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충격적인 자진 사건이 정국을 강타하고 있다. 박 시장의 비보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에 이은 유사한 추문에 연루돼 있어서 더불어민주당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작동하고 있다. 아직 석연히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정황증거 상 박 시장의 죽음 역시 시장실 여비서의 ‘미투(Me too)’ 고소사건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추론이 유력하다. 아무리 그래도 박 시장의 마지막 선택에 동의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박 시장의 비극적 종말은 진영의식의 포로가 돼버린 정치권에 또 한바탕 대결적 논쟁을 몰아오고 있다. 논쟁의 핵심에는 서울시가 결정한 서울시장(葬)을 놓고 벌이는 ‘과잉 장례식’ 비판, 성추행 피해자가 존재하는 인사의 장례에 대한 조문의 당·부당 문제다. 하나는 한 인물이 남긴 업적에 대한 평가에 연결돼 있고, 또 하나는 좀처럼 설명되지 않는 지도층의 천박한 성인지감수성(性認知感受性) 문제와 연관돼 있다. 안희정 전 지사는 수행 여비서에 대한 위력에 의한 성폭행 혐의로 영어(囹圄)의 몸이 돼 있다. 그는 사건이 발생하자 곧바로 ‘잘못했다’고 죄를 깨끗이 인정하고 징벌을 감수하고 있다. 오거돈 전 시장 역시 자신의 범법을 전면 부
“지방자치 30년이 된 이제는 우리의 감시·감사 기능으로 충분히 자주적 결정을 할 수 있고 독립할 때가 됐다.” 지난 8일 경기도청에서 열린 ‘국가조달시스템(나라장터)의 지방조달 독점 개선을 위한 공정조달시스템 자체 개발·운영 전문가 간담회’에서 안병용 경기도시장군수협의회장(의정부시장)이 한 말에 동의한다. 이날 간담회에 나선 전문가들도 조달청이 독점하고 있는 조달시장에도 합리적이고 공정한 조달 시스템이 도입돼야 한다는 경기도의 입장에 적극 공감했다. “조달청에서 구매했다는 것만으로 면책되는 현재 담합구조가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있다”(이왕재 나라살림연구소 부소장), “공정한 경쟁을 하고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를 하려면 저희 같은 일반기업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야 할 것”(김기태 아이코맥스 대표이사), “지역에 환원되는 공공조달 정책 수립이 가능할 것”(박경철 경기연구원 연구위원)이라는 의견을 정부가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이날 이재명 지사는 나라장터 물품 가격 비교를 해본 결과 시장가보다 더 비싼 경우가 90개 발견됐다면서 “대량 구매하니까 더 싸야 하는데 강제로 비싸게 사는 것”이라고 조달청의 독점을 비판했다. 이 지사는 “경쟁이 배제되면 부정이
검찰사건사무규칙 제69조 제3항 제4호는 피의자가 사망한 경우 ‘공소권 없음’ 결정을 하도록 한다. 공소권 없음은 형사법이 피의자의 죽음을 규정하는 방식이다. 공소권이란 검사가 법원에 공소(公訴)를 제기할 수 있는 권(權)리다. 공소를 제기함으로써 비로소 검사는 피고인의 행위가 범죄에 해당함을 입증하여 처벌을 구할 수 있게 된다. 공소권 없음은 이처럼 검사가 피고인을 법정에서 세워 유죄를 주장할 수 있는 권리 자체가 없다는 뜻이다. 형사소송법 제195조는 검사는 범죄의 혐의 있다고 판단될 때 범인, 범죄사실과 증거를 수사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범죄사실은 범인의 행위다. 증거는 행위가 있었음을 입증할 수 있는 요소다. 결국 수사의 핵심은 범인이다. 그렇기에 범인이 없으면 수사 또한 불가능하다. 범인이 사망하면 수사의 대상이 사라지고 공소권은 없어지는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9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루 전인 8일에는 전 비서에 의해 강제추행 등 혐의로 경찰에 피소되었다고 한다. 그가 사망하자 경찰은 곧 해당 사건을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하였다고 발표했다. 피혐의자가 사망하여 존재하지 않으니 당연한 조치다. 서울시는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서울특
어느 해 시월의 마지막 날 나와 아내는 무작정 공단에 와서 신혼살림을 차렸다. 3층 연립주택 반지하 단칸방이었다. 바로 앞집에서는 걸핏하면 부부 싸움이 벌어졌다. ‘살림살이가 깨지는 소리’ ‘악다구니 소리’ ‘울음소리’가 들썩거려 밤잠을 깨기 일쑤였다. 여름 날 선풍기 하나 겨우 숨을 헐떡거리며 돌아가는 지하방은 열대 정글처럼 습기가 많아 꿉꿉했고 하수구 냄새는 역류했고 숨이 턱턱 막혔다. 나는 철판을 굽히고 접는 공장에 다녔다. 그 회사 다니기 전에는 철판을 자르는 회사에 다니기도 했고 프레스 공장에서 일하기도 했다. 회사는 달라졌지만 작업복과 안전화는 바뀌지 않았다. 매달 받아든 누런 월급봉투의 무게는 병아리 눈물만큼 더해졌다. 아내 또한 옆 공단에서 전자부품공장에 다녔다. 둘은 부지런히 일했지만 예금통장의 잔고는 쉽게 올라가지 않았다. 일은 힘들었고 공장에서 돌아오면 쓰러져 자기에 바빴다. 하루 종일 전자부품 검사를 하고 돌아온 아내의 얼굴은 늘 창백했다. 그래도 한 달에 딱 한번 ‘수고하셨습니다’라고 겉봉투에 적힌 월급봉투를 아내에게 내밀 때는 내 얼굴이 밝았고 봉투를 받아드는 아내의 미소가 환했다. 그날은 외식을 하고 서점에 가서 책도 사고 영화를…
너 /이노나 바람이 몹시 불었다 나뭇가지가 휘청였다 햇살이 따라 흔들렸다 깃발은 위로 펄럭였다 구름이 빠르게 흩어졌다 어떤 것도 머무르지 않았다 어렵게 태어난 꽃송이가 아뜩히 날리고 있었다 그 위로 바람이 다시 불었다 그리고 끈질기게 꿈틀대는 숨을 보았다 바로, 여기 봄 깊은 뿌리로 돋는 네가 있었다 ■ 이노나 1969년 경남 마산 출생. 경북대학교 사법학과·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문창과 졸업. ‘연인’에 시 부문 등단(2012), ‘K-스토리’ 소설 부문 등단(2017). 시집 ‘마법 가게’.
