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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일칼럼]진맥(診脈)

 

한의사가 맥(脈)을 짚지 않고 보이는 증상만으로 진단을 내린다면 그 결과가 얼마나 참담할까? 그러나 맥을 진단하는 것은 단지 한의학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얼기설기 엮여 있는 사건과 사상의 ‘맥락’(脈絡)을 파악하는 것 역시 한의사의 진맥만큼이나 중요하다.

최근 각종 언론매체를 볼 때마다 온갖 선정적이고 선동적인, 폭로성 짙은 제목들에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다. 제목 한 줄에 어떤 인물은 공공의 적인 악마가 되기도 하고, 어떤 인물은 한국 사회를 구원하는 천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정말 그 한 줄은 바르게 전해지고 있는 것일까? 인터넷 시대의 폭발적 정보 과잉과 함께 말의 병이 판을 치는 시대에 병든 말을 진맥하는 것이야말로 단단히 정신을 벼리고 달려들어야 할 일이다.

예나 지금이나 맥락 없이 가져다 쓴 말은 거의 예외 없이 오용되거나 오해되곤 했다. 자신의 말이 맥락과 달리 인용돼 피해를 본 대표적인 인물로는 아마도 고대 로마의 풍자시인 유베날리스(Juvenalis)와 발명가 에디슨(Thomas A. Edison)을 들 수 있다.

먼저 오해받은 유베날리스의 유명한 말은 다음과 같다.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 올림픽 정신과 함께 자주 인용되는 이 말은 대략 몸이 건강해야 정신도 건강하니 건강한 몸을 단련하기 위해 열심히 운동을 해야 한다는 식으로 이해돼 왔다. 그러나 만약 유베날리스가 이 말을 들었더라면 지하에서라도 풍자시인다운 비웃음을 한껏 날렸으리라. 일단 유베날리스의 말로 전해지는 이 말의 원래 문장은 이것이다.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들기를 기도해야 할 것이다.” 이 말에 대한 설명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존재한다. 하나는 이 풍자시인이 잘못된 당시의 기도 관습에 대한 비판으로 이 말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물질적인 것, 육체적인 것의 성공만을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정작 기도해야 할 것은 정신적인 것이라는 것을 말하려 했다는 설이다. 이 설보다 설득력 있고 흥미로운 다른 하나는 이 말이 당시 아이돌에 해당하는 스포츠스타들에 대한 조롱이었다는 설이다. 어느 도시에나 원형경기장을 갖춘 로마제국에서 스포츠스타들의 인기는 지금의 아이돌 인기에 버금가는 것이었다. 유베날리스는 이 말로 자기 근육만 자랑하는 스포츠아이돌에게 제대로 된 정신을 갖추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냐고 풍자시인답게 빈정댔다는 것이다. 이런 말이 스포츠 육성에 대한 표어로 사용됐다니 이 얼마나 큰 아이러니인가.

오해로 따지자면 발명왕 에디슨 또한 이에 못지않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학교에서 줄곧 들었을 그의 유명한 말은 이것이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이 말은 언제나 타고난 능력보다는 노력이 중요하다.

그러니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돼 왔다.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이 말을 위로삼아 밤을 새워가며, 코피를 쏟아가며 열심히 공부했던가.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에디슨의 원래 의도를 정반대로 해석한 말이다. 실제로는 아무리 노력을 기울인다 해도 1%의 영감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노력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영감(inspiration)은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절대자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 이 영감이 없다면 천재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자신을 천재라고 떠받드는 대중들에게 자신의 자신됨이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신의 영감 덕택이었음을 나타내는 겸손의 표현이었을지도 모른다. 맥락을 잃은 말들은 무척이나 위험해 사소한 오해를 넘어 때로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첨예한 이슈들이 난무하는 지금, 말의 맥을 짚는 일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증상을 보기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맥을 짚도록 하자. 말에 대한 바른 진맥이야말로 지금 혼란한 이 사회를 바로잡기 위해 가장 중요한 조치일 것이다. 어디 사회뿐이랴. 개인 사이에서도 말의 맥락을 바르게 잡으려고 노력하는 일은 건전한 관계를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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