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의 상처 /이정록 삽날에 잘린 눈사람을 어루만진다 삽질 속에 결을 만들어 놓은 흙 부스러기 때문에, 삽날이 지나간 자리가 꽃등심처럼 곱다 아름다운 것이 이렇게 무서울 수가 있구나 등을 찍혔는데도 무늬를 보여주는 눈사람 저 흙길을 따라가면 서걱서걱 기저귀 얼어 있던 안마당 또 배가 불러오던 어머니를 만날 것 같다 마음 짠해서 어둠을 밝히는 눈송이들 왱이낫이 박힌 옹이 많은 옛길을 덮는다 아물지 않은 상처 위에 겹겹 붕대를 두른다 삽날이 지나간 눈사람. 그 흙밥의 나이테를 어루만진다 - 이정록 시집 ‘버드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 우리는 언젠가는 사라질 눈사람이다. 팔과 다리가 한 덩어리로 뭉쳐진 눈사람처럼 형체를 드러내고 살고 있지만, 서서히 무너져 없어질 존재들이다. 시인은 그러한 우리네 삶의 일부 중 각인된 어느 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얗게 눈이 내리는 날, 삽날에 잘린 눈사람을 어루만진다. 등을 찍혀 무늬를 보여주는 눈사람. 그 상처에 박힌 흙 속에는 서걱서걱 기저귀 얼어 있던 안마당이 있다. 그리고 또 배가 불러오던 어머니가 있다. 언제 떠올려도 그 시절은 마음 짠해진다. 그러나 쉽사리 잊히지 않는, 지나간 시간은 다시…
지난해 늘어난 취업자가 9만7천명으로 2009년 이후 처음으로 10만명 아래로 떨어졌다. 생산가능인구 대비 취업자 비율을 뜻하는 고용률도 60.7%로 전년 대비 0.1% 떨어졌다. 연간 고용률이 하락한 것도 2009년 이후 처음이다. 실업률은 3.8%로 2001년(4.0%) 이후 17년 만에 가장 높았으며, 실업자 역시 107만3천명으로 지금 방식의 통계가 작성된 2000년 이후 가장 많았다. 고용상황이 나빠진 것은 여러 원인을 꼽을 수 있다. 우선 경기가 하강국면에 접어들어 노동 수요 자체가 줄었다. 자동차, 조선, 해운 등 주력산업의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관련 산업 종사자들이 어쩔 수 없이 고용시장에서 밀려나기도 했다. 이런 경기적·구조적 요인들은 불가피한 측면도 있고, 해당 산업의 지속가능성 유지를 위해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고용 취약계층의 일부가 고용시장에서 밀려나는 것처럼 정책적 요인도 간과할 수 없다. 고용 취약계층의 대부분은 저소득층이다. 그래서 고용 안정성이 떨어지는 저소득층이 고용시장에서 밀려나면 기존의 낮은 소득도 유지할 수 없다. 반면 전문직이나 고용 안정성이 뛰어난 고임금 근로자들의 소득은 경기가…
1991년 지방자치제가 부활됨으로써 지방의원 선거가 실시됐다. 소중하게 심어진 지방자치제를 키우고 꽃을 피워야 하는 지방의원들이지만 30년을 바라보는 지금까지도 추태를 일삼고 있어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끊임없이 계속돼 온 자질론 시비 속에 지방의회 무용론은 이미 오래전부터 국민들에게 공감을 얻고 있다. 물론 모두는 아니지만 세금으로 관광성 외유를 하면서 나라 망신을 시키거나 각종 이권이나 부당한 청탁에 개입하기도 한다. 공무원에게 청탁압력을 행사하며 갑질을 일삼고 도박, 폭행, 성범죄, 음주추태, 등을 저지르는 이들도 많다. 최근 경북 예천군의회 의원들의 외유 중 추태를 보여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한 의원이 현지 가이드를 폭행했으며 어떤 의원은 “여자가 있는 술집에 데려다 달라. '여자'를 불러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마 한국에서도 그렇게 행동했을 것이다. 군의원 9명은 의회사무국 직원들과 지난해 12월 7박 10일 동안 6천100만원을 들여 미국 동부와 캐나다로 이른바 ‘연수’를 다녀왔다. 이때 버스 안에서 의장과 이야기를 나누던 가이드를 박종철 의원(당시 자유한국당)이 수차례 주먹으로 때려 안경이 부서
