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8은 중국어로 ‘빠(pa)’라고 발음한다. 발(發)의 화(fa)와 발음이 비슷하다. 발은 부자가 된다, 혹은 돈을 벌다의 ‘파차이(發財)’를 뜻한다. 때문에 중국인은 숫자 8만 보면 사족을 못 쓴다. 8에 대한 사랑 또한 상상을 초월한다. 차량번호뿐 아니라 전화번호도 모두 8자로 된 번호라면 부르는 게 값이다. 중국인들은 개업 기념일이나 결혼식 등 중요한 날을 택일할 때도 8자가 들어간 날을 선호한다. 음식값부터 물건값과 호텔 숙박비까지 88위안, 888위안, 1888위안처럼 8자로 끝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을 8월 8일 오후 8시8분에 시작한 것도 같은 의미다.
물건도 8자만 새겨져 있으면 무조건 산다. 스위스 시계업체가 베이징올림픽을 기념해 총 35종의 올림픽 기념 시계를 선보였다. 그중 고유번호가 8번, 88번, 188번 등 8이 들어가는 시계 35개를 모아 8층탑 모양으로 제작한 박스에 담았다. 이 시계 시리즈는 올림픽이 끝난 후 홍콩 소더비경매장에서 14억원에 낙찰됐을 정도다.
인천 용유·무의도에 추진하던 ‘에잇시티(8City)’라는 개발사업 이름도 이 같은 중국인들을 겨냥해 붙여진 것이다. 약 317조원의 사업비가 소요돼 단군 이래 최대 규모로 불리던 이 사업이 아이러니컬하게도 ‘8’월에 착수조차 못한 채 자동 해지될 전망이다. 사업 시행 예정자가 약속한 400억원을 7월31일까지 증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에잇시티 개발사업은 인천공항이 있는 영종도 바로 옆 용유·무의 지역 79.5㎢를 세계적인 문화·관광·레저 및 최대 규모의 컨벤션 도시로 조성하려던 사업이다. 마카오의 3배 규모고2007년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야심차게 추진했음에도 불구하고 300조원이 넘는 사업비 조달 가능 여부에 대해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자칫 사업이 실패할 경우 재정난에 시달리는 인천시에 막대한 타격이 우려된다는 지적도 많았다.
그러던 중 6년 만에 삽 한 번 떠보지도 못하고 좌초하기에 이른 것이다. 용산개발 프로젝트와 함께 “단군 이래 최대”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대규모개발사업의 두 번째 굴욕이다. 단체장이 의욕만 앞세워 계획 때부터 우려됐던 부분이 현실로 나타난 지금, 주민들의 피해 수습 등 뒷마무리가 걱정이다.
/정준성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