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게으름을 틈 타 풀이 무성하다. 며칠 여행하고 이런저런 일로 미루다가 한참 만에 밭에 나갔더니 풀들의 천국이다. 이제 막 올라오기 시작한 땅콩이며 옥수수는 뒷전이고 유채꽃이며 명아주 등 덩치 큰 풀들 틈에서 막 발아를 시작한 풀들로 흙이 보이지 않는다.
밭에 들어서긴 했지만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비닐을 깔고 파종을 할 걸 그랬나하는 후회도 했지만 이미 소용없는 일이다. 잡초를 제거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
쪼그려 앉아 풀을 뽑기 시작했다. 적당한 봄비에 풀 밑도 만만찮다. 달팽이며 지렁이 등 벌레들 천국이다. 지렁이가 많은 것은 흙이 건강하다는 증거라고는 하지만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힘도 들고 적당히 꽤가 날쯤 호미자루가 빠졌다. 다시 끼우고 돌로 몇 번 두드려 박았지만 한 번 빠진 자루는 오래가지 않고 자꾸 빠졌다.
아버지 생각이 났다. 헛간에는 자루 빠진 낫과 호미가 서까래에 걸려 있곤 했다. 농경이 시작되기 전 아버지는 단단한 나무를 깎아 자루를 만들었다. 군불을 때고 남은 불에 호미자루를 달궜다. 숨베가 벌겋게 이글거리면 손질한 나무에 끼우고 망치로 박고 철사로 단단히 조였다.
그 연장은 날이 닳아 무뎌지도록 사용해도 손잡이는 튼튼했다. 아버지는 솜씨가 좋으셨고 부지런하셨다.
겨우내 새끼를 꼬아 팔던 아버지는 정월대보름이 지나면 지게를 만들고 쟁기를 손질했다. 우리 집안의 살림밑천이라며 암소를 살뜰히 보살폈고 몇 천 평이나 되는 논을 손수 갈고 써레질을 했다. 소를 빌려주면 사람 두 몫의 인건비를 받았던 것 같다.
길이 잘 든 암소는 ‘워’ 하면 서고 ‘쯧쯧’ 하면서 고삐를 치면 열심히 논을 갈고 밭을 갈았다. 물이 질퍽한 논에 들어가 침을 흘리면서도 우직하게 일했다. 소처럼 일 잘한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지금은 보기 힘든 풍경이지만 아버지는 힘들게 일한 소를 위해 바소고리 가득 꼴을 베어와 소에게 먹이곤 했다. 생각해보면 아득한 일이다. 요즘이야 하루에도 몇 천 평의 논을 갈고 이양기로 모를 심고 병충해 예방도 항공 방제하는 등 농사짓는 일이 수월해졌지만 천수답 농사를 짓는 우리는 물 전쟁이 가장 심했다. 제 때 논에 물만 잡아도 절반의 농사를 지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할 정도였다.
써레질하고 매끈하게 다듬은 논둑에 어머니는 며칠씩 콩을 심었다. 눈치 챈 꿩이 콩을 빼 먹는가 새순이 올라오면 싹둑 잘라먹으면 또 다시 콩을 심곤 했다. 하기야 지금도 씨앗 파종하는 것을 용케 알고 파먹는다.
밭이랑을 내고 뒤적이면 비둘기나 참새가 유난히 많이 몰려드는 것 같다. 나는 우스갯소리로 저놈들 친구들까지 다 불러 모으나보라고 한다. 옛 어른들이 콩을 세 알 심어 하나는 새에게 하나는 하늘에게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내가 먹는다고 했지만 요즘 새들은 파종한 것을 알기만 하면 남겨두지 않는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자루 빠진 호미로 풀을 뽑는다. 손도 아프고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아버지 생각이 더 간절하다. 눈만 뜨면 들로 나가시던 아버지, 어머니를 대신해서 우리는 교대로 밥 당번과 소 풀을 뜯기곤 해서 정말 싫었지만 부지런한 부모님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유년기를 보냈던 것 같다.
무성한 들판처럼 그리움도 오월이면 푸른 날개를 달고 오나보다. 비록 카네이션은 달아드릴 수 없지만 마음으로 약주한 잔 정중히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