‘대영제국은 해질 날이 없다(Great Britain no time to lose).’ 1883년 빅토리아 여왕(1837~1901)이 했던 말이다. 19세기는 영국의 시대였다. 이 당시 영국을 대영제국이라 불렀는데, 대영제국이란 근세 이래 세계 각지에 식민지를 건설한 영국을 통칭하는 말이다. 북해의 작은 섬나라 영국이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영향력 있는 제국을 건설하게 된다. 대영제국은 막강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교역권을 거의 독점적으로 행사하며 식민지 개척과 노예무역 등을 펼치면서 최강국으로 올라섰다. 또한 식민지 개척 과정에서 스페인, 네덜란드, 프랑스 등을 격파하며 세계 최강의 패권국 지위를 유지했다. 영국은 세계 여러 곳에 식민지를 가진 식민제국이었기에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리었다. 본국에는 밤이 오더라도 인도, 동남아시아, 북아프리카 등 식민지 한 곳 이상은 낮이기 때문에 이런 별칭이 붙었는데, 지금도 여전히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이다. 케이맨 제도에서 해가 지면 핏케언 제도에 해가 떠 있으며 핏케언 제도에서 해가 지면 영국령 인도양 지역에 해가 떠 있고 인도양 지역에서 해가 지면 아크로티리 데켈리아에 해가 떠 있기 때문이다. 인류…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마치 동결 건조된 듯 우리 삶의 여러 가지 다양한 면을 포착하지 못한다. 사과만 하더라도 조그만 초록색의 풋사과였다가 점점 커지면서 붉은 기를 보이고 급기야는 빨간색 사과로 변한다. 내가 “빨간 사과”라고 말하지만 빨간 사과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시든 빨강이 되고, 겉 표면에 까만 점이 피기도 하고, 썩게 되면 빨간색이 팥죽색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러나 단어는 하나의 고정된 모습을 포착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과하면 빨강을 연상한다. 여기에 언어와 실재와의 간극이 존재한다. 간극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우선 사물은 하나의 모습을 갖지 않고 변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인간의 눈 또한 객관을 포착할 만큼의 능력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늘 자기 관점만을 서술한다. 이에 반해 우리의 행위는 우리가 참이라고 믿는 것에 기반 한다. 참이라고 믿는 것, 즉 진리처럼 여겨지는 생각을 바탕으로 우리는 행동을 한다. 최근의 방송을 보면 여행과 맛집 프로그램이 대다수다. 여기에는 꼭 빠지지 않는 신조어,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나온다. 소확행에는 우리 청춘들에게 꿈을 꿀 자유를 차단시켜버린 사회적 고통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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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얽힌 낭만과 풍류 그리고 우정의 얘기는 부지기수로 많다. 하지만 운전과 연관 시키면 정 반대다.그중에서도 가장 큰 골칫거리는 음주운전일 것이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을 저지르는 원흉이라 불리니 말이다. 그래서 정부나 공공기관의 인사 검증에서 가장 무서운것도 음주운전 경력으로 통한다. 이런데도 우리 주위에선 여전히 술을 원만한 사회생활의 필수 요소처럼 여기며 운전대를 잡는다. 술을 마신 사람은 멀리 떨어져 있는 사물을 식별하는 능력이 정상인보다 25% 가량 떨어진다고 한다. 어둠 속에서 물체를 분별하는 능력도 마찬가지다. 허준은 ‘동의보감’에서 만취 상태에서는 마차를 몰지 말라고 했다. 요즘 말로 하면 음주 후 운전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최근 윤창호법이 발효됐으나 이를 무색케하는 사례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윤창호법 시행 첫날인 지난달 18일부터 24일까지 전국에서 음주운전 사고 245건이 발생해 2명이 숨지고 369명이 다쳤다. 지난해 11월부터 지난달 25일까지 경찰 특별단속에 걸린 음주운전 건수는 2만1천902건이다. 하루 평균 400건이 적발된 셈이다. 처별수위를 강화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풍조다. 어쩌다 이같은 사회가 됐는지 걱정이다.…
