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깊었다. 에어컨 환경이 좋은 도서관으로 가는데, 인도블록 틈 사이를 비집고 올라온 지렁이 사체가 눈에 띈다. 구리철사 토막인가 싶었다. 멈춰서 보니 지렁이 사체가 분명하다. 한 생명의 계절적 희생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 어느 신문에서 김형석 씨가 쓴 ‘100년 산책’을 읽게 되었다. 그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워싱턴 DC 부근 마운트버넌이라는 곳에 있는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저택과 농장과 그의 묘를 보고 소개한 글이다. 생전의 워싱턴은 자기를 내 농장 집 내가 지정한 장소에 그를 묻어달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국회의사당으로 옮기지 못하고 그의 유언대로 자기 저택 왼쪽 돌들이 쌓여 있던 경사지에 잠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가 대통령 임기를 마친 뒤, 주변의 간곡한 연임 권고를 거부하고 사저로 돌아와 살았을 때다. 찾아온 손님들이 대통령이라는 호칭을 쓰면 워싱턴은 ‘나는 대통령이 아닙니다. 대통령은 지금 백악관에 계십니다. 이름만 부르기가 어색하면 ‘파머(farmer농부)’라고 불러주세요.’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살아 있을 때 창고 비슷하게 사용하던 건물 안에는 그의 애용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가장 눈에 띄
알다시피, 한겨레신문은 국민에게 진실을 알리다 군사정권에 의해 해직된 기자들이 만든 신문이다. 그 해직기자들을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분이 바로 리영희 선생이다. 선생은 한겨레신문의 창간 멤버로서 재정적인 면에서의 기여는 물론이고 뼈를 깎는 실천으로 저널리스트로서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한겨레신문이 추구해야 할 정신과 방향을 제시해준 셈이다. 선생의 저널리즘 철학은 한 마디로 해서 진실의 추구였다. 선생이 『역설의 변증』(1987)에서, “이 글들을 쓰는 목적은 오로지 진실로 통용되고 있는 허위의 진상을 밝혀내고, 허위의 모임으로 이루어진 ‘허위구조’의 내면을 들여다보려는 것이다.” 라고 하면서 회고한 글이다. “사실 말이지 나에게 있어서 글 쓰는 작업은 자료수집이 거의 90퍼센트라고 할 수 있다. 그러자니 그 고생은 보통이 아니었다. 매 순간마다 국제관계 전반에 대해서 날카롭게 살펴야 하고, 하찮은 것같이 보이는 어떤 힌트가 있어도 그것이 빙산의 일각으로 돌출한 그 수평 아래 숨어 있는 거대한 진실의 덩어리를 찾아내려고 갖은 애를 썼다. 이런 일은 소위 국제정치학자들은 하지 않고 또 하지도 못하는 일이다.”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
- 관동대지진의 조선인 학살 연구 “계엄령으로 군대가 조선인을 죽이기 시작하지요. 동시에 경찰은 조선인 폭동을 선전합니다. 이를 본 민중은 자신들도 나라를 위한다며 재향 군인, 청년단, 소방단원들이 중심이 되어 자경단을 조직합니다. 그들은 조선인 사냥에 나서서 조선인이 판명되면 죽였습니다.”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대학살과 관련한 재일 사학자 강덕상(姜德相)의 진술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과 다르다. 단지 보통의 일본인들이 저지른 학살이라기보다는 이 학살에는 국가가 개입, 주도하고 있다는 역사적 사실이 밝혀져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계엄령은 내란 또는 전쟁 때 발령됩니다. 그런데 왜 지진이라는 자연재해에 대해 계엄령이 발령되었을까? 그리고 내란을 일으킨 자는 누구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러한 질문을 실마리로 해서 강덕상은 1975년 『관동대지진(關東大地震)』을 펴낸다. 국가에 의한 학살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진행되었는지를 사료(史料)와 증언으로 분석한 결과물이다. 그는 이후 『여운형 평전』을 2002년부터 시작해서 2019년까지 무려 17년간 네 권까지 마무리해서 출간하게 된다. ‘강덕상’이라는 이름이 국내까지 뚜렷하게 알려진 결정
본보는 경기도청공무원노동조합(경공노) 창립 16주년을 앞두고 강순하 위원장과의 인터뷰를 실었다.(14일자 3면) 강위원장은 김 지사를 만나본 직원들이 “전임 지사와 달리 부드러운 이미지가 있어 직원들이 안심, 편안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딱딱하지 않은, 소통하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공무원 생활도 오랫동안 하셨기 때문에 누구보다 공무원의 심리를 잘 아는 김동연 지사가 폭넓은 마음으로 도청 공무원들의 고충을 헤아려 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도지사로서 도민들과의 소통과 약속도 중요하지만 식구인 도청 직원들에 대한 배려와 신뢰, 소통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직원들에 대한 문제 해결을 지사가 적극적으로 해결해주리라는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이에 경공노 제16주년 창립기념식에 참석한 김지사도 경기도 공무원들의 권익과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화답했다. “어떤 일이든 대화를 나누며 함께 하고, 못하는 건 이유를 설명하면서 힘을 합쳤으면 좋겠다”고 단결을 강조했다. 