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백국화 한 분(盆)을 내 조그마한 서실(書室)로 뫼셔 드리며 스스로 ‘선생’이라 부르는 뜻은 세상이 하도 구지분하고 어지럽고 시속(時俗)이 또한 얕고 엷어 미황(迷徨) 속에서 허덕이므로 나는 물러나 조용히 이 꽃 앞에 와서 탄원하고 질의하고 묵상함으로써 무엇을 얻자 함이다. 알뜰하기로는 친구인 채로 귀하기로는 손님인 채로 점잖기로는 군자인 채로 정답기로는 식구인 채로. 나는 이제 내 서실로 뫼셔 드린 백국을 ‘축민선생(逐悶先生)’이라 부르기로 한다.” 국화 사랑이 유별났던 노산 이은상 시인의 상국삼도(賞菊三到)라는 글이다. 그는 글에서 국화를 고민·번민을 내쫓아주는 스승이라 표현했다.
예부터 국화는 이처럼 특별한 상징성이 부여되고 시제(詩題)에 많이 사용되는 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천에 이름을 가진 꽃이라 불린다. 오상(傲霜)을 비롯 은군자(隱君子)·은일화(隱逸花)·중양화(重陽花)·상하걸(霜下傑)·황금갑(黃金甲)·동리(東籬)·동리가색(東籬佳色)·연년(延年)·수객(壽客)·가우(佳友)·일우(逸友)·냉향(冷香) 등등. 별호도 품종만큼이나 많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만 절화(節華)·여절(女節)·여화(女華)·여경(女莖)·일정(日精)·갱생(更生)·부연년(傅延年)·치장(治薔)·금예(金蘂)·음성(陰成)·주영(周盈) 등으로 적고 있다.
국화의 원산지는 중국이다. 그래서 그런지 중국인의 국화 사랑은 끔찍하다. 색깔과 모양에 따라 부르는 별칭도 예사롭지 않다. 노란색 꽃의 국화에겐 황예(黃蘂), 즉 꽃의 왕자라 했는가 하면 작은 야생 국화종과 비슷한 노란 단추 모양의 국화는 ‘별이 가득한 하늘’이라 부른다. 하얀 깃처럼 생긴 국화는 ‘거위 깃틀 관’이라 하고 붉은 깃처럼 생긴 국화는 ‘붉은 실’, 얇은 잎의 커다란 자줏빛 국화는 ‘신선들의 복숭아로 만든 술에 취한 국화’, 중심부가 노랗고 커다란 한 송이 흰 국화는 ‘옥쟁반을 받친 황금의 잔’이라고 한다. 문인들이 나름대로의 어휘를 사용, 국화 예찬을 하다 보니 새롭게 생겨난 아호지만 친근하다.
요즘 국화의 계절이다. 그 분(盆) 집에다 초대해 놓고 세상 시름 잊을 만한 이름 한번 지어 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정준성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