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기본소득제에 관심을 갖은 건 최근. 2001년 사회학자 다케가와(武川 正吾)는 학생들이 기본소득을 공부할 수 있도록 ‘사회정책 교과서’를 출간했다. 그러나 처음 5년간, 기본소득은 실현 가능한 정책이 아니라 유토피아적 발상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2006년 이후부터 상황은 반전해 기본소득제 연구가 활발해졌고, 2010년까지 출판된 논문은 108개나 됐다. 특히 야마모리(山森 亮) 교수는 《기본소득 입문(ベーシック・インカム入門)》을 출판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금상첨화로 2010년 “기본소득 일본네트워크(BIJN)”가 창설됐다. 이때부터 일본 정치권은 기본소득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2010년 참의원선거에서 신당일본(新党日本)이 처음으로 기본소득을 거론했고, 모두의당(みんなの党)은 기본소득이라는 명칭은 사용하지 않았지만 ‘기초연금과 생활보호수당을 통합한 미니멈 인컴’을 공약했다. 그러나 기본소득이 정치적 어젠다로 크게 부각된 것은 2017년 중의원선거. 동경 도지사 고이케(小池 百合子)가 이끄는 희망당(希望の党)이 인공지능시대를 맞이하여 기존의 사회보장제도를 기본소득제로 전환할 것을 주장했다. 모두의 당과 신당일본 역시 기본소득을 공약했고, 일본 사
사법부가 정의를 실현하는 마지막 보루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다. 아무리 사회가 썩어도 그래도 최후의 보루로서 사법부가 살아 있다면 그 사회의 건강성은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승만 정권의 부정과 부패를 비난하면서도 그래도 초대 사법부 수장이었던 가인 김병로 선생의 행적을 기억하고 또 죽산 조봉암에게 양심적 판결을 내렸던 유병진 판사와 법복을 입은 성자였던 김홍섭 판사를 떠올리며 “그래도 그 시절 믿을 곳은 있었어”하는 위안을 삼는 것처럼 말이다. 애석하게도 지금은 존경받는 판사의 계보는 누가 잇고 있는지 모르겠다. 국민은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당하면 마지막으로 하소연할 곳이 사법부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의 사법부는 국민의 기대보다는 권력에 기대고 최근 들어서는 돈의 위력에 의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급기야 지난 7일에는 소송한 지 6년 만에 열린 재판에서 어처구니없는 판결이 나왔다. 이미 두 차례나 대법원의 확정판결로 피해를 인정받은 일제의 징용피해자들이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각하 판결을 했는데 판결 논리가 가관이다. “일본의 식민지배를 국제사회는 불법으로 보지 않는다”, “강제동원의 불법성은 국
내가 진료하는 한의원의 이름은, 말하자니 좀 쑥스러운데, 어느 작명소에서 지었다. 나의 진료공간을 시작한다는 두려움반 설레임반으로 소개받은 작명소를 찾아 작명해주는 분이 제안한 이름 여럿 중에서 부르기 쉬워보이는 ‘다강’으로 선택하였다. 생소한 조어라 그런지 개원하고 다강이라는 한의원이름의 뜻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럴 때 “‘많을 다(多)’ ‘편안할 강(康)’ 으로 ‘강’자는 건강에서의 강자예요. 몸도 마음도 자신도 주변도 두루두루 다 편안하고 건강하라는 뜻이랍니다.” 라고 설명하면 정말 한의원 이름답다고 하며 끄덕끄덕했던 분들의 기억이 지나간다. 우리말에서 건강이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아무탈이 없고 튼튼함, 또는 그런상태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굳세고(健) 편안함(康)으로 정신과 신체가 튼튼하고 온전할 때 탈(어려움,고통)없이 편안하다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데 이는 한의학에서 정기가 튼튼하면 병이 오지 않는다.(정기존내 사불가간:正氣存內 邪不可干)의 온전함에 중심을 두는 관점이 언어에도 스며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영어에서는 건강(health)는 질병의 부재(absence of illness)로 정의되는 것이 재미있는 일이다. 실제로 질