1989년 경기도청 기자실. K기자는 100자 원고지에 살살 내려쓴 후 팩스 보내고 데스크에 전화하면 끝이다. 그날 송고해야 할 기사를 자리에서, 소파에서 구상한 후 이제다 싶으면 자리에 앉아 세로면 100자 원고지에 초서처럼 내려쓴 후 다시 읽어보지도 않고 팩스에 밀어 넣는다. 잠시 후 본사 지방부에 전화를 해서 도착여부만 확인하면 끝. 생각 2시간 기사작성 3분, 송고 2분이면 기사는 마무리다. 다른사 L기자는 원고지 200자에 오전 시간을 집중한다. 아침 10시에 보도자료를 배포하면 앞으로 자신에게는 8시 반에 미리 달라는 주문을 하면서 기사작성에 들어가 제공된 보도자료 위에 검정색으로 수정 가필한 후 읽어본다. 다시 100자 원고지에 옮겨적고 붉은색으로 가필한 후 청색으로 고치고 검정색으로 추가한다. 원고지 위에 교통지도, 도로망도가 그려진듯 복잡하고 글씨도 둥글둥글하다. 늘 바쁘신 L기자님은 점심시간 맞추기도 어렵다. 송고하러 가면 늘 팩스는 늘 만원이다. 약국 앞 마스크 구매 장사진이다. 소리소리 고래고래가 따로 없다. 전쟁이라도 터진 듯한 분위기다. 왜 바쁜 판에 팩스를 쓰느냐. 기존에 보내던 자료를 빼내고 자신의 원고를 보낸다. 왜 이리도 팩스
코로나19가 멈추지 않고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전 세계인의 관심과 집중을 끌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이다. 특히 국가적인 위기와 혼란 속에서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절제된 행동과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은 전 세계인의 부러움을 사고 있으며, 더불어 지구촌의 모범이 되고 있다. 이러한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우리의 의식 속에 존재하고, 또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일까? 바로 ‘예(禮)’가 아닐까 싶다. 이 ‘예(禮)’를 탐구하고 실천하는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 바로 ‘예학(禮學)’이다. 논산의 돈암서원은 예학의 대가, 사계 김장생을 모신 곳이다. 사계 김장생 선생은 명종 3년(1548)부터 인조9년(1631)까지 83년의 생을 살았다. 12세의 나이에 송익필로부터 예학을 배우기 시작해 20세 무렵에는 이이의 제자가 되었다. 30대 이후에는 꾸준히 예학을 연구, 83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약 50여년간 이어졌다. 예학을 배우는 시기까지 더하면 거의 평생을 예학에 몸담았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예학연구는 국가의례를 비롯해 양반의 생활예절, 그리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문제까지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그의 연구 저술은 51권의 ‘사계전서’로
2019년 2월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른바 N번방 사건이다. N번방 사건이 전 국민의 공분을 일으킨 까닭은 전례 없는 형태의 디지털 성범죄이기 때문이다. 단순이 단체 대화방에서 음란물을 공유하는 수준을 넘어 미성년자 16명을 포함하여 74명의 여성을 협박하고 강요하여 성노예처럼 학대한 매우 심각한 범죄이기 때문이다. 요즘 청소년들 사이에서 스마트 폰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통신매체를 이용한 성폭력 행위가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성(sex)’과 ‘메시지 보내기(texting)’를 합성한 ‘섹스팅’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성가족부가 한국형사정책연구원과 공동으로 실시한 ‘2019년 성매매 실태조사’에서 전국 중·고생 6천423명 가운데 3년간 누적 111.1%가 ‘온라인 그루밍’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그루밍 성폭력‘은 온라인상에서 피해자와 친분을 쌓아 심리적으로 지배한 후 피해자에게 성적 가해를 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시말해 미성년자와 성적 대화를 하고 성행위를 권유하거나 성적 사진과 영상을 올리도록 회유하는 행위를 말한다. N번방 사건에서도 성착취 가해자들은 피해자들로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