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11년 전 첫 발령 때 만났던 학생 A를 종종 본다고 했다. A가 고등학교 때까지는 연락만 주고받았는데 대학에 입학하고서는 만나서 밥도 먹고 사진도 찍는 것처럼 보였다. 얼마 전 둘이 찍었다는 사진을 보니 누가 선생님이고 학생인지 모를 정도로 비슷해 보이는 성인 여자 두 명이 서 있었다. 조그마했던 초등학생이 어느새 자라서 친구보다 키도 컸다. 둘 사이에 별일이 없으면 평생 만나는 사이가 될 것 같았다. 제자와 계속 만남을 갖는 친구가 부럽기도 하고, 나의 선생님들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기회가 닿는다면 만나고 싶은 선생님이 몇 분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다. 40대 여자 선생님이셨는데 체벌이 미덕처럼 난무하던 시기에 우리를 사랑해주시는 게 피부로 느껴질 정도였다. 수업도 재밌어서 늘 즐겁게 공부했다. 하루에 한두 번 정도는 수업 시작 전에 가벼운 놀이로 환기하고 수업을 시작했고, 당시에 도입됐던 열린 교육 조별 활동을 신나게 했던 느낌적인 느낌이 있다. 수업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고 놀이했던 것만 기억나는 걸 보면 호모 루덴스가 맞는 듯하다. 놀이 덕분에 교실이라는 공간이 편안해져서 새
폭력이란 무지하고 야만적인 자가 민중들에게 그들의 본성에 어긋나는 것을 강요하기 위한 무기이다. 그러나 그 무기가 작동을 중지하면 그 효과도 중지된다. 반대로 설득은 마치 강물이 우리의 관심이나 노력 없이도 스스로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도록 기울어져 있는 강바닥과 같은 것이다. 인간의 활동을 지도하는 방법에 단 두 가지밖에 없다. 그 하나는 인간에게 그 사람의 성향과 판단과는 반대로 행동하도록 강요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그 성향을 다스리며 이치로 설득하는 방법이다. 하나는 무지하고 야만적인 방법이므로 그 결과는 환멸뿐이지만, 다른 하나는 경험이 증명해 주는바 반드시 성공을 거둘수 있는 방법이다. (콩브) 강자의 권리는 권리가 아니며, 항의와 저항을 만나지 않는 동안만 권리로 통할 뿐이다. 그것은 마치 난방과 조명과 지렛대와 같이 없는 동안은 견디지 않으면 안 되는 추위와 어둠, 무게 같은 것이다. 인류의 모든 산업은 거친 자연으로부터의 해방이며, 정의의 진보는 바로 강자의 폭력이 제한되어 온 역사적 과정이다. 의학의 목적이 질병의 극복에 있듯이, 인간의 행복은 맹목적인 동물성의 극복, 곧 무분별한 욕망의 극복에 있다. 이리하여 나는 늘 하나의 법칙을…
손상된 관절 대신 인공관절을 몸속에 넣는 ‘인공 관절 치환술’. 대게 환자들은 ‘큰 수술이라 무섭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받는 수술이다’, ‘얼마나 오래 쓸 수 있는지 궁금하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특히, 인공 고관절 치환술은 수술 자체에 대한 부담과 인공관절수술은 치료의 마지막 단계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보다 더 신중하게 된다. 보통 인공 고관절 치환술은 나이가 들어 관절이 손상돼 하는 수술로 인식하는 사람이 많고, 일찍 수술하면 재수술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수술 시기를 최대한으로 늦추는 경우가 많다. 이와는 반대로 너무 나이가 많기 때문에 연령제한에 걸리는 건 아닐까 우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수술하기 적절한 나이’는 정해져 있지 않으며, 평균적으로 65세 전후에 수술을 받는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서 2020년 인공 고관절 치환술을 받은 2만 5600여 명의 환자 중 절반이상이 70대 이상으로 나타났다. 또한 70~79세 보다 80세 이상의 어르신 환자가 3000명 이상 더 많았다. 소위 100세 시대인 요즘 80세 전후로 수술을 결심한 환자들이 많았다. 대한골대사학회의 연구에 따르면 고관절이 한 번 부러지면 여성기준으로 2명 중 1명은…
