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하는 사이 계절은 11월의 중심을 지나가고 있다. 아무 것도 못하고 시간만 보내는구나, 하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11월은 그런 달이다. 한 해를 보내는 끝자락 바로 직전, 첫사랑으로부터 이별을 통보받을 것을 알면서도 그 앞에서 웃어야 하는 그런 멜랑콜리(Melancholy)한 심장들이 여기저기 흩날리는.
한 무리 낙엽들이 거리를 쓸고 다니고, 사람들은 옷깃을 세우며 총총걸음으로 어디론가 헤매는 시간. 시인 고은은 이 계절을 이렇게 읊었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낙엽이 흩어진 날 헤매인 여자가 아름다워요/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모든 것을 헤매인 마음 보내 드려요/낙엽이 사라진 날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가을 편지’ 全文)
‘세상 모든 여자가 나를 사랑할 것’이라는 다소 오만한 마음이 묻어나는 이 시에도 쓸쓸함은 여전하다. 인간의 생이란 어쩌면 쓸쓸함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니까, 당연하겠다. 그러면 모든 생이 다 쓸쓸하기만 할까.
우리와 같은 뿌리에서 나와 지구촌 반대편에 삶의 터전을 잡고 살았던 인디언들은 이 계절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잠시 살펴보자. 그들은 11월을 이렇게 부른다.
▲물이 나뭇잎으로 검어지는 달(크리크족) ▲산책하기 알맞은 달(체로키족) ▲강물이 어는 달(히다차족)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아라파호족) ▲기러기 날아가는 달(키오와족).
우리네 11월이 계절에 마음을 투영시켜 감정의 극대화를 끌어낸 것이라면 인디언들의 그것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관조하는 삶을 추구하는 품목이다. ‘있는 그대로’를 관(觀)하는 자세로 세월을 견디는 사람이 드문 요즘이다. 관(觀)하지 못하니 당연 ‘생(生)은 갈 지(之)’다. 누구를 탓하겠는가, 시류(時流)에 휘둘려 어지럽게 걸어온 내 발등을 찍는 수밖에. 참으로, 멜랑콜리한 11월이다.
/최정용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