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등(弔燈)
/이설야
내가 머뭇거리는 동안
꽃은 시들고
나비는 죽었다
내가 인생의 꽃등 하나 달려고
바삐 길을 가는 동안
사람들은 떠났고
돌아오지 않았다
먼저 사랑한 순서대로
지는 꽃잎
나는 조등을 달까부다
- 이설야 시집 ‘우리는 좀 더 어두워지기로 했네’
‘사랑해, 조금만 기다려 너에게 곧 갈게, 다 왔어, 근데 저 언덕 너머에 내가 바라는 꽃이 있대, 꽃등을 만들어 환하게 들고 갈게, 사랑하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줘.’라는 말은 이제 그만 하기로 하자. 사랑은 지금 이 자리에만 있는 것, 곧장 가지 않고 길을 돌아가면 사랑은 먼저 온 순서대로 상해버리는 것. 그러니 더 이상 사랑 앞에서 머뭇거리거나 바쁜 척하지 말자. 꽃등을 단 후의, 조등을 내건 후의 시든 사랑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사랑은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 이제는 곧장 가자. /김명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