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은 모질게 추웠다. 물어물어 겨우 찾아간 여수 돌산대교에서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칼바람을 맞으며 이젠 더 이상 우리 관계에 희망이 남아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해가 저무는 돌산대교에서 오랜 인연을 이어오던 연인을 그렇게 떠나보냈다. 80년대부터 시작된 수배생활이 4년차에 접어드는 시절이었다. 그 겨울이 지나고 몇 달 후 나는 전해 들었다. 그녀는 나랑 헤어지자 말자 처음 맞선을 본 남자와 한 달 만에 결혼해버렸다는 사실을.. 나에겐 세상이 끝난 것만 같았다. 당시의 나는 사람 마음이 변했다는 자체를 이해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었다. 세월이 흐른 후에야 깨달았다. 그녀가 떠난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이었음을.. 희망이 없으면 흔들림이 당연한 것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내가 얼마나 답답했겠냐고.. 시간이 흘려 YS문민정부가 들어서고 신분정리가 되면서 나는 철도기관사가 되었다. 처음 기관차를 타던 90년대 지방의 철길 건널목에는 차단기도 없는 곳이 많았다. 반면에 어떤 건널목은 차단기에 건널목 안내원까지 근무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건널목에는 대부분 기관사들끼리 부르는 이름이 붙어있었다. 예를 들어 ‘김철*건널목’, ‘박영*건널목’ 식으로.. 알고…
1. 기적은 없었다. 충격적인 것은 단순히 패배의 외형이 아니라 내용이다. 부산 시장선거의 경우는 거의 더블 스코어로 졌다. 이번 선거는 극우정당의 대 승리가 아니라 민주당의 대 패배인 것이다. 국민의힘 후보들은 역대 최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른바 MB의 정통 후계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정부와 민주당이 싫어서 투표장에 나오지 않았다. 나온 사람들은 반대정당에 몰표를 던졌다. 탐욕이 승리한 선거라고 평하는 이들이 있다. 심지어는 언론과 검찰이 문제라고까지 말한다. 패배의 원인을 외부에 돌리는 시각이다. 나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 민주당과 청와대에 문제가 없어서가 아니라 문제가 많았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에 실망하고 분노한 철저한 응징 투표였기 때문이다. 이런 정서적 거부에는 백약이 무효였던 게다. 지난 지선, 대선, 총선과 비교해서 가장 극적인 민심이반이 일어난 곳이 2, 30대 청년 계층이다. 특히 20대 남성 유권자의 경우 70퍼센트 이상이 국민의힘 후보에 표를 던진 걸로 나온다. 서울과 부산 모든 지역구 단위에서 처참한 패배는 청년층의 이 같은 투표 결과로 봐야 한다. 2. 선거 전 여론조사를 통
시간의 수레바퀴는 벚꽃이 피는 봄인 시점에 도착해 있다. 코로나 사태로 온 세상이 뒤숭숭한 가운데 맞이한 올해도 벌써 3개월이 흘렀다. 올해 4월 11일은 102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기념일이다. 이날을 기억하는 국민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1990년 4월 13일 제71주년 기념식부터 정부주관 행사로 거행하는 국가 기념일이다. 그런데 왜 2019년 4월 13일에서 11일로 기념일이 변경되었을까? 그 이유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 중에서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역사적 의의가 있다는 내용에 기인한다고 명시돼 있다. 역사학계에서 발견한 추가 자료를 비롯해 학계의 전반적인 의견 따라 제1회 임시의정원 회의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헌법인 임시헌장이 공포된 날인 4월 11일을 기리기 위해 2019년에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4월11일로 기념을 변경하였다. 국가보훈처에서는 “새로운 백 년 희망을 짓다” 라는 모토로 서대문독립공원 인근의 서대문형무소 전체가 보이는 현저동 산 5-5 부지에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을 건립 중으로, 오는 11월 23일 개관을 앞두고 있다.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이 개관이 기다려지는…
세계보건기구(WHO)는 2002년 송전탑에서 생기는 극저주파를 ‘인체 발암 가능 물질’로 지정했다. 각종 암과 백혈병 등 치명적인 질병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어린이에게 백혈병의 위험이 더 높다는 것이다. 수원시의회 윤경선 의원(진보당, 금곡·입북동)이 지난해 12월 18일 본회의에서 입북초등학교 주변 고압송전탑의 지중화를 촉구했다. 윤의원은 “극저주파 전자파에 관한 역학 연구에 의하면, 다른 지역의 어린이에 비해 고압전선 주변에 거주하는 어린이에게 백혈병의 위험이 더 높게 나타났다고 보고됐다”고 밝혔다. 국제암연구소(IARC)가 극저주파 및 고주파 전자파를 사람에게서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물질(Group 2B)로 정의하고 어린이에게 가능한 한 노출을 줄일 것을 권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수원시 권선구 입북동에 있는 입북초등학교는 3면을 고압선이 에워싸고 있다. 