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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수재민 일기

 

벌써 2주가 지났다. 그러니까 14일 새벽이 어슴푸레 밝았다. 밤새 뜸해진 비에 곤한 잠을 자고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처럼 한가하게 염색이나 할까 하고 약을 섞어놓고 그 사이에 마른 빨래도 개켜 넣고 염색약을 바르고 전날 번개 때문에 못 보낸 원고를 보내려 모처럼 여유를 부려보는데 갑작스런 천둥소리에 놀라 컴퓨터를 끄는 것과 거의 동시에 남편의 다급한 음성이 먼저 뛰어 들어온다. “가게 물차고 있어.”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움직인다.

재빠르게 머리 헹구고 타월 뒤집어 쓴 채 달려 나갔을 때 내 앞에 놓인 풍경이라니! 지금까지 내가 살던 우리 집이 아니었다. 찻길은 쏜살같이 달리는 황톳물로 넘치고, 가게 안은 온몸으로 출렁이며 나를 기다리는 흙탕물로 한강이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쓰레받기로 퍼내보지만 얇은 플라스틱은 휘청거리고 힘을 쓰지 못해 물은 점점 불어만 갔다. 결국 좀 더 탄탄하고 변이 넓은 사각쟁반으로 맹렬하게 물을 퍼내고 쓰레기로 막힌 집 주변의 배수로를 찾아다니며 계속 오물을 치워가며 뚫고 나니 하늘은 어느새 말짱한 얼굴로 구름을 몰고 떠난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바쁜 걸음을 늦추고 흘끔거리며 쳐다보기에 그냥 한심하고 불쌍해 보여서 그런가 보다 하며 서둘러 가게 청소를 하고 그 와중에도 아는 사람이 들여다보면 커피 한 잔씩 마셔가며 다른 집보다 피해가 덜함을 위안삼아 물청소 한 번 잘 했다는 농담도 잊지 않았다.

대충 정리가 되자 젖은 옷이 축축하고 휘감겨 옷을 갈아입기 위해 안으로 들어와 거울을 보니 말 그대로 가관도 아니다. 머리에 두른 타월은 한쪽으로 흘러내리고, 칠부 바지에 목욕탕 슬리퍼 차림으로 한 손엔 빗자루 한 손엔 종이컵을 들고, 도무지 설명이 되지 않고 국적도 분명치 않은 스타일의 아줌마가 물에 빠진 생쥐 모양 홈빡 젖어 있었다. 우리 집 근처에 기자가 한 분 사시는데 혹시 찍히지나 않았을까 슬슬 걱정이 된다. 어쩌면 퓰리처상에….

장판을 들어내고 새로 솜 틀어넣은 이불을 말아 내놓은 집에, 지하실에 물이 차 수리비용이 많이 들어 영업을 계속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목욕탕집이나 허벅지까지 물이 찬 집과 심지어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 비하면 도로 설계가 잘못 되었다느니 다른 길로 흘러가는 물을 모아 들였다느니 배수구를 제때 정비를 안 해 막혀서 생긴 인재라거니 논란이 분분하지만 한나절 수재민은 저절로 입이 다물어져 수재민이라는 말도 무색해지고 그간 뜻하지 않게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의 심정을 조금은 헤아려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뉴스 보고 걱정된다며 안부를 물어 오는 친척들의 전화와 카톡으로 전화기도 쉴 새 없이 바쁘다. 물론 그 북새통에 한가하게 살고 있던 것은 컴퓨터뿐이었다. 한나절 수재민 집에는….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 작가 신인상 수상 ▲가평 문학상 수상 ▲가평문인협회 감사 ▲플로리스트 ▲저서: 귀밥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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