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한국 사람들은 법을 잘 안 지킨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일제가 한국을 식민통치하면서 우리 전통사회의 생활바탕을 완전히 파괴하고 일본이 도입한 독일의 법조법(法曹法=사법·司法-체계에 맞추기 위한 국가 법)을 시행함으로써 생긴 혼란과 반항이 그 원인이다. 우리의 전통사회에서는 도덕이나 법의 근원을 자연의 섭리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도리(道理=사람이 면 당연히 지켜야 할 하늘의 이치) 또는 순리(順理)에 거슬리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법(法)이라는 글자도 물 수(水)변에 갈 거(去)자를 써서 법은 물이 흐르듯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하였다. 이렇게 우리의 전통법은 법이라기보다는 도덕률과 일상적인 생활관습을 중심으로 하는 생활원리였다. 따라서 국가의 제도도 육분주의(六分主義), 즉 하늘과 땅 그리고 봄·여름·가을·겨울을 본받아서 이(吏)·호(戶)·례(禮)·병(兵)·형(刑)·공(工)의 여섯 종류로 만들었다. 즉 이조(吏曹)는 하늘을 본받아 임금과 관리들의 일을 관장(管掌)했고, 호조(戶曹)는 땅을 본받아 백성들을 다스리는 일을 관장했으며, 예조(禮曹)는 만물이 소생하여 화합을 이루는 봄을 본받아 예악(禮樂)과 교육 등을 관장했고, 병조(兵曹)는 무성한 여름의 왕성한 기(氣)를 본받도록 병무(兵務) 등을 관장했으며, 형조(刑曹)는 만물이 결실하는 것을 본받아 인간행위의 잘잘못을 판단하는 형옥(刑獄), 즉 형벌과 감옥 등을 관장했고, 공조(工曹)는 각종 건설과 공장(工匠)을 관장하는 관아로, 만물이 꽁꽁 얼어붙는 겨울의 단단함을 본받게 했던 것이다. 이렇게 자연의 원리를 중요시하였기 때문에 우리 전통사회에서는 하늘과 땅 그리고 4계절을 본받아 모든 제도와 생활원리를 정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통사회에서는 인간관 역시 서양의 개성적 인간관과는 달리 ‘관계적(關係的) 인간관’이 형성 발전해 왔다. 관계적 인간관이란, 인간을 비롯해서 세상만물은 무엇이나 하나만으로는 가치를 창조하지 못하고 대칭적인 짝, 즉 사람도 남자나 여자 하나만으로는 가치를 이루지 못하고, 둘이 결합하여 자녀를 생산하여야만 부부(夫婦)와 부자(父子)라는 인륜을 형성하게 되어 인간의 도리를 이루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남·여가 결혼을 해도 자녀를 생산하지 못하면 파혼을 할 수 있게 한 것도 인륜을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간윤리가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이성적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는 사람보다는 덕을 내세워 양쪽 모두를 화합시키는 사람이라야 덕성스러운 사람으로 인정받고 또한 그런 사람이라야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정과 의리가 지배하는 생활양식 속에서는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개인의 행동양식이 존중되는 것이 아니라, 순종과 비호와 희생을 요구하는 생활양식이 보편성을 이루게 된다. 순종(順從)이 선량한 인간성으로 미화되는 사회에서는 윗사람의 의견에 대한 반대나 비판은, 그것이 정당한 것일지라도 통용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전통사회에서는 도덕과 생활관습을 중요시하였음으로 경우에 어긋날 경우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 인간의 도리와 순리를 내 세워 문제를 해결하곤 했다. 그래서 전통사회에서는 나쁜 놈, 못된 놈이라고 주위에서 평판을 받게 되면 그 지역사회에서는 더 이상 살 수 없을 만큼 강력한 규범적 가치로 존중받았다. 그러나 일제가,‘법조 법’을 적용하면서부터는 나쁜 놈, 못된 놈이라는 가치판단을 도덕이나 관습이 하는 것이 아니라, 일제가 만든 국가법이 판단하게 됨으로써 국가법에 위반되지 않는 한, 어떤 행동을 해도 오히려 큰소리치며 잘살 수 있기 때문에 전통적인 의식과 생활방식이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이렇게 도덕과 관습이 무너진 상황에서 법조 법을 강요하는 것은 조선(朝鮮)을 망하게 만들려는 일제의 간악한 술책으로 인식되어, 법을 거부하고 반항하는 것이야말로 조선인으로서의 당연한 권리요 의무처럼 됐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불법둔감증이 남아있는 것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