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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살얼음과 관계에 대해서

 

햇볕이 많은 곳에서 시작되는 봄기운이 포르스름한 기운에서 점차 푸른빛으로 짙어진다. 마당에 나서니 겨우내 얼음에 묻혀있던 낙엽들이 여기저기 뒹군다. 빗자루를 들어 묵어있던 먼지까지 쓸어내니 낙엽 아래서도 냉이며 새 움이 푸른빛을 띠고 나타난다. 청소를 해서 말끔해진 마당 댓돌 위에 앉으니 누군가 정다운 사람과 이야기 나누고 싶어진다. 문득 핸드폰으로 한동안 뜸하게 지냈던 친구의 전화번호를 누른다.

“어머, 이게 누꼬? 잊겠다 싶어 연락을 하려던 참이었는데….”

“그래 먼저 전화 좀 하면 안 되나, 가스내야.”

“그래, 맞다 맞아, 한데 내가 부상을 당했다는 거 아이가?”

“웬 부상?”

“며칠 전에 봄맞이 대청소로 뒤란청소를 하다가 살얼음을 딛고 나가 자빠졌지 뭐, 덕분에 다리 깁스하고 몸조리 잘 하고 있으니 놀러 오려마, 가스내야, 살얼음이 그거 사람 잡는 거더라, 겉보기엔 멀쩡한데 얼음 아래로 물이 흐르고 있는 줄 누가 알았겠노.”

친구는 뒷마당에 겨우내 얼었던 물이 녹으면서 잡힌 살얼음에게 당했다고 연신 살얼음, 살얼음, 목소리를 높인다.

생각해 보니 살얼음이 마당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치 앞을 못보고 사는 우리에게 살얼음은 도처에 널려있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고 아등바등하는 것이다. 다 먹고 사는 일이라고 하지만 일벌레처럼 앞만 보고 살다보면 미끄러지듯이 곤경에 빠지는 일이 다반사다. 그렇다고 돌다리 두드려보고 걷듯 모든 일을 두드려보고 시작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사람 관계에도 살얼음은 우리를 황당하게 하기도 한다. 사람을 알아가다 보면 서로 챙겨주는 마음이 생겨 더욱 두터운 우정으로 변신하기도 하고, 돌다리처럼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평생을 함께하는 관계로 발전하기도 한다. 반면에 사람을 통해 손익을 계산하며 만나는 사람이 종종 있는데 이런 경우 상대편 사람은 휘황찬란한 말과 친절한 겉모습에 마음을 주고 나서 낭패를 당하는 경험담을 종종 듣는다.

또한 말에는 참으로 많은 굴곡이 숨어있다. 말을 통해 우리는 아름다운 꿈을 꾸기도 하고 말을 통해 세상을 향해 더욱 굳세게 돌진할 수도 있고 말을 통해 마음을 평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상대편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가볍게 던진 말 때문에 살얼음에 미끄러지듯 가슴이 비수에 찔려 아프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건강에 자신이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불치의 병으로 아픈 세월을 보내는 사람을 살얼음을 딛고 미끄러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몸 속 깊은 곳에 병이 있는 줄도 모르고 건강에 대해 안일하게 생각하고 술과 담배와 식습관을 함부로 하다가 봉변을 당하는 예이기도 하다.

이렇게 삶의 도처에는 많은 살얼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친구 또한 평상시에 드나들던 뒤란이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얼은 땅을 딛고 낭패를 당한 일이다. 이제 친구와의 소심했던 관계에도 푸른빛의 새싹을 틔워야하는 걸 예감한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를 대면서 소식을 뜸하게 했던 우리들이다. 이 봄빛 아래서 우리들의 관계가 냉랭하게 얼어붙기 전에 서로의 마음에 따뜻한 불을 지펴야겠다. 이 봄, 엄청 소란스러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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