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꿍” 하고 들어서자 어머니 환하게 웃으신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부서진 웃음이 병실 안을 빙빙 도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아, 꿈이었구나.’ 며칠 전 쓰러지신 어머니 만나러 일하다말고 병원 가는 길, 깜빡 졸았나 보다. 하루에 두 번뿐인 면회시간을 놓치면 어머니를 못 뵙는다. 매일 전화만 하면 시끌벅적하게 받아주시던 어머니께서 이제는 아무 말 없이 누워계신다. 전신을 기계에 맡기고 의식을 놓은 채 그림처럼 누워계시는 여러 사람들 속에 섞여서 말이다. 아기가 된 것이다. 어쩌면 세월의 흐름에 밀려 아기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긴 세월 부모 노릇하는데도 지치실 때도 되었을 테니 말이다. “야야, 어른 노릇 하기가 얼매나 힘든 줄 아나?” 입버릇처럼 말씀 하시며 항상 공평하게 육남매에게 넘치는 사랑을 나눠 주시더니 이젠 응석을 부리신다. 시골 헛간에 박스마다 말갛게 감자 캐어 놓으시고 고추밭에 고추가 벌겋게 익어 가는데도 이제는 못 따신다. 흩어져 사는 자식들 입에 넣어줄 생각에 종종걸음으로 때맞춰 참기름 짜랴 콩 심으시랴 김장배추 모종하시랴 그렇게도 바쁘게 움직이시더니. 지…
아들이 인터넷 주문을 통해 철봉을 사와 거실에 설치해 놓았다. 지금 아들은 직장 때문에 방을 얻어 나갔으니 철봉의 최대 수혜자는 내가 됐다. 그런데 처음에는 철봉을 잡고 턱걸이를 하려고 시도했으나 단 한 번을 할 수 없었다. 나는 원래 팔굽혀펴기는 잘하는 편이다. 군대에서 팔굽혀펴기 기합을 받을 때도 내게는 그것이 기합이 아니었다. 그만큼 나는 팔굽혀펴기를 잘한다. 그런데 턱걸이를 하나도 못하다니. 몇 개쯤은 할 수 있겠거니 했는데, 아니었다. 턱걸이와 팔굽혀펴기는 쓰는 근육이 달랐던 것이다. 그래서 아들이 함께 주문한 고무 밴드가 철봉에 장착됐다. 철봉 운동을 처음 하는 사람에겐 턱걸이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판매처에서는 밴드까지 준비해 놓는 모양이다. 밴드를 발에 걸고 하면 턱걸이가 훨씬 쉬워진다. 밴드 없이 용을 쓰다 아예 한 번도 못할 바에는 밴드를 이용해 연습하는 것이 좋다. 아침저녁으로 오르락내리락 그렇게 하다 보면 나중에는 밴드 없이도 턱걸이를 할 수 있게 된다. 밴드를 이용한 턱걸이로 안 쓰던 근육이 차츰 단련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밴드 없이 턱걸이 10번을 거뜬히 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음 혹은 멘탈도 마찬가지다. 몸 근육…
삼류소설을 너무 많이 읽은 나는 /김인자 첫 결혼기념일이 이혼기념일이 된 후배의 변은 걷잡을 수 없는 남편의 바람기가 원인이었단다 30년을 한 남자와 살고 있는 나도 실은 한 남자와 사는 게 아니다 영화나 소설처럼 호시탐탐 친구의 애인을 넘보고 선후배에게 추파를 던지고 이웃사내에게 침을 삼켰다 단언하지만 이런 외식이 없었다면 나야말로 일찍이 다른 삶을 살았을지도 모르는 일 결혼제도란, 한 여자가 한 남자만을 거래할 수 있도록 규정지어진 공소시효가 불분명한 합법을 가장한 희대의 불법 사기극 나는 달콤한 미끼에 걸려든 망둥어, 위장취업자, 아니 불법체류자, 결혼이라는 기업에 청춘의 이력서를 쓰고 정규직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넘어간 상근봉사자, 가문의 대소사엔 대를 이은 비정규직 노동자, 자식에겐 만료가 없는 무보수 근로자, 이런 근로조건에서 이 정도 바람 없기를 바란다면 인간이 아닌 건 내가 아니라 후배일 터, 나는 삼류영화, 삼류소설을 너무 많이 봤고 후배는 너무 오래 교과서만을 탐닉한 결과다 결혼은 축복으로 시작해서 절망으로 귀결되는 악마의 유혹 같은 것일지 모른다. 이성에 대한 사랑은 유효기간이 길어야 3년이지만 가족에 대한 사랑은 그 유효기간이 끝이 없다.
