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 피카소 탄생 140주년을 맞아 그의 작품 110점이 서울에 왔다. 이번에 전시된 진품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그림은 단연 ‘한국에서의 학살’. 이 작품은 피카소의 ‘반전(反戰) 3대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널리 알려진 ‘게르니카’의 한국판이라고나 할까?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0월 중순부터 12월 말까지 황해도 신천에서 일어난 양민학살을 그렸다. 부녀자와 어린이를 포함해 주민의 4분의 1이 떼죽음을 당했다. 도대체 누가 이런 만행을 저질렀나? 남과 북의 ‘공식 기억’이 서로 다르다. 남한에서는 공산당을 지목하고, 북한에서는 미군에게 책임을 돌린다. 스페인의 프랑코 정권에 저항해 프랑스로 망명한 피카소는 1944년에 공산당원이 되었다. 그런 그가 1951년 1월에 ‘한국에서의 학살’을 그렸으니, 여기 묘사된 학살의 주체는 미군으로 해석될 공산이 크다. 해서 이 그림은 미국의 환대를 받지 못했다. 피카소가 죽은 뒤 한참이 지난 1980년이 되어서야 처음 미국 전시가 허용되었다. 이런 이력을 지닌 ‘한국에서의 학살’이 드디어 대한민국에 상륙한 것이다. 가로 210㎝, 세로 110㎝의 대작이다. 왼쪽에는 임신한 여인들과 순진무구한 어린이들이 알
부자 그리스도인이란 발 없는 경주마라는 말과 같이 모순된 말이다. 세상에서 상대방에 대한 존경심은 그 사람의 가진 부에 정비례하며, 인간의 내면적 가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러나 진정 깨달은 사람은 이성적 존재로서의 ‘나?’에 대한 존경심에서 재물과 돈을 부끄러워한다. (에머슨) 이번에는 부자들에게 한 마디 하겠습니다. 당신들에게 닥쳐 올 비참한 일들을 생각하고 울며 통곡하십시오. 당신들의 재물은 썩었고 그 많은 옷가지들은 좀먹어 버렸습니다. 당신들의 금과 은은 녹이 슬었고 그 녹은 장차 당신들을 고발할 증거가 되면 불과 같이 당신들의 살을 삼켜 버릴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나는 도처에서 사회복지라는 이름하에 자신만의 이익을 좇아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는 부자들의 음모를 보고 있다. (토머스 무어) 부는 오만과 잔인, 자만으로 인한 난폭, 부패와 타락의 뿌리이다. (퓨지) 차라리 부자의 냉담함이 그들의 동정심만큼 잔인하지 않다. (루소) 부자를 존경해서는 안 된다. 그들을 가엾게 여겨야 한다. 부자는 자신의 부를 자랑할 것이 아니라 부끄러워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의 획득은 자본(판돈)의 크기에 달려 있다. 이는 일종의 도박장에서의 카드놀이
‘강함’의 정의는 무얼까. 이기는 것일까, 아니면 살아남는 것일까. 승자와 패자의 관점으로 바라봐선 답이 없는 질문이다. 펜과 칼의 강약(强弱)은 누가 쥐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죽이려는 자에게는 독이지만 살리려는 자에게는 약인 것, 그것이 펜과 칼이다. 펜과 칼의 두 얼굴은 역사가 증명한다. 펜과 칼이 백성을 위할 때 세상은 흥(興)했고, 펜과 칼이 권력을 탐할 때 세상은 망(亡)했다. 펜과 칼의 본질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돌이켜보면, 우리 역사에 기록된 펜과 칼은 백성을 위하지 않았다. 숱한 역사 속에서, 펜과 칼은 권력을 빼앗거나 탐하는 흉기로 쓰였다. 칼을 겨누며 협박하고 펜을 갈기며 조롱했다. 진짜를 밀어내고 가짜를 내세웠다. 가축을 죽이듯 칼이 춤을 추면 흘린 백성의 피를 펜이 지웠다. 다 죽이고 다 지울 때, 백성은 백성이 아니고 개 돼지였다. 일제와 결탁한 친일파들이 그랬고, 이승만을 앞세운 친일잔당이 그랬고, 군부독재와 놀아난 온갖 나팔수들이 그랬다. 칼이 앞에서 북을 치면 펜이 뒤에서 나팔을 불었다. 황국신민, 유신헌법, 정의구현, 떠들썩한 구호가 활개 칠 때마다 세상은 눈이 멀고 백성은 귀가 막혔다. 지금은 어떠한가. 대한민국을 제…
