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는 ‘소확행 (小確幸)’.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 ‘랑겔한스섬의 오후’에 등장하는 말이다.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돌돌 만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이라고 했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의 ‘작은 행복’ 뜻도 포함된다. 코로나 펜데믹(대유행) 시대를 맞이하면서 모든 이들이 대면 생활을 절제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까 마음의 치유에 출구를 찾고자 이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 제주 올레길을 걷다가 어느 탐방객 배낭에 이렇게 적혀있는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코로나, 길을 걸으면서 치유한다’라고 인쇄되어 있다. 눈에 들어오면서 공감을 했다. 지금 우리는 소소한 일상 속에 작은 행복을 찾고 있는지 모르겠다. 최근 제주도 천연의 숲길인 ‘사려니숲’을 다녀왔다. 아침부터 바람이 세차게 불어 가는 길 걱정했지만 역시 ‘사려니숲’을 거닐면 일상 속 ‘작은 행복’을 느낀다. 초여름 가랑비나 이슬비가 내리는 날 ‘사려니숲’을 찾으면 최고다. 그리고 이렇게 늦은 겨울 무렵 ‘사려니숲’을 찾는 것도 갔다 오
청년은 “학살중단! 군부퇴진!”이란 피켓을 들고 있었다. 마스크 위 청년의 눈은 맑고 깊었다. “고향 가족들 걱정에 많이 힘들겠어요”라고 말을 던지자 눈동자에 금방 물기가 맺혔다. 7일 창원시청 앞 미얀마민주화투쟁 연대집회에서 만난 청년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미얀마교민들과 창원시민들이 광장에 띄엄띄엄 둥글게 섰다. 그야말로 국제집회였다. 교민들은 ‘미얀마의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 알려진 민중가요 ‘예찌비’(Thway Thitsar)를 불렀다. “형제자매들이여. 단결하고 또 단결하자. 우리는 피로 역사를 썼다..”로 시작하는 내용으로 3천명이 희생된 88년 투쟁을 기리는 상징노래이다. 집회에 참여한 창원시민들은 답가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군부의 탄압을 피해 떠돌다 94년 한국으로 망명한 '한·미얀마연대'의 조우모아대표는 한국어와 미얀마어로 번갈아 말했다. “버마는 세 번의 쿠데타가 있었고, 이번이 세 번째 저항입니다. 한국의 민주주의를 나눠주세요. 도와주세요”라며 애타게 호소했다. 이들은 전날 문재인대통령이 “군부의 폭력진압을 규탄하고 민주주의 회복을 간절히 바란다”는 입장을 밝힌 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시민들의 연대사도 미얀마어로 통역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말이 있다. 이는 자본주의의 논리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말은 성경구절로 기독교문명의 서구사회 논리다. 이 관념이 무너질 찰나에 놓여 있다. 코로나 위기 앞에 기본소득 논의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하지 않는 데도 매월 꼬박꼬박 돈을 준다는 기본소득. 이런 세상이 온다면 이는 분명 혁명이다. 프랑스의 유명한 싱크탱크 장-조레스 재단(Fondation Jean-Jaurès)이 “프랑스가 기본소득제를 도입한다면 이는 혁명에 가까운 조치”라고 보는 이유다. 프랑스 기본소득의 상징인 아몽 역시 “기본소득은 새로운 사회계약(contra social)의 시작”이라고 평가한다. 이러한 혁명을 정치인 혼자만의 힘으로 가능할까. 제갈량이 살아 돌아온다 해도 어림없는 소리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시민이 뭉치는 수밖에 없다. 프랑스는 기본소득제 도입을 위해 시민들이 발 벗고 나섰다. 지난해 5월 프랑스 정치인들, 경제인들, 대학교수들, 시민단체 대표들은 일반시민들과 함께 수상과 예산회계부장관, 보건복지부장관, 국무장관을 소환했다. 2021년 재정 법안에 기본소득을 추가해 줄 것을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프랑스의 이
조금씩 봄기운을 더해가며 바깥 세상을 보고 싶다가도 창문을 열고 싶지 않은 계절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 사건으로 우리 사회 선별된 계층의 민낯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실명으로 버젓이 땅을 매입하고 희귀 수종까지 심으며 추가 보상까지 노렸다. LH 일부 직원들은 “왜 우리는 부동산을 투자하면 안 되느냐”고 말한다. 직전 LH 사장을 맡았던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한술 더 떠 "LH 직원들이 개발정보를 미리 안 것도 아니고 이익 볼 것도 없다"며 해당 직원들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까지 했다가 사과했다. LH 직원들의 법적인 문제는 아직 속단할 수 없다. 하지만 의혹이 불거진 이후 나온 이같은 공직사회의 인식은 경이롭다. 또 LH 직원만 그랬을까. 광명·시흥 이외 지역은 문제 없을까. 진짜 ‘숨은 고수’들은 수용되지 않는 인접 지역으로 더 큰 이득을 본다는 보도도 잇따르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법과 정의, 공정은 무엇인가. 우리는 지난해 검찰인사 개혁을 둘러싼 이른바 ‘추-윤 갈등’을 지켜봤다. 