공직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 더 고른 기회, 더 나은 기회를 함께 만들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강 위원장도 “경기도 집행부와 도의회 간 상생, 공정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30% 초반대로 하락했다. 조중동은 사설로 ‘인사, 검찰, 대통령 발언, 김건희’를 원인으로 지적했다(미디어오늘, 7.13자). 지지율 회복을 위해 여권은 ‘서해 공무원 피살’ ‘어민 북송’이라는 ‘신북풍 몰이’를 전략으로 삼은 듯하다. 하지만 매카시즘(초보수적인 반공주의)에 불과하다. ‘해묵은’ 전술이다. 어떻게 해야 대통령 지지율이 상승할 수 있을까? 문제 중 하나로 지적된 ‘김건희 여사’는 윤 대통령의 나토회의 참석 후 ‘두문불출’. 리스크 관리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마찬가지로 ‘대통령 이미지(President Identification)’도 관리를 해야 한다. ‘인사’, ‘검찰’은 부차적인 문제일 수 있다. 대단한 사건도 아닌 대통령의 발언, 혹은 복장 등이 대단한 문제가 되어버린 형국이다. 하지만 도어스테핑 중 “전 정권에 지명된 장관 중에 그렇게 훌륭한 사람 봤냐?” “(지지율) 의미 없다. 신경 안 쓴다”는 발언은 대다수의 사람이 ‘틀렸다’고 봤다. 그것은 상식이다. 국민과 언론이 두렵지 않다는 뉘앙스가 풍겼다. 대통령의 발언은 영향력도 영향력이지만, 국민적 관심거리다. 대통령 발언의 중차대함을 간과한 과실(過失)이 아
미국 언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아베 총살과 관련해 우리나라 안중근 장군의 이등박문 총살(1909년)을 언급한 것을 두고 국내 일각(一角)에서 ‘말’이 일고 있다. ‘이토(이등박문)를 처벌한 것은 독립운동 차원이었다.’는 것이다. WSJ가 말하듯 ‘정치폭력 역사’에 해당하지 않으니, 미국인들의 역사인식 부재(不在)가 드러났다는 얘기다. 먼저 명확히 할 것이 있다. 안중근 장군의 이토 총격은 (충무공 이순신 제독의 그것처럼) 한일(韓日) 간 전쟁에서의 전투행위다. ‘독립운동’을 넘어서는 뜻이다. 우리 임시정부 김구 주석 등과의 협의를 거친 작전을 수행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침략 두목을 처벌한 하얼빈 역의 총격은 당연하다. 또 당당하다. 그게 그거 아녀? 할 이 있을까? 우리나라를 남한(South Korea)으로 부르는 것과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으로 부르는 것의 차이보다 훨씬 큰 의미의 차이가 있다. 미국(언론)의 ‘정치폭력’ 시각(視角)도, 국내 일각의 ‘독립을 위한 민간운동(캠페인)’ 시각도 교정(矯正)되거나 조정(調整)되어야 마땅하다. 다만 처절한 전쟁이었다. 흔히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할 때) 했듯, 뒤통수를 몰래 봐버리
나는 숙박형 체험학습 반대론자에 가깝다. 반대하는 이유가 대단히 많은데 가장 크게 작용한 게 어린 시절 겪었던 수학여행이 지옥의 모습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낮까지는 평범한 체험학습인데 저녁이 되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일탈이 벌어졌다. 누군가는 술을 텀블러에 담아서 오고, 다른 누군가는 캐리어 숨은 공간에 소주를 넣어왔다. 밤이 되면 온갖 일탈이 벌어졌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 숙취에 절여진 채 전세 버스에서 내리지도 못했던 기억이 있다. 가장 끔찍했던 체험학습의 한 장면은 중학교 수학여행 첫째날 밤에 친구가 만취해서 똑같이 만취해서 복도를 돌아다니던 교사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던 모습이다. 아무리 소지품 검사를 해도 무언가를 귀신같이 숨겨오는 아이들을 다 잡아낼 수 없었다. 나도 우리 방 분위기에 휩쓸려서 일탈을 함께 저질렀고 인생의 커다란 흑역사로 남았다. 굳이 경험하지 않아도 될 일을 경험한 셈이다. 수학여행을 반대하는 또 다른 이유도 야간에 벌어지는 사건, 사고를 교사가 다 막을 수 없다는 데 있다. 닫힌 문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교사는 알 수 없고,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져야 하는 게 몹시 부담스럽다. 교사들이 밤마다 순찰을 돌며 아이들을 재워도
1. 봉준호 감독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게다. 2000년 ‘플란다스의 개’로 데뷔해서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 ‘설국열차((2013)’ 등 히트작을 찍었다. 드디어 2020년 ‘기생충’으로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한 아카데미 4개 부문 영화상을 휩쓸었다. 1969년 9월생이니 50대 초반이다. 그런데도 이미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필모그래피 가운데 ‘옥자(2017)’가 있다. 한국 영화 최초로 OTT 채널 넷플릭스에서 전액 투자를 받은 작품이다. 식용육 생산을 둘러싼 글로벌 자본의 일그러진 탐욕을 그린 영화다. 여기서 옥자는 ‘미란도’라는 다국적 식품회사에서 유전자 조작으로 만든 슈퍼돼지의 이름. “환경파괴를 최소화하고 사료도 적게 먹고 배설물도 적게 싸는” 완벽한 돼지다. 강원도 산골 소녀 미자가 한 식구처럼 기른 옥자는 뉴욕으로 강제 이송되어 씨받이가 된다. 그리고 갈갈이 몸이 찢겨 가공식품이 될 위기에 처한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는 식품회사 CEO 미란도가 (영화 속 광고에서) 소비자에게 던지는 다음의 메시지다, “저희 회사 변혁연구소와 미란도 동물복지센터에서 혁신적인 비밀연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