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늦은 여름의 이른 아침에 건초더미 위에 드리운 햇살이 눈부시다. 이른 아침 건초더미 위에서 쪼개지는 그 눈부신 빛으로 말미암아 눈을 질끈 감아 버린고 한다. 평볌하고 흔한 어느 농촌의 풍경이지만, 그것은 찰나를 의미했으며 또한 영원을 의미했다.
모네의 1891년 늦여름 아침의 <건초더미>이다. 먼 산과 하늘을 아늑한 배경을 두고 들판 위에 건초더미가 눈부신 햇살과 영롱한 그림자를 드리우며 서 있다. 건초더미는 에메랄드 블루와 라벤더, 오렌지 빛깔 등으로 거칠게 칠해져 있고, 거칠고 대담한 색깔들의 혼합으로 말미암아 대상에 드리운 빛은 더욱 강렬해지고 있다. 본디 물감이란 탁하고 찐득거리는 물성의 액체이건만, 그러한 물감을 지니고 이처럼 눈부신 빛을 창출해낼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모네의 중요한 업적이기도 하다.
모네는 탁한 속성의 물감을 가지고 유동적이며 찬란한 빛을 표현하기 위해 일생을 연구했던 화가이다. 당시에는 기존의 관념들을 송두리째 흔드는 색채이론들이이 분수령처럼 발표되곤 했는데 이는 화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쳐서, 이제부터 이들은 빛이란 절대로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유동적이고 풍부하다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한다. 모네는 가장 열성적으로, 그리고 집요하게 빛을 연구했던 화가였다. 그러한 목적은 결코 금세 달성되지 않았으며, 과업은 평생에 걸쳐 행해졌다. 화실 안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을 탐탁치 않아했던 모네였고, 빛이 쏟아지는 거리와 야외를 평생 화실로 삼았던 모네였다.
부드러운 촉촉한 호밀과 밀을/ 아침 햇살이 부드럽게 덥히면서 금빛으로 물들인다./ 하늘은 밤의 신선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저 밖을 보기 위해 나간 뒤,/ 희미한 누런 풀들이 자란 강가를 따라/ 오래된 오리나무 숲에 맞닿은 들길을 걷는다./ 공기가 청량하다. 때로 새 한 마리가/ 울타리에서 얻은 열매나 밀집을 부리에 문 채 날아가는데,/ 그 새가 지나간 뒤에도 물에는 그림자가 남아 있다. 베를렌느의 <부드러운 아침 햇살>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베를렌느의 시가 모네의 <건초더미>위로 절로 흐르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단순한 우연에 그치지 않는다. 순간의 이미지를 포착해 회화를 완성하듯이, 그리고 음악을 쓰듯이, 시를 쓰길 원했던 시인들에게 모네의 작품들은 많은 영감을 주었다. 모네가 여러 갈래로 쪼개지며 정신없이 쏘다니는 빛들을 집요하게 좇았던 것처럼 이들도 강렬한 회화적 이미지를 구사하기 위하여 언어를 그와 같이 대우했다. 시인들은 인상파 화가들이 자신들에 주는 강렬한 영향을 공공연하게 말하곤 했다. 특히 시인 말라르메와 베를렌느는 파리에서 활동하고 있던 모네, 마네, 세잔과 같은 여러 화가들과 친분을 쌓고 있었는데, 말라르메는 모네가 그린 강의 풍경을 보고 ‘나는 지금껏 단 한 번도 그가 그린 공기처럼 가벼우며 움직이기 쉬운 공기를 본 적이 없다’고 찬탄을 보냈다고 한다.
프랑스 지베르니에 머물고 있던 모네는 그즈음 20점에 가까운 <건초더미> 작품들을 발표했다. 오늘 소개한 건초더미는 늦은 여름 아침을 그린 것이고, 그밖에도 모네는 가을날 저녁, 눈 쌓인 겨울 등 여러 시점을 캔버스에 다양하게 펼쳤다. 모네의 명성이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그의 건초더미 작품들도 각지에 좋은 값에 팔려나갔다. 그간 구사해왔던 화풍이 큰 인정을 받기 시작했으니, 그는 좀 더 대담하게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화폭에 담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이때부터 한 자리에 고정해서 같은 대상을 반복해 그리는 작업을 즐겨하게 되는데, 풍성하고 다양한 빛의 향연이 본격적으로 펼쳐지기 시작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시와 음악과 과학이 모네의 건초더미 위에서 조화를 이룬다.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평범한 농촌 풍경은 찰나의 강렬한 빛과 시간의 영원성을 담은 불후의 명작이 되었다. 말 그대로 한편의 시와 같은 작품이다. 모네의 작품은 미술사에서 일종의 정점과도 같아서, 이후 관객들은 풍경화를 접할 때마다 모네가 주는 감흥과 비슷하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게 되었다. 후배 작가들에게는 잔인한 굴레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