그리고 올해 검찰의 수사·기소를 분리하는 중대범죄수사청 신설을 놓고 여권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라운드로 정면 충돌하다가 결국 윤 전 총장이…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몸을 들어 올릴 수 없듯 스스로 칭찬함으로써 평판을 높일 수는 없다. 오히려 스스로 자신을 칭찬하면 칭찬할수록 사람들의 평가는 내려가는 법이다. 남들한테서 좋은 말을 듣고 싶거든 스스로 자신의 좋은 점을 늘어놓지 말라. (파스칼) 사상과 그 표현, 즉 언어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해 사상과 언어를 가지고 노는 것은 좋지 않다. 속된 사람에게는 그들의 생각이 드러나도록, 현명한 사람에게는 그들의 생각이 가려지도록, 언어는 그렇게 주어진 것이다. (로버트 사우디) 자신에 관해 남이 하는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결코 마음이 평화로울 때가 없다. 페르시아 사람 사디는 언젠가 아버지 옆에서, 집안 식구들이 깊이 잠들어 있는 동안 밤새도록 자지 않고 코란을 읽었을 때의 일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한밤중이 되어, 나는 코란에서 눈을 떼고 아버지에게 말했다. ‘기도를 드리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코란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 죽은 것처럼 깊이 잠들어 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말했다. ‘너도 어서 가서 자도록 해라. 남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할 바에는.’” 아첨을 하는 것은, 말하는 자신을 낫
시간은 기억나지 않는다. 술집 문을 막 열고 나서다가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골목길 담벼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가로등 불빛이 기대앉은 그의 머리 위로 굴러 떨어졌다. 말끔한 코트 차림의 중년 사내였다. 차림새만 보아서는 지린내 나는 골목 담벼락과 어울리지 않았다. “왜, 이러고 계세요?”라고 물었을까. 정확히 무어라고 하면서 그의 옆에 앉았는지 기억이 없다. 그는 손가락으로 앞에 놓인 소주병을 가리켰다. 그리곤 말이 없었다. 그의 시선은 나를 향하지도 소주병을 향하지도 않았다. 목적지를 알 수 없는 그의 시선은 세상살이에 쫓긴 도시 너머 어딘가로 향했다. 그가 바라보는 또 다른 세상은 어떤 곳일까. 갑자기 그가 측은했다. 아니, 측은해 보여서 좋았다. 측은한 것들은 측은한 것들의 심정을 본능으로 느낄 수 있어서, 그의 측은으로 나의 측은을 달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조잘거렸고, 그는 빈 종이컵에 소주를 채워 내 앞에 내려놓았다. 비움과 채움이 반복되었다. 측은이 측은을 채우면 다른 측은이 측은을 비웠다. 채우고 비우는 측은들의 행동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내가 마실 때면 그가 말을 했고, 그가 마실 때는 내가 주절거렸다. 골목길 담벼락에 기대
지난 3월4일 박형준 교수가 4월7일 부산시장 보궐선거의 국민의힘 후보로 확정됐다. 후보선호도로 보나 정당지지도로 보나 박 후보가 유리한 상황이다. 박형준은 지식인으로도 정치인으로도 만만하지 않다. 지식인 박형준이 자유주의와 공화주의를 신봉하는 중도보수성향의 논객이라면 정치인 박형준은 합리적이고 중도적인 신사 이미지를 갖고 있다. 박형준은 MB정권의 실세 중 하나였다. 2008년6월부터 2009년8월까지 청와대 홍보기획관, 2009년9월부터 2010년7월까지 정무수석을 지냈으며 그 후에도 시민사회특보를 지냈다. 나는 박형준 후보가 청와대시절 국정원의 불법 사찰과 공작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활용했는지, 아니면, 소극적으로 묵인하며 편승했는지, 아니면, 외부에 소리 내지 않고 중단시키려 노력했는지, 검증하고 싶다. 박형준은 MB청와대 홍보기획관 시절 2회, 정무수석 시절 1회 등 총3회에 걸쳐 4대강 사업관련 민간인 사찰 등 국정원 활동내역을 공식 보고받았다. 이 사실은 ‘환경부 자료요청에 대한 국정원 회신내용’이라는 제목의 환경부 보도자료(2018.7.)로 이미 공개된 바 있어 박 후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더욱이 박형준 교수는 2017년8월10일 방송된…
봄이 온다. 겨울이니 있을 법한 매서운 추위와 폭설, 불어대는 바람이 엎친데 더해 코로나19 팬데믹까지 덮쳐 그야말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나니, 어느새 하나 둘 두꺼운 옷을 벗고 봄 마중에 나설 때가 되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하지만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다. 봄을 손꼽아 기다리는 마음은 누구나 똑같겠지만 누구에게나 봄이 똑같이 찾아오진 않나보다. 이리저리 휘둘러보아도 크게 변한 것이 없어 보이는데 괜한 생각을 하는 건 아닌가하며 에둘러 봐도 마음이 편치 않다. 그저 날씨나 코로나, 시끄러운 세상 일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곧 다가올 것이 분명한 봄 마중과 꽃소식에도 마음 편치 않음은 무슨 까닭일까? 사계는 순리대로 지나치는 법이지만 그 따르는 몸과 마음이 곤해 있음을 여실히 느낀다. 코로나19 사태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는 교회력 절기인 사순절 기간을 지나고 있다. 사순절은 돌아보는 시간이니, 그동안 내가 사람들과 어떤 관계로 어떤 마음으로 살아 왔는지를 비롯해 많은 것들을 돌이켜 보게 된다. 남양주 녹촌리 마석가구공단에서 30년의 시간을 한센인, 그리고 이주노동자와 함께 살아오면서 온 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