‘함께 만들어요! 풍요로운 강화’라는 군정목표를 내걸고 지난해 힘차게 출범했던 민선7기 강화군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해 7월 민선7기 강화군수로 취임한 유천호 군수는 지난 1년 동안 지역 현안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로 뛰며, 풍요로운 강화를 만들기 위한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군민 말씀이라면 알겠시다’를 실천하기 위해 문제가 있는 지역에 직접 방문하며 토론을 통해 적극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현장 행정’을 펼친 결과이다. 유 군수는 “취임 당시의 초심을 잃지 않고 오로지 군민만을 바라보며 힘차게 달려왔다”며, “최근 강화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군민들이 함께해 준 덕분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또 “군정에 적극 협력해 준 강화군의회와 맡은 바 소임을 묵묵히 수행해 준 공직자들도 큰 힘이 됐다. 앞으로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군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강화군은 올해 본예산이 최초로 5천억원을 돌파하며 민선7기 행정 전반에 걸쳐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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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경제보복 이후 일본 여행객이 확연히 줄어들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YTN의 의뢰로 5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현재도 일본여행 의향이 있냐’는 질문에 16.2%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일본 경제보복 이전 일본 여행을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는 응답자는 69.4%나 됐지만 현재는 일본여행 의향자가 급격하게 줄어든 것이다. 보수층(51.4%)과 한국당 지지층(58.1%)의 일본여행 철회의향은 진보층(95.2%)과 민주당 지지층(95.8%), 중도층(80.1%) 보다 눈에 띄게 낮았다. 일본 여행을 가고 말고는 개인의 자유지만 대다수 우리 국민들의 반일감정은 그 어느 때 보다 악화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충격적인 내용이 보도됐다. 5일 밤 MBC 뉴스데스크가 내보낸 “아베수상님 사죄드립니다” 충격의 日 찬양’ 뉴스를 보면서 저들이 정말 우리나라 국민이 맞는가라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이 보도에는 목사들이 등장한다. “대한민국은 일본의 식민지로서 일본과 함께 전쟁의 전범이다” “일본이 한국을 독립국으로 인정해줬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대한민국에 대해 하나님께서 과연 어떻게 처리하실 것 같으냐”는 내용의 발언을 했다. 한마디로 일본은 한국을 독립국으로…
경기도내 건축물들이 불안하다. 화재로 부터 안전하지 못하다는 조사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경기도 소방재난본부가 지난 1년 동안 도내 8만3천135개 건축물에 대한 화재 안전 특별조사를 벌인 결과, 57.4%인 4만7천710개 건축물에서 20만8천611건의 시설불량 위험요인이 발견됐다. 대부분 경미한 사항이었지만 그래도 화마(火魔)는 작은 불씨에서 시작된다는 점에서 ‘안전 불감증’이다. 도 소방재난본부는 경미한 20만8천273건은 자발적으로 개선하도록 했고 중대 위반 338건은 입건이나 과태료, 행정명령, 기관통보 등의 조치를 취했다고 발표했다. 도 소방재난본부가 밝혀낸 위험 요인으로는 소방분야가 13만2천869건으로 63.7%를 차지해 가장 많았으며, 건축 3만9천889건(19.1%), 전기 2만2천519건(10.8%), 가스 9천421건(4.5%), 기타 3천913건(1.9%) 등이 뒤를 이었다. 위험 유형도 다양했다. 소방 분야에서는 ▲소방시설 유지관리상태 불량 ▲안전관리 업무 태만 ▲비상구 폐쇄 등이 가장 많았다. 건축 분야에서는 ▲불법 증축 및 무단용도 변경 ▲방화문 제거 등이 다수를 차지했다. 또 전기분야에서는 ▲허용전류 초과 문어발 콘센트 사용 ▲