한 가정 주부가 집 앞에 허연 수염에 하얀 두루마기를 입은 호호 백발의 노인 세 분이 앉아 있는 걸 발견했다. 여인은 노인들이 불쌍해서 다가가 말했다. “제 집으로 들어가시죠. 저녁밥을 대접해 드릴 게요.” 그러자 그 중 키가 큰 노인이 말했다. “말씀은 고맙지만 집 안에 남편이 계시오?” “남편은 직장 일로 잠시 후에 올 겁니다.” “그럼 안 되지. 우린 남자가 없는 집엔 들어가지 않소이다.” 할 수 없이 여인은 집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에 남편이 돌아와 여인에게 물었다. 저 대문 앞 노인들이 누구요? 그러자 여인이 노인들과 주고받은 얘기를 했다. 남편이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왔으니 노인들을 데리고 오시오. 저녁이나 먹이게.” 여인이 대문을 열고나가 노인들을 불렀다. 노인 한 사람이 말했다. “우린 세 사람이 함께 들어 갈 수 없소이다. 각자가 다 다르니까. 이 친구는 성공이고 저 친구는 富이며 나는 사랑이라고 하오. 들어가서 바깥양반에게 한 사람만 부르라고 하시오.” 여인이 들어가 그 얘기를 전했다. 남편이 생각에 잠겼더니…
세상살이라고 하는 것은 절실함이 있어야 한다. 벼랑 끝에 몰렸을 때 살 방법은 스스로 길을 내는 방법 밖에 없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탈회 선언으로 기우회(畿友會)가 해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지만 말끔히 불식시켰다. 회원 18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 89%가 ‘존속해야 한다’고 표명했다. 예로부터 지역마다 협력과 소통, 친목을 위한 크고 단체모임이 있다. 경기도엔 1991년에 창립된 ‘기우회’가 있다. 도단위 기관·단체·기업체 대표 또는 이에 준하는 사회지도층 인사가 회원이다. 도내 공공기관 및 주요단체, 기업체 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여론수렴과 정책대안 제시 및 사회봉사 활동을 통하여 경기도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결성됐다. 경기도를 대표하는 오피니언 리더의 모임으로 지난 27년간 경기도 발전에 기여했다. 기우회는 당연히 그 중심에 경기도지사가 있다. 아니 도지사의 자력(磁力) 때문에 행정이 뒷받침 되어 여기까지 온 것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매월 조찬간담회 석상에서 우수 기업인들을 도지사가 따뜻하게 격려하며 표창장을 수여했다. 박수로 이들을 응원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도지사 취임 후 한 번도 기우회에 출석치 않아 취임
절세의 고수 /원종태 늙은 소를 앞세우고 젖먹이 하나 등에 붙었다 몸뻬바지에 닿을 듯 말듯 아이 하나 긴 목 위에 양동이를 이었는데 넘치는 물은 흔들리는 바가지로 누르고 먼 논두렁길 초승달같이 저어 가는 천 년에 다시 한 번 볼 수 있을까 징검다리에 주저앉아 떠내려간 고무신 한 짝에 울 때 물 위를 걸어서 건져오던 여자 아이들 모두 떠나고 아무도 없는데 하늘을 걸어서 늙은 나무에 걸린 꼬리연을 타고 오던 절세의 고수 - 시집 ‘빗방울 화석’ / 푸른사상 한마디로 무릎을 탁 치게하는 시다. 고수라니, 그것도 절세의, 우리가 너무 익숙하게 보아와서 당연시하던 우리 어머니들의 옛모습이다. 고수라는 말을 다시 찾아보았다. 바둑이나 장기 따위에서 수가 높음이라고 적혀있다. 또 어떤 분야나 집단에서 기술이나 능력이 매우 뛰어난 사람이라고도 적혀있다. 우리는 그동안 우리 생존의 바탕을 이루는 가장 절대적이고 헌신적이었던 고수를 몰라보고 푸대접하고 허술하게 보내버렸다는 생각이다. 함께 살던 삶의 터전 사라져 버렸어도 하늘을 걸어서 늙은 나무에 걸린 꼬리연을 타고 와 불현듯 눈물 차오르게 하는 그리운 고수를, 시인의 독백처럼 천 년 후에나 다시 한 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