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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착한 거짓말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스파게티를 먹었다.

시큼하면서 치즈가 쭉쭉 늘어나는 스파게티를 젓가락으로 국수 먹듯 한 입 가득 먹었다. 혀가 느끼는 맛을 뒤로하고 볼이 터지도록 꾸역꾸역 밀어 먹었다. 스파게티는 젓가락으로 먹는 것이 아니고 포크로 돌돌 말아 천천히 맛을 음미해 가면서 먹어야 한다는 핀잔을 무시한 채 그냥 내 맘대로 먹었다.

세상에서 처음 먹어보는 맛이다. 어떤 맛하고도 비교할 수 없는 미묘한 맛이다. 근심스런 표정으로 입에 안 맞으면 그만 먹으라는 딸애를 쳐다보면서 차마 수저를 놓을 수가 없어 먹고 또 먹었다. 맛이 어떠냐고 묻는 아이에게 스파게티를 많이 먹어보지 않아서 어떤 맛이 진짜 맛인지 모르기 때문에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정말 맛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딸아이의 작품이다. 며칠째 스파게티를 만들어주겠다고 벼르더니 시장을 보고 한참을 주방에서 뚝딱거린다.

인스턴트가 아닌 정통의 맛을 보여주겠다며 온갖 정성을 들여 맛깔스럽게 내놓은 요리다. 겉보기엔 먹음직스럽게 차려놓은 식탁이었지만 막상 한 입 먹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시큼털털하고 느끼하고 양파는 어석거린다. 스파게티 한 번 먹고 콜라 한 모금 마시면서 최대한 행복하고 맛있는 표정으로 먹는 연기를 했다. 안절부절못하며 그만 먹으라고 성화를 하던 아이가 마침내 접시를 빼앗아 갔다.

맛있게 잘 먹었다고 다음에 또 해달라고 하니 다음엔 좀 더 연구하여 정말 맛있게 해주겠다며 먹어줘서 고맙다는 아이의 표정이 밝고 자신감이 느껴졌다. 맛있다는 엄마의 말이 거짓말인지 알면서도 요리에 자신감이 생겼다며 또 해보고 싶다는 아이를 보면서 말의 힘을 느낀다.

같은 말이라도 표현과 방법에 따라 상처가 되거나 힘이 된다. 살면서 상처를 가장 많이 주는 사람도 가족이고 힘이 되는 사람도 가족이다. 그만큼 믿는 사람에게서 혹은 내편이라고 믿었던 아니 믿고 싶었던 사람에게서 느끼는 실망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생각 없이 던진 말 한마디가 화를 부르기도 하고 나는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못하는데 상대방에게는 상처가 되어 오래도록 가슴앓이를 하게 한다. 특히 부모자식간은 더 그러하다.

칭찬은 속으로 하고 야단은 겉으로 치는 부모를 자식은 이해하지 못한다. 야단을 치면 더 잘할 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이래도 야단맞고 저래도 야단맞으니 될 대로 되라는 식이다. 조금 잘했으면 많이 칭찬하고 야단칠 일은 가급적 줄여서 해야 하는데 일상에서는 그와 반대로 칭찬에 인색하다.

된장찌개 한 냄비만 푸짐하게 끓여도 맛있게 먹어주는 가족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식사를 했다며 또 먹고 싶다는 착한 거짓말이 고마워 가족의 입맛에 맞은 요리를 하기 위해 애쓰는 것처럼 서로에게 힘이 되는 말은 아끼지 말아야 한다.

살면서 권태로울 때 문득 상대의 뒤꿈치도 보기 싫어질 때 오늘은 당신이 멋져 보이네 하고 던지는 착한 거짓말 한마디로 시작하는 하루가 한결 산뜻하게 않겠는가.

▲한국문인협회 회원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안견문학상 대상 ▲시집- 푸른 상처들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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