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0월 말부터 10일 동안 부산에서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 제10차 총회가 열립니다.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 총회는 세계 개신교(정교회 포함)의 축제입니다. 1948년 창립된 후, 현재 140개국에 있는 약 5억7천만 명의 그리스도인들을 대표하는 349개의 교단들이 회원입니다.
한국에서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기독교대한감리회, 한국기독교장로회, 대한성공회 등 4개 교단이 소속되어 있습니다. 세계교회협의회 총회는 지금까지 9차례 있었지만 아시아에서 열리는 것은 1961년 인도 뉴델리 대회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공식적인 대표단만 5천 명 넘게 참석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 대회는 선교 130여년의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가진 피선교지였던 한국 개신교가 이제 글로벌 교회로 우뚝 서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투쟁과 고난, 증언과 신앙, 희망과 성장을 세계교회와 함께 나눌 수 있는 기회도 될 것입니다. 특히 분단국가로서 60년 동안의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려는 노력도 함께 시도될 것입니다.
이번 세계교회협의회 제10차 총회가 선정한 주제 ‘생명, 정의, 평화’는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화두입니다. 생태계의 파괴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지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환경재난은 전 인류를 파멸시킬 수 있고, 이런 위기인식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정의와 평화입니다. 평화는 일반적으로 전쟁의 반대개념으로 이해됩니다. 이것은 이미 일어난 전쟁과 앞으로 일어날 전쟁 사이에 무기가 침묵하는 기간을 의미하는 매우 소극적인 정의입니다. 그러므로 나라와 나라 사이의 평화는 적보다 우월한 군사력을 가질 때거나, 아니면 최소한 힘의 균형 상태에 있을 때 가능합니다. 힘의 균형이 평화를 보장한다는 이런 시각은 끊임없는 군비확장을 정당화합니다. 그러나 군비확장은 적의 침략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자기 방어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다른 민족을 침략하기 위한 전쟁준비의 수단인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2차 세계 대전 이래, 세계적으로 16조 달러 이상이 군사적 목적을 위해 지불되었습니다. 냉전체제가 해체되었다는 지금도 민족분쟁과 내전은 계속되고 있고, 분쟁을 종식시키려는 노력은커녕 군사력 증강과 무기 수출은 불황을 모릅니다. 그러나 첨단무기가 있다고 평화가 지켜지는 것일까요? 그리고 힘에 의해서만 지켜지는 평화는 어떤 평화인지, 누구를 위한 평화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까닭은 정의 없는 평화는 거짓 평화이기 때문이다. 갈수록 심화되는 구조적인 빈부의 격차는 평화를 위협하는 것이 밖으로부터만 오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부터 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정의 없는 평화, 힘에 의해서만 유지되는 평화, 범죄와의 전쟁을 통해서만 지켜지는 평화는 ‘위로부터의 평화’일 뿐입니다. 정의와 사랑이 없는 평화는 참 평화가 아닙니다. 그런 평화는 아래로부터 도전을 받습니다. 평화를 전쟁의 부재상태로 이해하거나, 평화는 오직 우월한 힘에 의해서만 보장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평화는 ‘위로부터의 평화’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전쟁의 목적은 평화이지만, 그 평화는 전쟁에서 승자만이 차지하는 열매입니다. 평화는 전쟁의 반대개념이라고 보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전쟁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평화는 그들에게 결국 전쟁의 ‘일란성 쌍둥이’에 불과한 것입니다.
오늘 평화를 위협하는 것은 전쟁만이 아닙니다. 테러, 종교 분쟁, 인종갈등, 경제위기, 이념갈등, 세대갈등, 물질만능주의, 범죄 등도 평화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평화는 체제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인간안보’의 과제입니다. 그러므로 ‘정의 없는 평화’는 거짓 평화이고, ‘평화 없는 정의’는 폭력적 평화입니다. 불안전하고 위험하기는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정의와 평화는 서로 뗄 수 없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정의로운 평화’(JustPeace)인 것입니다. 평화에 이르는 길은 정의밖에 없고, 정의에 이르는 길은 평화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