인간의 거의 모든 지식은 노동하는 사람들의 수고를 덜어주는 것이 아니라, 부자들의 게으름을 거들고 그것을 장식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인간의 본성을 배반하는 삶을 살아온 현대인들은, 바로 그러한 삶이 가장 참된 삶이라고 끊임없이 사람들을 설득하려 한다. 현재, 문화라고 불리고 있는 것, 즉 학문, 예술, 온갖 형태의 진보와 발달은 모두 인간의 정신적 욕구를 기만하려는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 어린이가 어른을, 어리석은 자가 지혜로운 자를 지배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에 어긋나듯, 굶주린 군중이 생활필수품도 없어서 쩔쩔매고 있을 때 몇몇 사람들이 사치품에 싫증내는 것은 자연의 법칙에 어긋나는 것이다. (루소) 식인(食人)의 시대에는 강자가 약자를 먹었다. 단적으로 말해 약한 자의 살을 먹었다. 그 뒤 온갖 법률이 정해지고 온갖 학문이 발달했지만, 무자비한 강자는 오늘날까지 여전히 불행하고 힘없는 약자들을 착취해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이 그 살코기를 먹지 않고 그 피를 마시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약자를 곤경과 궁핍에 빠뜨리면서 살고 있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 가혹한 노동으로 몸을 망쳐가면서 한평생 자신과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고생하고 있
지난해 1월부터 시작된 코로나19 확산세가 올해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사회적 거리 두기를 통한 비대면 생활은 이미 우리의 주요 생활 방식으로 자리매김했다. 최근 코로나19 백신 접종으로 일상으로의 복귀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는 있지만, 코로나19 장기화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진 요즘 ‘우리 가정’은 과연 얼마나 안전한가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2018~2020년 최근 3년간 주택화재는 전체 화재의 27.8%이고, 전체 화재 사망자 중 55%가 주택화재로 인한 사망자이다. 이러한 통계는 주택화재 시 인명피해에 대한 높은 위험성을 알려주며, 동시에 주택화재 예방과 초기대응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주택화재로 인한 사망자가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일반주택은 화재 안전시설이 아파트보다 상대적으로 적게 갖춰져 있거나 아예 없어, 화재에 매우 취약하다는 점이다. 이에, 지난 2012년 2월 5일 소방시설법 제8조가 시행되면서 일반주택에도 주택용 소방시설인 소화기와 화재경보기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고 있고 설치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지만 지난해 기준 전국 62%로 아직 많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주택용 소방시설
성추행 피해를 호소하다가 지난달 22일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여부사관 이 모 중사 사건의 여파가 일파만파다. 여야 정치권과 국방부 등이 성범죄 근절 TF, 특위, 민간자문단 구성 등 뒷북을 치느라고 호들갑 떠는 익숙한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인권문제가 그렇듯이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비상벨’이 오작동하거나 고장이 난 상태로 방치되는 게 문제다. 특히 군문에서 일어나는 성범죄는 지휘관에게 책임과 불이익이 과다하게 돌아가는 문제도 개선돼야 한다. 개혁해야 할 과제가 다분히 복합적일 수밖에 없다. 공군 여부사관 이 모 중사 사건은 군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범죄가 어떻게 불합리하게 다뤄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사건은 군 사법체제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군사경찰이 이 중사 사건을 4월 7일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으나 군 검찰은 계속 미적거리다가 피해자가 고통을 못 견뎌 목숨을 끊은 지 9일 뒤인 5월 31일에야 피의자를 처음 조사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명령과 복종의 계급구조가 생명인 군문에서 일어나는 각종 범죄 중에서 성범죄는 단순히 볼 수 없는 측면이 있다. 다수 부하를 통솔해야 하는 개별 지휘관의 역량만으
