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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홍시 빼먹기

 

점심시간, 교정을 걷던 나이 든 세 여인의 눈에 동시에 들어온 그것.

“너무 맛있겠다, 어쩌지?”

몇 번을 쳐다보다 차마 어찌하지 못하고 그냥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사를 하다말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나온 말,

“이따 나갈 때 흔들어서라도 따 먹을까?”

“그렇지? 그렇게 터질 듯 발갛게 익은 홍시를 그냥 두고 갈 수는 없지?”

어느새 그렇게 말랑말랑하게 철이 들었는지. 지난 5월, 노란 감꽃 하나씩 달고 수줍은 듯 감잎 사이 속살거리던 작은 씨알들이 한 여름 푹푹 찌는 햇살을 잘도 견뎌냈나 보다. 지독하게도 흔들어대던 비바람은 또 어찌 다 감당하였는지. 세상 쓴맛 단맛 다 보고 마침내 그 떫은맛 용케도 삭혀낸 홍시를 보고 있자면 숙연해 질 때가 있다. 홍시가 된다는 건 비로소 자연과 온전히 소통을 하는 것이 아닐까. 내 색깔만 주장할 게 아니라 나의 성질과 나의 본성을 모두 알차게 모아 씨앗 속으로 꽉꽉 채워 넣고 마침내 세상을 향해 손 내밀어 하나가 되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제 막 사회 초년생으로 복잡한 세상 속에 뛰어든 딸아이를 보면 마치 시퍼런 떫은 감을 보는 듯하다. 잘 익은 감 맛을 내기에는 숱한 담금질이 필요한 풋감의 모습이니 말이다. 좌충우돌 가르치는 아이들의 정서에 온전히 물들지 못해 펑펑 쏟아냈던 어제 그 눈물도. 함께 하는 어른들의 가치관을 다 이해하지 못해 혼자 속 끓이는 그 숱한 불면의 밤도 결국은 모두가 철들기 위한 과정이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물론 세상을 오래 살았다고 다 철이 드는 건 아니다. 아직도 세상 단맛 쓴맛의 담금질에 파르르 끓어오르는 나를 보나 같은 감나무의 감도 어떤 감은 스스로 홍시가 되기도 하고 어떤 감은 단단하고 실하게 익은 감이 되는가 하면 끝끝내 쉽게 익기를 거부하고 시퍼런 감빛 감추지 못하는 감도 섞여 있으니 말이다.

늦가을 감잎 떨어지길 기다렸다 따 낸 잘 익은 감 몇 상자. 정성껏 돌려가며 깎은 감은 서늘한 바람에 말려 곶감으로 만들고 나머지 단단한 감은 곳간 항아리에 차곡차곡 쌓아둔다. 어두운 항아리에서 지난여름 뜨거웠던 햇살, 지루한 장마, 그 축축했던 기억까지 모두 불러들여 다시 한 번 철이 드는 감. 그렇게 매년 아버지께서 준비해주시던 한겨울 밤의 홍시는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겨울 간식이 되었었다. 겨우내 곶감 빼먹듯 하나씩 하나씩 꺼내먹던 홍시는 내 어린 시절 추억 같은 맛으로 세월지난 지금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세 여자가 감나무를 몇 번을 붙잡고 흔들어도 떨어지지 않아 결국 맛보지 못한 오늘 교정에서의 그 홍시. 하루 종일 그 홍시가 아른거려 퇴근하는 길에 마트에서 한 박스를 사들고 함박웃음 흘리며 돌아왔다. 베란다에 모셔두고 하나씩 하나씩 빼먹으려 한다.

나도 홍시처럼 세상과 제대로 소통하길 꿈꾸며, 그래서 좀 더 철나길 바라며, 풋 냄새 풀풀 나는 딸아이 잘 익은 홍시 맛으로 익어가길 바라며, 곳간 항아리에서 하나씩 하나씩 빼먹던 그 홍시의 추억까지도 담아서 먹어보려 한다.

▲‘시와사상’ 등단 ▲한국 에세이 작가연대 회원 ▲한국본격수필가협회 회원 ▲평택문협 회원 ▲독서토론논술 문화원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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