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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IN]광복절에 새기는 겨레의 복지

 

올해 어르신들과 일할 기회가 많아서인지 윗세대들의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올해 초, 몇 분의 농업분야 은퇴 교수님들과 해외원조 사업에 동참하여 파키스탄에서 일주일 정도 함께 지낸 적이 있다.

하루는 일행 중 몇 분이 먼저 귀국하게 되어 귀국 전날 한 사람씩 얘기나 노래를 하며 환송의 시간을 가졌다. 나는 그 저녁을 잊지 못하는데, 그 중 연세가 가장 많으셨던 어느 교수님 때문이다. 그 분은 칠순 후반의 연세가 믿기지 않을 만큼 건장하셨고, 사람의 중심에서 나오는 건강하고 올곧은 힘이 느껴지는 분이었다. 귀국 전날인 그 날도 현지인의 농업기술 교육에 쓸 비닐하우스 짓는 일을 온종일 마무리 하고, 검게 탄 농부의 모습으로 저녁 식사에 나타나셨다.

그 분은 자신의 차례가 되자, 우리에게 어떤 문건을 하나씩 나누어 주셨는데, 1919년에 작성된 기미독립선언서의 복사본이었다. 그 분은 독립선언서 전문을 외워보겠다고 하시곤 쩌렁쩌렁한 음성으로 암송하기 시작하였다.

吾等은 玆에 我 朝鮮의 獨立國임과 朝鮮人의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 此로써 世界萬邦에 告하야 人類平等의 大義를 克明하며 此로써 子孫萬代에 誥하야 民族自存의 正權을 永有케 하노라.

과연 그 분은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공약 3장까지 완벽하게 암송하셨다. 내가 놀란 것은 단지 그 분이 세계에서 가장 긴 독립선언서라고 알려진 그 문건을 모두 암송한다는 사실 이상이었다. 그 분의 입에서 나온 독립선언서는 100여 년 전의 사어(死語)가 아니라, 마치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자식에게 물려주려는 유언처럼 한 글자 한 글자에 자존감과 생명력이 담겨 있었다.

그 교수님은 친환경 농업 연구와 실천에 앞장 서 온 분이었고 아직까지도 그 일을 하고 계신다. 해방과 전쟁 이후의 압축적 근대화 과정을 몸으로 겪으면서 독립선언서의 정신을 신조처럼 새기며 살아오셨을 것이 느껴졌다. 이런 분 덕에 우리나라 친환경 농업이 훌쩍 성장하겠다는 믿음이 들고, 그런 어른이 우리 곁에 계신 것이 참으로 고맙고 기뻤다.

광복절을 맞으며, 함께 일했던 강단 있는 어르신들을 떠올린다. 암울한 일제강점기 하에서 인류평등의 대의와 민족자존의 길을 모색했던 선조들을 떠올린다. 기미독립선언서를 다시 펼쳐보며 유독 한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슬프다 [중략] 눌러 오그라들고 사그라져 잦아진 민족의 장대한 마음과 국가의 체모와 도리를 떨치고 뻗치려면, 각자의 인격을 정당하게 발전시키려면, 가엾은 아들딸들에게 부끄러운 현실을 물려주지 않으려면, 자자손손에게 영구하고 완전한 경사와 행복을 끌어 대어 주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선언서는 묻는다. 당시에는 민족의 독립이 그 해답이었다면, 오늘날에도 유효한 이 질문에 대한 우리의 답은 무엇일까?

복지의 시대, 국민 행복의 시대라고 한다. 정치에 대한 불신이 더 커져 가는 요즘, 이 화두에 대해 국민은 크게 신뢰하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복지와 행복, 이는 개인과 국가가 추구할 만한 좋은 가치임에 분명하다. 성장 일로의 시대를 지나, 부의 사회적 분배, 개인들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의 자유로운 추구와 실현, 다양성 존중과 공존, 환경의 보존, 이 모든 것들의 바탕이 되는 성숙한 시민의식 등이 복지와 국민행복 시대에 필요한 가치일 것이다.

참으로 다행인 것은, 이러한 가치들을 추구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실천하는 시민들이 주변에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의 경제 성장이 노동자와 국민의 땀과 희생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복지와 국민 행복의 시대도 결국엔 국민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질 것이라 믿는다.

광복절을 맞아, 어둡고 부정적인 기운을 잠시 거두고, 이 작은 나라에서 선조들과 우리의 부모들이 일구어 낸 경이로운 스토리들에 감사하고 박수를 드리고 싶다. 풀어나가야 할 문제가 너무도 많은 현실이지만, 시민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묵묵히 지키며 살아가는 이웃들에게도 응원을 보내고 싶다. 겨레의 복지는 지금 우리들에게 달려 있지 않겠나. 힘을 내고, 저력 있는 국민으로서 광복절을 자축하며 보내는 것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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