지구에서 가장 많은 산소가 만들어지는 곳은 어딜까요? 질문을 던지자 아이들이 신나서 대답한다. "숲이요!", "아마존 아닌가요?" 대체로 나무와 관련된 답들. 바로 답을 말해주지 않고 한참 뜸을 들이고 있으니 눈치 빠른 아이 하나가 숲이 아닌 다른 곳인 거 같다고 답을 정정한다. 아이들을 둘러본 후 정답이 '바다'라고 말하자 교실이 혼란의 도가니에 빠진다. 바다에 들어가면 숨을 쉴 수 없는데 어떻게 바다에서 산소가 나오냐는 아이부터, 책 어디선가 아마존이 지구의 허파라고 써 있는 걸 봤다는 아이까지 다양한 반응이 나온다. 한껏 흥분한 아이들을 진정시키면서 바다에서 산소가 발생하는 원리를 설명한다. "바다에는 작은 플랑크톤이 사는데 그 친구들이 번식하면서 산소를 배출합니다. 우리가 숨쉬는 산소의 절반 이상은 바다에서 옵니다." 우리반 친구들과 환경 수업을 처음하면 어디에서 산소가 제일 많이 나오는 지를 알아본다. 바다가 만들어 내는 산소를 확인시키며 아이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스키마(Schema)를 깨뜨린다. 그 후에 바다가 얼마나 심하게 오염되어 있는지 준비한 사진과 영상 자료를 꺼낸다. 주로 바다에 떠 있는 한반도 7배 크기의 쓰레기 섬과 인간이 버린 쓰
미디어 환경의 변화니 커뮤니케이션 혁명이니 하는 말들이 무성했던 세월이 족히 반세기는 된 것 같다. 근래에는 미디어 환경 대신에 생태계 변화라는 말로 바뀌었다. 수사적 표현이 아니라 실제 그 변화가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충격적이어서 그런지 요즘은 이런 호들갑이 뜸해지고 연구자와 언론사, 기자들 모두 각자도생 하느라 바쁘다. 연구자는 본질을 놓치고 현상을 좇느라 여념이 없고, 언론사는 생사의 갈림길에 선 듯 절실하고, 기자들은 ‘단독’을 만들어내느라 분주하다. 일컬어 ‘탈진실(post-truth)’의 시대라고 하던가. 후기 자본주의, 탈 산업사회, 포스트모더니즘 등 포스트주의가 유행하던 때도 있었다. 일리도 있고, 정보사회론의 대두와 미시담론의 발견 등 공(功)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상대주의를 앞세우며 진실을 부정한다는 데 있다. 진실은 상대적이며, 절대적 진실은 없다는 것. 탈진실의 시대를 설명하는 구호다. 그 결과 대학은 진리 탐구의 전당에서 취업학원으로 전락했고, 언론(저널리즘)은 객관보도의 원칙을 폐기하고 상업적 선정주의에 빠졌다. 그리고 기자는 기레기가 되었다. 오래 전부터 대학의 언론관련 학과에서는 저널리즘의 역사와 철학을 가르치지 않는다. 따라
차기 대선이 9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다. 여야 모두 지도부 정비를 마쳤다. 정치권의 시계는 대선을 향해 빠르게 돌아갈 것이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을 제외하더라도 역대 대통령의 경우 정계입문(정무 고위직 포함)후 최소 15년 안팎의 숙성의 시간을 가졌다. 이번 대선에서는 선출직 행정부 등에서 오랫동안 경륜을 쌓은 후보가 있는가 하면 비정치 영역에서 초단기의 변신으로 대권을 노크하는 인물도 있다. 흔히 지도자의 덕목을 얘기할때 도덕성을 포함해 ‘소통·추진력·포용·정치력·용인술·미래비전·행정경험·경제지식·국제적안목’ 등을 거론한다. 