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상쾌하고 단풍 짖게 물들어간다. 도심, 교외 곳곳에서 가을축제가 한창이다. 서울불꽃축제에서의 시민의식 실종, 대학축제의 지나친 선정성이 언론에 보도되고, 오랜 전통을 가진 진주남강유등축제의 유료화에 대한 찬반 반응이 뜨거웠다. 축제의 기원이 제의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결실이 있는 가을은 축제의 계절임에 틀림없다. 기획하고 주최하는 측이나 참여하고 즐기는 입장에서 방법에는 차이가 있지만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것은 힐링일 것이다.
1990년대부터 지역경제 활성화, 지역 이미지 제고 등을 목적으로 많은 축제가 기획 운영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홈페이지에 올라있는 2015년 지역축제는 664개에 이른다. 국가나 지자체가 주관·후원하고, 3일이상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진행되는 축제만 통계 잡은 것이다. 콘셉트도 지역의 전통문화 중심에서 국화, 억새, 구절초, 단감, 장단콩, 반딧불이 등 자연환경이나 특산물에 초점을 맞추어 확대 진행되고 있다. 경기도 내에서 진행되는 축제는 60개다. 그중에는 이천쌀문화축제,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이 문화체육관광부 최우수 축제로 선정되었고, 여주오곡나루축제가 유망축제로 선정되었다.
이제 생활의 일부가 되다시피 한 축제는 기획하거나 주최하는 측에서 분명한 효과를 기대하고 조직적으로 운영된다. 지역민의 소득 증대와 자긍심 고취, 문화활동 참여 기회 확대 등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이 주 목적이다. 이런 점에서 축제의 문화관광상품화가 이슈가 된다. 축제가 단순 볼거리를 제공하는데 그치지 않고,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운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즐기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기획력과 프로그램의 빈곤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축제의 매력은 일상적인 것으로부터의 일탈에 있다. 소재의 특이성, 체험과 전시 프로그램의 완성도, 전통의 보존과 전승에의 기여도 등이 축제의 품질을 평가하는 요소가 되며, 이것은 참가자에게 새로운 경험과 감동을 가져다주게 된다. 이 점에서 일본 센다이에서 진행되는 7월7석 축제는 시사하는 바 크다. 동북지역 3대 축제 중 하나로 외국인에게도 생소하지 않은 이 축제는 지역주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자발적 축제로 유명하다. 프로그램의 대부분은 상가연합회나 학교, 기업 등 순수 아마추어 단체가 기획하고 참여하지만 오랜 생명력을 가지고 유지된다. 특히 이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장식 콘테스트는 민간단체가 오랜 준비과정과 전문적인 제작공정을 거쳐 작품을 만들어 참여한다. 스스로 참여하고 즐기는 가운데 의미를 깨닫도록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의식에는 초등학교 작은 운동회가 감동이 있는 축제의 원형으로 자리잡고 있다. 지금처럼 축제가 그리 흔하지 않던 시절, 가을운동회는 좋은 볼거리였고 주민이 참여하는 축제였다. 추석이 지난 가을, 이른 아침부터 학교운동장에 펄럭이는 만국기는 마음을 설레게 한다. 본부석에 내걸린 후원자 명단에서 확인하는 아버지의 이름 석 자는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런 아버지 등에 업혀 릴레이도 하고 부락 단위 청년 마라톤에서는 마을이 한 마음이 되었다. 점심때면 운동한 한 구석에 자리를 깔고 준비한 음식을 나눠먹었다. 상품으로 받아든 노트 몇 권과 크레파스 하나, 그 것이 자랑거리고 행복이었다. 가을운동회는 참여하여 즐기고 기뻐하는 소박한 소통의 축제였다.
주변에 축제는 많아지고 더 화려해졌다. 볼거리, 먹을거리도 많고 풍성해졌다. 연예인들이 나서서 흥을 돋우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가을운동회의 감동과 힐링에는 미치지 못한다. 지역경제의 활성화, 지역 이미지 제고에 기여한다고는 하지만 장기적이고 지속성을 가져야 가능하다. 대동의 의미와 가치를 공유하고, 신명을 풀어내는 가운데 결속을 다지는 진정한 축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감동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이 우선되어야 한다. 지역 주민의 자발적 참여가 활발하게 이루어질 때 축제의 역동성은 확보되고 축제의 관광상품화도 가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