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02 (목)

  • 맑음동두천 25.8℃
  • 구름조금강릉 27.3℃
  • 맑음서울 26.6℃
  • 구름많음대전 25.0℃
  • 흐림대구 22.6℃
  • 흐림울산 23.8℃
  • 구름많음광주 24.8℃
  • 흐림부산 27.2℃
  • 구름조금고창 25.2℃
  • 제주 24.5℃
  • 맑음강화 25.7℃
  • 구름많음보은 24.4℃
  • 구름많음금산 25.9℃
  • 구름많음강진군 26.3℃
  • 흐림경주시 22.1℃
  • 구름많음거제 25.3℃
기상청 제공

 

남덕유산을 오른다. 맘껏 푸르러진 7월의 수목을 비집고 풀벌레 울음이 청량감을 더해준다. 적당히 흘러내리는 계곡물과 계곡을 타고 오르는 바람이 땀으로 흥건해진 몸을 씻어준다.

덕이 많아 지어진 이름이 덕유산이라 했던가. 사람의 발길이 뜸한 곳이라 그런지 산나물이 풍성했다. 코끝에 스미는 향을 따라가다 보면 더덕이 나무를 감아 올라서고 산마늘이며 둥굴레 등 반갑고 익숙한 이름의 풋것들에 눈길을 주다보니 이대로 산사람이 되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얼마간 오르막을 올라도 탐방로가 나타나지 않았다. 길이 없어 풀과 나무를 헤집으며 걸었다. 길을 잃은 것이다. 지도를 펴 놓고 위치를 파악했지만 종잡을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하늘이 보이는 곳을 향해 걸었지만 불안감이 엄습했다.

산이 깊어서인지 아니면 길을 잘못 들어서인지 우리 말고는 누구도 없었다. 두려움과 공포도 밀려왔다. 땀이 흘러 옷은 흠뻑 젖었고 산안개가 시야를 좁혔다. 힘차게 울어대던 풀벌레 소리마저도 뚝 끊긴 산은 적막하고 고요했다.

산에서 길을 잃는다는 것이 이토록 두렵고 무서운지 새삼 느꼈다. 도적떼가 들끓었다는 육십령 고개의 전설이 떠올랐고 주변의 작은 기척만으로도 신경이 곤두서고 혹여 산짐승을 만나면 어떡하나 공포감을 느끼면서도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긴장된 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살면서 무수히 많은 길을 걷게 된다. 때론 잘 포장된 길을 달리기도 하고 가시덤불 무성한 길을 헤쳐 나가며 기쁨에 환호하기도 하고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기도 하면서 인생을 배우고 자신을 개척해 가는 법을 배운다.

한 차례의 큰 어려움을 겪고 나면 겪은 만큼 세상에 대한 자신감과 지혜를 얻기도 한다. 도전과 시련을 반복하면서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때론 누군가의 나침반이 되어주기도 하며 보람과 기쁨을 찾는다.

산을 오르는 것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헉헉대며 힘들어 하는 나와 정상을 밟아보겠다는 또 다른 나와의 치열한 다툼이 존재한다. 힘들다고 그만 하산하자고 조르는 나, 정상에서 바라보는 산맥과 능선 그리고 산 아래 모여 앉은 크고 작은 마을을 품어보고 싶은 나, 이만큼의 힘듦도 견디지 못하면서 어떻게 세상과 싸울 생각을 하냐며 꾸짖다 보면 꾀를 부리던 나는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

이것이 나의 산행법이다. 길을 잃고 헤매면서 삶에 있어서의 나의 길은 제대로 잘 가고 있는가를 반문해 본다. 길이 보이지 않으면 그냥 마음이 시키는 대로 앞을 향해 달렸고 자신의 판단에 힘과 용기를 실어주곤 했다. 그냥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면 되는 것이라고 토닥이기도 하고 회초리를 치기도 한다.

덕유산, 지금 헤매고 있는 곳이 어딘지는 알 수 없으나 하늘이 보이는 곳을 향해 오르다보면 길이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걷다보니 고샅길이 나왔고 머지않은 곳에 이정표가 보였다.

1500고지의 덕유산 정상, 들꽃들의 은근하고 잔잔한 떨림이 우리를 반겼고 바람에 섞여 몰아치는 산안개가 산의 기강을 세우는 듯했다. 길을 잘못 들어 몇 시간 발품은 더 팔았지만 정상에 서는 기쁨은 그 어느 때보다 큰 산행이었다.

▲한국문인협회 회원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안견문학상 대상 ▲시집- 푸른 상처들의 시간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