지도자가 모든 부문에서 강점을 갖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정치 10단’의 지도자를 비롯해 ‘경제·여성 대통령’ 등 다양한 지도자를 지켜봤다. 하지만 후반기에 내리막길을 걸으며 기대에 못미친 경우가 많았다. 그 이면에는 대부분 자신만의 경험에 갇힌 ‘소우주’(小宇宙,뚝심·고집)의 리더십이 자리잡고 있었다. 대한민국은 부동산, 양극화, 인구감소, 낡은 정치 등 다양한 이해충돌과 2030세대를 중심으로 한 강력한 변화의 요구에 직면해 있다. 밖으로는 광속의 미래혁명과 외생변수들이 도전해오고 있다. 대한민국은 어느 나라보다 역동적이고 대
그들이 그것을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모든 존재는 떼어놓을 수 없이 서로 굳게 맺어져 있다. 자신의 자아만을 진정한 존재로 생각하고, 다른 존재는 그들이 자신의 삶에 도움을 주거나 방해하는 경우에 곧 일종의 상대적 관계만을 인정하는 사람은 자신과 타인은 깊은 심연을 사이에 두고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죽으면 유일한 존재인 자신뿐만 아니라 전 세계도 함께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한편, 모든 타자, 즉 살아 있는 모든 것 속에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자신의 생명을 통해 살아 있는 모든 것과 하나가 되는 사람은, 죽음으로 자기 존재의 극히 일부를 잃을 뿐이다. 그런 사람은 모든 타자 속에, 자신이 항상 그 속에 자신의 존재 또는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또 사랑해온 타자 속에 계속 존재한다. 그런 사람에게는 자신을 타자와 분리하는 기만과 망상이 사라진다. 이러한 점에서 지극히 선량한 사람과 지극히 사악한 사람은 죽음 앞에서 극명한 차이가 드러나는데, 오직 이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더라도 주요 원인이 여기에 있다. (쇼펜하우어) 나는 결코 나 한 사람만의 구원을 원하지 않고 또 인정하지도 않는다. 혼자서만 안심하여 살고 싶지도 않다. 나는 가는
UN에서는 2006년도부터 매년 6월 15일을 ‘세계 노인학대 인식의 날’로 지정해 노인학대 예방과 노인인권 향상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17년부터 노인학대 예방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매년 6월 15일을 ‘노인학대 예방의 날’로 지정해 국가적 차원에서 홍보 및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작년 한 해 경기도내 노인학대 신고는 2,593건으로 2019년도 비해 148건 증가했고, 노인학대 판정 건수도 지난해 1,194건으로 2019년도 비해 280건 증가하였다. 특히 2020년 노인학대 판정 건수 중 86%는 가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학대는 가족 구성원간의 단순 가정사로 여겨져 외부로 잘 드러나지 않는 경향이 있고, 대부분 피해 노인 분들도 가족이라는 이유로 신고나 처벌을 꺼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어느 때 보다 주변인들의 관심이 매우 필요한 상황이다. 경기도사회서비스원은 지난해 4월부터 경기도 내 4개 노인보호전문기관과 2개 학대피해노인전용쉼터를 수탁·운영하고 있다. 경기도, 도의회, 경기도내 시군, 경기도광역치매센터, 경기남․북지방경찰청 등과 협약을 통하여 어르신들의 노인인권 향상과 노인학대로부터의 보호 체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