우리나라 지방정부 재정정보를 공개하는 인터넷 웹사이트인 ‘지방재정 365’에 의하면 총 예산규모에서 자체수입의 정도를 나타내는 지방재정자립도는 2019년 본예산 기준으로 전국 51.35%이고, 광역시·도 평균 48.93%, 시·군·구 각 평균 36.76%, 18.26%, 29.81%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수치는 대부분의 지방정부가 운영하는 재원을 자체적으로 조달하는 경우보다 중앙정부와 광역시·도로부터 의존하여 조달하는 것이 더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방정부가 운영재원을 자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정도를 보여주는 재정자주도는 2019년 본예산 기준으로 전국 74.22%, 광역시·도 평균 59.55%, 시·군·구 각 평균 64.85%, 65.33%, 40.05%로 나타나고 있다. 일반적으로 지방재정자립도 보다 지방재정자주도가 높은 정도를 보이는데 이는 중앙정부나 광역시·도가 재정을 지원하는 것 중에서 지방에서 자주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용도를 정하지 않고 재원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재원으로는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지방교부세와 광역시·도가 시·군·구에 지원하는 조정교부금이 있다. 2019년 지방정부 세입재원의 비중을 보면 본예산 순계예산을 기준으
한국에 영화가 언제 들어왔는지에 대해서는 연구자들의 주장이 엇갈린다. 1901년 9월 14일자 황성신문에는 ‘영화속 인물의 활동이 실제 사람들보다 낫다’ (寫眞活動勝於生人活動)라는 제목을 붙인 논설기사가 실려있다. 영화를 보고 나서 감상을 적은 일종의 평론이다. 미국인 여행가 엘리어스 버튼 홈스(1870~1958) 일행이 같은 해 서울을 방문했을 때 고종황제를 비롯한 고위 인사들에게 영화를 보여주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이때 본 영화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출처가 명확한 자료로서는 국내 영화 상영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며, 첫 번째 평론이랄 수도 있다. 원문에는 영화를 사진(寫眞)이라고 표기했는데, 활동사진(活動寫眞)을 줄여서 부른 용어다. 요즘 표현으로 바꾼다면 대강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사람들이 활동사진(영화)을 보고 신기함에 정신이 팔려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참으로 묘하다고 찬탄하여 마지 않는다. 영화란 곧 촬영한 그림에 지나지 않는데도 그것이 배열되어 움직이는 것이 마치 사람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과 같으니 가히 살아 있는 그림(活畵)이라 할 만하다. 북청(北淸, 중국 베이징)에 전장(戰場)을 펼쳐놓고 군대가 나오는데 걷는 법(足法
‘파르살로스 회전’이란 이름으로 역사에 남은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결전은 카이사르의 완전한 승리로 끝을 맺었다. 당시의 많은 사람들은 그 전쟁은 당연히 폼페이우스의 승리로 끝 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중무장 보병은 카이사르의 2만 2천명에 비하여 폼페이우스는 4만 7천명, 기병은 카이사르의 1천기에 비하여 폼페이우스는 무려 7천기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폼페이우스 측의 사람들은 전쟁이 끝나면 축하파티를 하기 위하여 고급음식과 화려한 축하장식을 해두었지만 모두 허사가 되어버렸다. 뒤이어 폼페이우스의 죽음과 카이사르의 영웅화의 길은 더욱 확고하게 이루어져 가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승리의 원인은 있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카이사르에게는 카이사르라는 대장이 하나였지만 폼페이우스에게는 폼페이우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장들이 너무 많았다. 그 대장들은 싸움도 시작하기 전에 저마다 승리후의 논공행상을 놓고 야단들을 치고 있어서 모든 것이 어지러웠다. 또 카이사르에게는 대대 단위로 직접 전투를 맡는 중간 지휘자와 지휘자를 믿고 따르는 병사가 많았지만 폼페이우스에게는 그렇지가 않았다. 더구나 폼페이우스의 대장들은 모두가 잘났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