민주시민교육이 중고등학교 교사들과 시민사회 활동가들의 열정으로 수행되다가 제동이 걸린 셈이다. 겨우 걸음마를 배우는 과정에서 된서리를 맞은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교사들의 자발적 열정과 사명감으로 진행해온 것이니 차제에 지나온 과거를 되돌아보며 다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면 되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민주시민교육이 제대로 방향을 잡고 진행되었느냐 하는 진단과 성찰이다. 살펴본 바로는, 주로 민주화운동 세대에 해당하는 교사와 시민사회 활동가들이 그들의 경험을 투영하여 부지불식간에 학생과 시민들을 ‘의식화’ 하고자 하는 열정에 사로잡혀 있지 않나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물론 주입식 수업을 지양하고 학생들의 참여를 전제로 한 방식
윤석열 후보 시절 공염불 수사(Rhetoric), 제1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수사(Investigation). 정치권은 내전 중이다. 국민이 보기엔 수사(修辭)와 수사(搜査)는 정치가 아닌데 말이다. 문제는 경제이건만, 정치는 ‘문제 그 이상’이다. 게다가 윤석열 정부의 ‘외교 참사’는 국내 기업들에게 막심한 피해를 가져다 줬다. 무능한 정치는 국익 손상과 직결된다는 것. 확실하게 드러났다. 지난 5월, 바이든(Joe Biden) 대통령은 우리나라에 내방해 삼성(반도체)과 현대(전기차)의 ‘대미 투자’ 실익을 챙겼다. 얼마 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발효되면서 현대의 전기차는 보조금 지급서 제외됐다. 미국은 IRA(Inflation Reduction Act)뿐만 아니라 반도체, 바이오에 관해서도 미국 내 연구와 제조를 강제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방침에 따라 한국의 미래에 위기가 닥쳤다. 기회는 있었다. 펠로시(Nancy Pelosi) 미 하원 의장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다. 펠로시를 상대로 노력했어야 했다. 정부 역할이다.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국정원, 외교부와 주미 대사관,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부처의 총체적 안이함을…
“뚜 뚜 뚜우, 오후 1시입니다. HLKA 방송입니다.” 라디오 방송을 듣다 보면 아나운서는 수시로 현재 시각과 방송국의 무선호출부호를 알려준다. 어린 시절 이같은 시보(時報)와 함께 알려주는 HLKA와 같은 방송국의 알파벳은 무심히 들었던 것이지만 이게 무슨 의미인지 오랫동안 궁금증을 더하였다. HL은 방송국이 사용하는 무선국의 국가 식별부호이다. 그렇지만 나라마다 사용하는 무선국의 식별부호라고 해서 각국 정부가 마음대로 정해서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 International Telecommunication Union)이라는 국제기구가 전파를 사용하는 각 국가에 국가식별부호를 부여하여 국가별로 구분하여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47년 미국에서 열린 ITU회의에서 HL을 부여받았다. 당시 미군정이 신청하여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으며, 각 방송국은 HL이라는 접두어에 방송국마다 부여된 알파벳을 사용하게 된다. HLKA, HL은 한국의 무선국을 의미하고 KA는 KBS의 제1라디오라는 뜻이어서 언제든 다른 방송국과 식별할 수 있는 기능을 한다. 일종의 고유한 이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HL은 한국의 미디어 역사에서 어떤
의심해 보는 것은 신앙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견고하게 한다. 불신은 사람이 무엇을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자기가 믿지 않는 것을 믿고 있다는 뜻이다. (마르티노) 이따금 영혼의 삶을 믿지 않게 될 때가 있다. 이것은 불신이 아니며, 그때 우리는 육체의 삶을 믿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생명은 영혼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갑자기 죽음이 두려워질 때가 있다. 그것은 무언가로 인해 머리가 멍해져서, 또다시 육체의 삶이 진정한 삶이라고 믿을 때 흔히 일어나는 일로, 마치 연극을 열심히 관람하고 있는 사람이 무대 위의 세계를 현실로 생각하고 그것에 공포감을 느끼는 것과 같다. 인생에서도 이와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 그러나 그러한 환각의 순간에도 신앙이 바른 사람은, 자신의 육체적 생명 속에 사는 것은 결코 자신의 진정한 생명의 행복을 빼앗을 수 없음을 알고 있다. 영혼이 침체에 빠지는 시기에는 자신을 환자로 생각하며, 가능한 한 조용히 있는 것이 중요하다. 현자는 가장 좋은 정신 상태에 있을 때도 회의를 품는 수가 있다. 자유자재로 의심할 수 있는 것은 신앙의 기초를 이룬다. 참된 신앙에는 언제나 회의가 따른다. 만일 내가 의심하지…