전 세계적으로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일회용 컵 대신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다회용 컵인 텀블러를 사용하자는 운동이 일어났다. 정부에서도 일회용품을 규제키로 했지만 코로나19 감염 위험을 줄이기 위해 식품접객업 등에 일회용품 사용을 한시적으로 허용한 바 있다. 그러나 일회용품 사용이 급격하게 증가하자 고시를 개정, 다시 일회용품 사용을 금지했다. 올해 6월 10일에 매장 내 일회용품 사용에 대한 과태료 부과·일회용품 보증금제가 시행됐어야 하는데 현 정부는 시행을 유예, 실질적인 행정처분을 하지 않고 있다. 이에 환경운동연합 등 375개 단체는 17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에 매장 내 일회용품 사용에 대한 과태료 유예를 중단하고 일회용 컵 보증금제를 시행하라고 촉구했다. 아울러 일회용 컵 보증금제의 실효성 있는 시행을 위해서는 대상 사업자 매장 내 반환 시스템을 구축하고 보증금액을 인상하라는 등의 내용도 요구했다. 일부 사업자와 소비자들의 반발이 있지만 이들의 주장에 동의 할 수밖에 없다. 플라스틱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 중 61%가 생산 단계에서 발생하며 “이것이 플라스틱과 일회용품 생산·소비
지난주 우리를 곤혹스럽게 했던 소식이 기재부 장관의 국유재산 매각추진 발표였다. 흥청망청하던 공공기관의 파티는 끝났다며 성남과 시흥 등의 수도권에 있는 불필요한 공공기관의 부동산을 민간에 매각한다는 것이다. 국유재산의 민영화인 셈이다. 그러나 매각대상으로 공시한 9건의 부동산에서 여섯 곳이 논현동, 삼성동 등 서울 강남의 노른자위에 있는 건물들인데 숨기고 발표했다. 심지어 인근에 지하철역까지 계획된 부동산도 있었는데 말이다. 기재부는 민간 경제 활성화를 위한 매각이라고 하지만 그 활성화의 대상인 민간이 누구란 말인가. 매입조건도 분납 가능하며 정부 지원까지 줄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미 구입할 사람을 정해놓고 한 발표로 눈가리고 아웅은 아닌지 의심케 한다. 국가의 부채를 줄이고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라면 국채를 발행하거나 기업의 투자 욕구와 기업가 정신을 일으켜 국내 생산을 높일 생각을 해야지 손쉽게 국가의 재산을 민간에 팔아버려서 메꾼다는 발상이 참으로 어이가 없다. 우리는 IMF 외환위기 당시 국가가 헐값으로 넘어가는 순간에도 자신의 이익을 챙기던 공직자를 기억하고 있다. 검은 머리 외국인이라는 가짜 한국인들에 의해서 투자된 회사들에 의해 국부유출은 지금도
인조반정(仁祖反正)은 쿠데타다. 쿠데타로 왕좌를 빼앗은 자는 능양군(綾陽君) 이종(李倧)이고 빼앗긴 자는 광해군(光海君) 이혼(李琿)이다. 조카에게 왕좌를 빼앗긴 광해군은 강화도로 유배되었다. 쿠데타에 성공한 자들은 쫓아낸 광해군의 죄상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우리가 중국을 섬긴지 2백여 년, 의리로는 임금과 신하관계요 은혜로는 부모와 자식관계로다. 그러함에도, 배은망덕한 광해군은 천명을 어기고 오랑캐에게 투항하는 대역죄를 범하였음이라.” 명(明)과 후금(淸) 사이에서 관형향배(觀形向背)하던 광해군의 외교정책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사정이 그러하였으니, 쿠데타로 등극한 인조가 ‘숭명반청(崇明反淸)’을 부르짖은 건 당연했다. 인조와 쿠데타 세력은 명나라를 끔찍이도 ‘추앙’했다. 추앙의 정도가 어찌나 지극하던지, 왕은 명나라 황제의 신하이기를 자청했고, 쿠데타 주역들은 명나라 황제의 자식이기를 갈망했다. 신하이자 자식의 눈에 청나라가 제대로 보일 리 없었다. 그들에게 청(淸)은 오랑캐에 불과했다. 아버지 나라를 도와 청(淸)과 싸우겠다던 인조는 전쟁이 일어나자 궁을 버리고 도망치기 바빴다. 도망칠 때, 인조는 눈을 감고 귀를 닫았다. 감고 닫은 왕의 마음에 백
기도의 보람은, 네가 가장 선한 순간에 도달했을 때, 네 가슴속에 삶의 의의에 대한 최고의 깨달음을 주는 것이다. 신에게 봉사하는 내적 형식으로서, 신의 은총을 구하는 수단으로 이해되고 있는 ‘기도’란 공허한 미신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원래 언어를 필요로 하지 않는 존재인 신에게 언어로 자신의 소망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기도에 의해서는 우리는 본질적으로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으며, 또 신의 계율로서 우리의 마음에 각인된 의무의 하나를 수행한 것도 아니므로, 결국은 실제로 신에게 봉사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모든 행위를 통해 신을 기쁘게 하려는 마음으로부터의 소망, 다시 말해 우리의 모든 행위가 바로 신에게 봉사하는 거라는 마음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소망 속에는, 우리의 마음에 절대적으로 내재해야 하는 기도의 정신이 들어 있다. 이 소망에 언어와 형식을 부여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마음에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하는 수단일 뿐이다. (칸트) 이따금 어린아이처럼 누군가에게(신에게) 호소해 도움을 청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이것은 좋은 감정일까? 아니다. 좋지 않다. 그것은 나약한 마음이고 믿음이 없는 것이다. 뭔가를 간절히 소망하는 기도