진실이 없으면 선은 있을 수 없다. 선량함이 없으면 진리를 전할 수 없다. 선과 진리는 마차의 두 바퀴와 같다. 진리를 아는 자는 진리를 좋아하는 자보다 못하고, 진리를 좋아하는 자는 진리를 즐기는 자보다 못하다. (공자의 지(之)를 진리로 해석함) 덕으로 증오에 보답하라. 모든 일은 아직 쉬워서 더 어려워지기 전에 점검하고 대책을 강구하라. 또 작은 일은 커지기 전에 처리하라. 천하의 가장 어려운 일도 반드시 쉬운 일에서 시작되며, 천하의 큰일도 반드시 작은 일에서 시작된다. (노자) 덕에 이르는 두 길이 있다. 올바를 것, 생명이 있는 것에 악을 행하지 않을 것이 그것이다. 진리를 결코 폭력으로 맞서지 않는다. 그 밝은 빛과 내면의 강인함이 무엇보다 강하게 악을 타파한다. (소로) 모든 악은 나약함에서 생긴다. (루소) 위선보다 나쁜 것은 없다. 위선은 노골적인 악보다 더 불쾌하다. 씨ᄋᆞᆯ 여러분, 길은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참이 길이요 생명이 길입니다. 살자는 것, 스스로 살았다 믿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믿으면 삽니다. 믿지 않으면 이미 죽었습니다. 참을 하면 반드시 이길 것입니
오멸(吳滅. 본명 오경현) 감독이 영국産 오프로드 차 광고에 나오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감독이 이 차를 타고 다닌다는 걸 앞세운다. 오멸이 짚차를 타고 제주 해변을 다니며 우리에게 전하려는 얘기는 무엇일까.가 광고의 컨셉이다. 그건 그다지 새롭지 않았다. 실제로 놀랐던 것은 광고의 앞 부분이 영화 ‘지슬’의 장면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지슬’은 제주 4.3 항쟁을 다룬 극영화이다. 광고는 한 아이가 동네 어른들이 피신해 있는 서귀포의 큰넓궤로 달려가 동굴 입구를 들여다 보는 장면을 보여 준다. 4·3이 광고에 나오다니. 그렇다면 4·3조차 상업화된 걸까. 아마도 그건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4·3의 문제가 이제 그만큼 대중적 인식으로 자리 잡았다는 얘기가 아닐까. 이승만 정권과 그 이후의 반공 정권이 수십년간 좌익의 준동이니 좌파들의 난동이니 하며 온갖 흑색선전을 뿌려댔어도, 심지어 공적 교과서에도 그렇게 기술하려 했어도, 역사의 도도한 흐름은 이제 광고에까지 스며들고 있음을 보여 준다. 오멸감독 역시 그런 시대적 흐름을 간파했을 것이다. 광고 출연료도 짭짤했을 것이다. 그 돈은 그가 또 다른 독립영화를 만들
중국 역사는 무궁무진의 스토리텔러다. 호기심도 제일이고 머리도 으뜸인 학자가 평생을 바쳤더라도, 그는 노년에 코끼리의 새끼발톱을 만진 인생이었다, 고 술회해야 할 것이다. 그 중 우리에게도 익숙한 '요순시대'라는 태평성세가 있었다. 4000-5000년 전이었다. 자료에 의하면, '요'(堯)는 인류역사 5000년을 통틀어 전무후무한 성군(聖君)이었다. 현대의 국가지도자들 중에는 역시 하나의 전설이 된 호세 무하카 전 우루과이 대통령이 떠오른다. 이 분은 아흔 살의 노인인데 아직도 1987년형 소형차를 운전하며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요임금을 성군으로 만든 또다른 업적은 아들에게 왕위를 승계하지 않고 천하를 다스리기에 최적의 인물을 찾아다녔다는 점이다. 그 큰 올바름이 또 하나의 신화가 되어 그 장구한 세월 동안 동양세계의 정치사상과 시문학에 마치 펄펄 뛰는 생선처럼 살아있다. 정보를 종합한 결과 허유(許由)가 최적이었다. "선생이 내 자리를 이어주시오." "뱁새는 숲이 필요한 게 아니라, 나뭇가지 두셋만 있으면 됩니다. 두더지도 황하의 물을 필요로 하지 않고 그저 목을 축이면 족합니다." 왕은 다시 찾아가서 간청했으나, 허유는 그 역시 단호하게 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