교통요금이 무료인 나라가 있다. 버스, 기차같은 대중교통요금을 내지 않고 전국 어디든 다닐 수 있다. 룩셈부르크 얘기다. 선진국 대열에 든 우리나라에서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을 전격 시행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교통난 때문이었다. 약 60만명의 인구가 사는 룩셈부르크는 인구 1000명당 696대의 자동차를 소유(2020년 조사기준)하고 있어 유럽대륙에서 차량 밀도가 가장 높다. 대중교통 무료화는 자동차 사용 인구를 줄이기 위한 극단 방책이었다. 인구 밀도가 아닌, 차량 밀도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국민 생활수준이 높다는 이야기다. 룩셈부르크의 경제 수준은 중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 ‘유럽의 소강국 베네룩스’라는 소개로 익히 배운 바 있다. 현재는 그 정도가 아니라 1인당 GDP 11만5000달러의 최고수준의 부국이다. 서울시의 4배 정도 되는 2586제곱킬로미터의 작은 면적의 소국이며, 19세기 중반까지 가난한 농업국이었던 룩셈부르크. 게다가 유럽 북서부에 위치, 동쪽으로는 독일, 북쪽으로는 벨기에, 남쪽으로는 프랑스에 접해있어 강대국 틈바구니에 끼어있는 이 작은 나라가 어떻게 전쟁으로 점철된 유럽역사 속에서 버텨내 오늘에 이른 것일까. 룩셈부르크 이름부터
토지의 사유제는 노예제도, 즉 인간의 사유제와 마찬가지로, 아니 그 이상으로 정의에 어긋난다. 맨 처음 누군가가 어떤 땅에 울타리를 두르고 “이 땅은 내 것이다”라고 말했을 때, 그 말을 믿어 준 마음씨 좋은 사람들, 그들이 바로 지금과 같은 시민사회의 창시자이다. 그런 때, 그 말뚝을 뽑아버리고 도랑을 메운 다음, “조심하시오, 이 사기꾼의 말을 믿지 맙니다. 만약 땅은 누구의 소유물도 될 수 없고, 땅에서 나는 것은 모든 사람의 것임을 잊는다면, 여러분은 모두 파멸할 것이오!” 하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인류는 그 많은 범죄와 전쟁과 살육과 불행과 비천함에서 구원받았을 것을! (루소) 단순히 공정함이라는 면에서 봐도 토지의 사유는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땅의 일부가 한 개인의 사유물이 되어, 마치 그에게만 소유권이 있는 물건처럼 그 한 사람의 이익을 위해, 그 한 사람이 사용하도록 점유되는 것이 공정한 거라며, 그 밖의 땅도 모두 똑같이 사유물이 될 것이고, 결국은 땅 전체가 그렇게 되어 지구 전체가 온통 사유재산 투성이가 되기 때문이다. (허버트 스펜서) 현재의 토지 사유권이 합법적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세기의 장례, ‘유해’는 뭐고 ‘운구’는 또 뭐지? ... 여왕의 유해를 운구차로 옮기는 것은 밸모럴 영지의 사냥터지기들이 맡았다. (뉴시스) ... 여왕 유해 보러 2만 명 밤샘, 조문에 최대 35시간 줄 (국민일보) ... BBC에 따르면 이날 오전 여왕의 운구를 영구차에 실으며 장례가 시작된다. (이데일리) 언론의 기사다. ‘여왕의 遺骸(유해)’는 금방 사망한 주검이 아니다. 추려진 뼈도 크게 보아 주검이라고? 억지다. 유해는 ‘남은 뼈’ 유골(遺骨)이다. 骸(해)의 뼈 골(骨)자를 보라. 다 안 적어서 그렇지, 헤일 수 없이 수많은 ‘유해’들이 언론에 떴다. 뉴스1 조선일보 중앙일보... ‘여왕의 운구’를 영구차에 싣는다고 했다. 운구가 뭘까? 높은 사람 주검의 이름일까? 아마 ‘시체 넣은 관(棺·柩)의 운반’을 뜻하는 운구(運柩)를 그렇게 쓴 것으로 보인다. ‘주검=운구’가 된 것이다. 맞나? 틀렸다. 개념어(槪念語)의 활용, 서툴거나 어색한 것 까지는 ‘새로운 언어적 시도’라고 짐짓 못 본체 한다고 치자. 그러나 잘못된 단어가 공공(公共)의 위치에 놓이면 곤란하다. 사람들이 보고 배운다. 기우(杞憂)일까? 언론 종사자들이 BBC를 인용할 정도로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