‘에든버러는 꼭 가세요’ 젊은 날, 첫 해외여행인 유럽 배낭 여행을 앞둔 내게 영국 유학파 방송사 PD가 권했었다. 마음에 담았지만 일정상 무리였기에 ‘다음 기회에 꼭!’ 이라는 미지의 목록에 끼워 두었다. 그리고 20년 넘게 흘러버렸다. 아, ‘다음 기회에 꼭 ’의 목록에 담긴 채 회한의 십자가를 단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10월 중에 유럽 여행을 갈 예정인데 앞뒤 재지 않고 제일 먼저 ‘에든버러’를 집어넣었다. ‘지금 못하는 것은 영원히 못할 것이며 다음 번이라는 것은 없다’는 쓸쓸한 삶의 섭리를 깨달았기에. 에든버러는 스코틀랜드의 수도다. 스코틀랜드 하면 보통, 킬트(티탄이라는 체크무늬 남성용 치마), 백파이프, 스카치 위스키 등을 떠올리는데 월드뮤직 강사인 내게 이 나라는 졸업식장에서 부르는 ‘석별의 정’의 원곡이자 갑오개혁 직후 우리 애국가 멜로디였던,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의 나라다.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여/ 작별이란 웬 말인가 가야만 하는가...’ 로 시작되는 노래. 원곡 ‘올드 랭 사인’의 뜻은 스코트어로 ‘오랜 옛날부터’ ‘그리운 옛날’의 정도의 뜻. 우리가 부르는 ‘석별의 정’은 헤어짐을 슬퍼하는 노래인데 본
- 쿠보타 망언의 계보 1953년 10월 15일 한일교섭 3차 회담의 재산청구권 위원회 회의 석상에서 한국 측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 아래 한국민족이 겪은 독립운동가들의 투옥과 학살, 조선 민중의 인권박탈, 식량 강제공출, 노동력 착취 등에 대한 피해를 강조하자 일본 측은 다음과 같이 반론을 폈다. "그렇다면 일본 측도 보상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왜냐하면 일본은 36년간 벌거숭이산을 푸르게 바꾸었고 철도와 항구를 건설했으며 농지를 조성했고 대장성은 때로 2천만엔의 돈을 당시 조선에 지출하기도 했다. 일본은 한국에게 많은 이익을 주었다. 일본이 진출하지 않았더라면 한국은 중국이나 러시아에게 점령되어 더욱 비참한 상태에 놓였을 것이다.” 이른바 ‘역(亦)청구권 논리’를 폈던 것으로 3차 협상을 결렬시켜 1958년에 가서야 4차 교섭이 있게 한 ‘쿠보타 망언’이다. 이는 당시 일본 측 수석대표였던 구보타 간이치로(久保田貫一郞)의 발언으로, 식민지 지배는 조선인들에게 유익했고 일본이 아니었다면 더 극심한 고통을 겪었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수탈과 탄압, 학살과 전쟁동원으로 점철된 시기를 조선인들의 복리를 향상시킨 지배라는 말에 한국사회 전체가 격분했다. 한일교섭이…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맞았다. 취임 100일을 맞아 거의 모든 언론들은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점수 매기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런 것은 거의 “관습”이 됐는데, 이런 “관습”에 대해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사장도 취임 100일 동안의 평가를 받기 어려운데, 국가를 운영하는 대통령에 대해 100일간의 성적을 매긴다는 것은 의미도 없고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는 현 정권에 대한 점수로 25점을 줬다는 보도가 있다. 이준석 전 대표가 25점을 준 이유는 현재 지지율이 25% 정도이기 때문이란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매우 낮은 수준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윤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낮은 이유를 따져보면, 지지율이 곧 점수가 되기는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다. 윤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은 정책적 오류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의 원인은 대부분 1회성 사건에서 기인한다. 예를 들어, 김건희 여사의 지인을 봉하마을 방문 때 동행시킨다든지, 대통령실 비서관의 부인을 나토정상회의에 동행케 했다는 것들은 1회성 “사건”이지, 구조에서 기인하는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