가장 가까운 송전탑은 불과 약 120m거리에, 다른 송전탑들도 각각 약 180m, 210m에 위치해 있다. 뿐만 아니라 바로 옆에는 변전소까지 있다. 주민들에 따르면 15만4천V 초고압 전류가 흐르는 고압선은 비나 눈이 오는 날에는 스파크 튀는 소리로 요란하다고 한다. 그 고압선…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 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이런 시대에 있어서 모든 것은 새로우면서도 친숙하며, 또 모험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결국은 자신의 소유로 되는 것이다." 게오르그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심설당) 도입부에 나오는 이 문장은 아름다워서 책만큼이나 유명하다. 그런데 과연 그런 시대가 있었을까? 하지만 이를 역사적 실존의 문제가 아닌 인문적 상상력의 문제로 보면 쉽게 와 닿는다. 별빛만큼은 아닐지 모르지만 지식인들이 길을 훤히 밝혀주던 시대가 있었다. 몇 년 전 작고한 전 한양대 리영희 교수는 그런 지식인 중 한 명이었다. 그의 책과 칼럼은 새로우면서도 친숙했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문장, 빽빽하게 차 있는 사실 관계, 명확한 인과 관계,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메시지. 판금도서였던 그의 명저『전환시대의 논리』(창작과비평)는 군사정권을 폐부에서 균열내기에 충분했다. 거짓된 지배 이데올로기를 정면으로 비판해 당시 한국 사회가 우상을 걷어내고 이성을 회복하는데 소금과 같은 역할을 했다. 이즈음 기성 언론이 간판급 지식인으로…
걸어야 할 운명의 길 같이 아침에도 산길을 걸었다. 갑자기 칸트의 산책에 따른 생각이 떠올랐다. 칸트는 일어나서 홍차 두 잔으로 아침 식사를 대신하고 산책길에 나섰다고 한다. 동네 사람은 산책길의 칸트를 보고 시간을 가늠했다. 그만큼 그는 정확히 그 길을 통과했다는 것이다. 돌아와서는 달력의 여백에 그날 산책길에서 전날과 달라진 자연의 미세한 변화를 적어두었다. 칸트는 아침밥은 간단하지만, 저녁밥은 자신이 직접 요리하여 네댓 시간 동안이나 즐겼다. 그의 요리는 그 시절 그 시기에 가장 알맞은 음식을 먹는 것이 큰 낙이었다고 한다. 나이가 불어날수록 세월의 유속은 불자동차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봄에 새순의 차를 달여 마시면 마음 가벼워지고 두 겨드랑이 밑에서 서늘한 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언제 한 해가 지나가고 내일모레면 차나무 밭에서 풋것의 향기에 취할 것 같다. 신춘문예 시상식을 간략하게 마친 다음 날이었다. J 신문 논설위원과 문화부 기자와 함께 식사하기 위해 어느 음식점 2층 독방에서 만났다. 신춘문예 심사를 하면서 업무적으로 만나 수고한 관계지만 차가운 세상에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되어 만났다. 나는 이야기를 듣는 입장으
죄를 짓지 않고서는 노동의 의무를 피할 수 없다. 즉 폭력을 행사하거나 폭력에 아부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빵을 얻기 위해 인간으로서의 지조를 잃을 바에는 굶어 죽는 것이 낫다. (소로) 황금의 띠를 두르고 남의 종이 되기보다는 자신의 노동으로 얻은 빵을 편안한 마음으로 먹는 것이 낫고, 자기가 노예라는 표시로 가슴 위에 두 손을 포개고 있기보다는 그 손으로 석회나 진흙을 이기는 것이 나으며, 노예처럼 허리를 굽실거리기보다는 한 조각의 빵으로 만족하는 것이 낫다. (사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구걸할 바에는, 새끼줄을 들고 숲으로 땔나무를 하러 가서, 그 땔나무 한 단을 팔아먹을 것으로 바꾸는 것이 훨씬 낫다. 먹을 것을 구걸해서 얻지 못할 때는 부끄럽고 화가 날 것이고, 또 얻으면 얻는 대로 더욱 나쁘다. 왜냐하면 준 사람에게 빚을 지게 되기 때문이다. (마호메트) 땅을 갈지 않는 자에게 땅이 말했다. “너는 그 오른손과 왼손을 사용하여 나를 갈지 않는 벌로서, 영원히 뭇 거지들과 함께 남의 집 문전에 서서, 영원히 부자들이 먹다 남긴 찌꺼기를 얻어먹게 될 것이다. (조로아스터) 땀 흘려 일하는 생활이 게으른 생활보다 고귀하다는 것을 확신하고, 스스
내가 외운 최초의 한시(漢詩)는 '대장부가'(大丈夫歌)다. 복학하여 '맹자 원전강독'을 들었는데 이 시가 너무 좋았다. 중국에는 수교 초부터 드나들었다. 현지 파트너들과 만찬을 할 때면 매번 통역사인 친구가 여급에게 백지와 펜을 부탁한다. 취기가 오른 나는 과장된 폼을 잡고 이 위대한 시를 내려 쓰곤 했다. 그러면 모두 놀란다. 한번은 그 덕분에 큰 계약을 쉽게 한 적도 있다. 중국측 대표가 맹씨였다. 그에게 이 시를 써주었다. '非常棒(비상봉)!'은 그의 칭찬. '엄청난 인물'이란다. 大丈夫歌(대장부가) 대장부의 노래 居天下之廣居(거천하지광거) 거하되 천하에서 가장 넓게 자리 잡으라 立天下之正位(입천하지정위) 서되 천하에서 가장 올바른 자세를 취하라 行天下之大道(행천하지대도) 행하되 천하에서 가장 거침 없이 나아가라 得志 與民由之(득지여민유지) 뜻을 얻으면 백성들과 함께 하고 不得之(부득지) 獨行其道(독행기도) 뜻을 얻지 못하면 혼자서 그 도를 닦아라 富貴不能淫(부귀불능음) 부귀는 그를 삿되게 하지 못한다 貧賤不能移(빈천불능이) 빈천도 그를 시시하게 만들지 못한다 威武不能屈(위무불능굴) 위력 권세도 그를 결코 굴복시키지 못한다 此之謂大丈夫(차지위대장부)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