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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일칼럼]‘화’에 대하여

 

세상을 살면서 ‘화’ 한번 내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화가 나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화를 다스리지 못해 스스로 화병에 걸리기도 하지요. 물론 우리 가운데는 정말 화를 좀처럼 잘 내지 않고, 잘 참기도 하는 훌륭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 심지어 수행을 본업으로 삼는 종교인들이라도 화를 극복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화가 자신을 향해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것도 문제지만, 타인을 향하는 무차별적이고 집단적인 화풀이는 더 큰 문제입니다.

어쨌든 화가 인간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는 화를 풀지 못해 울화병에 걸린 적이 있거나, 화를 다스리지 못해 피해를 주고받은 적이 있는 사람들에게만이 아니라, 세계의 종교들이 모두 화를 문제 삼고 있다는 데서 드러납니다.

서구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은 화를 지옥에 떨어질 대죄로 여겼고, 불교도 시기, 절망, 미움, 두려움 등 우리 마음을 고통스럽게 하는 독들을 하나로 묶어 ‘화’로 규정했습니다. 또 화는 개인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집단적 차원에서 전쟁, 테러 등으로 폭발하기도 하지요. 그래서 전쟁은 ‘조직화된 화’이고, 테러는 ‘정치적으로 조직된 화’라고 ‘화’ 연구의 대가 로버트 서먼이 말했습니다.

그러나 화를 꼭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시각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웹스터 사전에 따르면 화는 ‘불쾌함을 강력히 표시하는 격정 혹은 감정, 그리고 적대감이며 일반적으로 상처나 모욕감으로 인해 일어난다. 동의어로는 격노, 격분, 광분, 분개, 분노 등이 있다. 이 단어들은 격렬한 불쾌함으로 야기되는 감정적 흥분상태를 의미한다. 이 단어 무리를 포괄하는 단어인 화는 정황은 말할 것도 없고 격렬함의 정도나 겉으로 드러나는 방식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격노는 좋지 않은 감정의 영향을 받았으되 그 정도가 더 치열한 상태를 말하고, 격분은 감정을 통제할 힘을 상실했다는 암시를 담고 있으며 일시적인 정신착란을 내포할 때가 종종 있다. 격분보다 더 강한 광분은 광기에 가까운 위압적인 격정을 뜻한다. 분개는 비열하고 창피스러운 무엇인가에 의해 일어나는 깊고 격렬하고 종종 정의롭게 비치는 화임을 강조한다. 분노는 그런 감정이 일게 된 바탕으로 격분이나 분개를 암시함과 동시에 복수하거나 처벌하고 싶은 욕망이나 의지를 함축한다’.

결국 화는 상처를 받거나 모독을 받을 때 불쾌함을 강력하게 표시하는 감정이나 적대감이라는 말입니다. 화가 감정에만 머물러 있으면 화가 난 사람 내면에서 화병이 생기고, 화가 적대감으로 밖으로 표현되면 타인에게 보복하는 것이 됩니다. 화에 대한 사전적 정의에는 화에 대한 가치평가가 개입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화가 드러나는 상태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결국 화의 근본을 살펴보면 우리는 화가 ‘구별’과 ‘차별’에서 비롯된 ‘상처’와 ‘모욕’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 안에 있는 낯선 자기, 다른 사람의 다름을 참을 수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화를 극복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 보면 ‘화’에 대한 연구서, ‘화’를 다스리는 수행법에 대한 수많은 책들을 읽는다고 화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명상이나 호흡법 혹은 종교적 수행이 화를 극복하는 아주 중요한 방식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자기통제력과 수행이 부족한 제가 스스로 깨달은 것은 ‘화’는 빛과 그림자처럼 뗄 수 없이 인간적 삶 안에 함께 있다는 것을 긍정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나를 모독하고 상처를 준 타인도 다른 사람에게는 훌륭한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상처는 결국 상처받은 자신을 스스로 용납하고 사랑할 때 치유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화를 낼 수 있고, 그 때문에 상처를 주고받을 수 있는 한계 안에 모두가 함께 있다는 것, 그리하여 용서와 사랑 없이는 화가 극복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때 화는 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저는 화를 잘 이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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