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요즘 그리운 사람이 생겼다. 살면서 난감한 지경에 처했을 때 찰진 욕설로 우리의 맘을 속 시원히 뚫어주던 욕쟁이 할매 고 김수미 배우다. 그녀가 감정을 끓어 올려 구수한 욕을 한마디 뱉으면 울컥하던 속이 가라앉고 그 억센 목소리에서는 시원한 감정의 해소를 넘어 묘한 따뜻함과 위안을 얻었으며 독설 같지만 위선 없는 솔직한 그 말들에 우리는 크게 웃었다. 고 김수미 배우의 ‘맛깔난 욕’은 그래서 더욱 특별했다.
그렇다면 욕은 언제부터 존재했을까? 아마 인류 역사의 시작과 함께 했을 것이다.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에서는 상하관계를 무너뜨리는 욕이 옛날부터 엄격히 통제 되었고, 중세 유럽에서는 신을 모욕하는 욕이 금기시 되었다.
오늘날 세상은 스마트하게 발전해 가며 우리에게 더욱 세련되고 정제된 언어와 점잖은 척 하는 매너를 요구하고 우리는 대부분은 그럴싸한 언어로 포장된 일상을 보낸다. 욕은 감정을 억제하고만 살 수 없는 인간에게 해방구 역할을 해왔다. 우리는 저마다 그럴싸한 말로 표현되지 않는 순간을 산다. 친구의 배신, 부당한 대우, 억울한 누명, 최선을 다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의 골목에서 인간은 울거나 욕이라도 해야 할 때 욕도 못하면 우울은 속으로 스며들고 분노는 안으로 굽어 결국 병이 되는 것이다.
심리학과 신경학의 많은 연구는 금지된 말을 할 때 엔돌핀이 분비되어 삶의 애환에 대한 인간의 내성을 키우는 순기능이 있고, 위기 상황에서 생존 본능을 촉진한다고 밝히고 있다. 욕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주어 감정을 조절하는 심리적 진정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또 욕은 깊은 역사적, 사회적 뿌리를 두고 있다. 욕은 우리가 처한 역사와 사회상에 따라 개인적 사건뿐만 아니라 권력과 사회를 비판하는데 사용되었다. 때론 이러한 욕설이 모이고 또 모여 사회와 국가를 변화시키며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이다.
물론 욕을 일상화 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타인을 향한 폭력으로써 욕은 해악이다. 하지만 참기 어려운 순간 자신을 위해 내뱉는 정직한 분노의 언어까지 통제돼야 하는 것일까? 우리가 욕하는 순간은 감정이 언어의 외피를 찢고 튀어나올 때다. 정제된 언어론 도저히 담아낼 수 없는 감정, 억눌린 현실에 대한 강하고 솔직한 반격, 욕은 아마도 가장 진솔한 언어이며 감정의 생존본능일 것이다.
욕은 유행을 탄다. ‘오지네’, ‘개쩐다’, ‘지렸다’ 과거엔 욕을 무례하고 거칠며 저속하다 여겼지만 지금은 그 말들이 세련된 감탄사로 변해 간다. 비록 모두에게 환영받는 일상의 언어는 아니지만. 우리말에는 ‘비어’, ‘속어’, ‘욕설’이 많다. ‘표준국어사전’에는 비어와 속어가 각각 1000여 개 이상이며, 욕설 또한 사전보다 훨씬 많고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세계에서 이렇게 많은 비어, 속어, 욕설을 보유한 민족은 우리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다채로운 표현들은 우리 언어와 문화의 다양성과 풍성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저마다 삶의 현장에서 일상을 묵묵히 버티며 살아내다 더 이상 참기 어려운 순간이 오면 두려워 말고 욕 좀 해도 되지 않을까? 욕을 참느라 목에 멍들고 마음에 병드는 삶보다는 가끔 xx 한마디 던지고 털고 일어서는 사회가 더 건강하지 않을까? 욕설이 왜 나오는지, 어디서 오는 감정인지 이해하고 다양한 문화적 스펙트럼을 수용하는 사회가 더 인간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