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
/정우신
단칸방에 생일상을 차려 두고 사람들과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잿빛 창문을 바라보며 좁아지는 바깥에 대해 생각했다 외부가 내게 닿기도 전에 넘쳐흐르는 것이 많았다 파란 페인트를 뒤집어 쓴 고독이 새벽 네 시를 남겨 두고 떠난다
고아가 아닌데도 고아처럼 세상에 나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사람살이의 방식에 대한 이해와 해석에 있어서 타인들의 일반적인 생각과 나의 생각이 현격한 차이를 보일 때에는, 창 바깥이 급격히 좁아지듯이, 내 자리는 외따로 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도 된다. 세계를 바라보는 내 고유의 시각이 타인들에게 거부당할 때에는, 그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도 전에 감당해야 할 것들이 넘쳐흐르듯 많아서, 파란 페인트를 뒤집어 쓴 것처럼 몸과 마음이 뻑뻑해지기도 한다. 그럴 때 내 곁에 남아 있는 건 고독뿐. 그런데 유일하게 내 곁에 남아있던 고독마저 새벽 네 시에 떠나버리고 만다. 고독조차 사라진 고아의식은 처절하면서도 담대한 강인함을 느끼게 한다. /김명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