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얼음
/나희덕
사흘 내내 폭설이 내리고
나뭇가지처럼 허공 속으로 뻗어가던 슬픔이
모든 걸 내려놓는 순간
고드름이 떨어져 나갔다
내 몸에서
시위를 떠난 투명한 화살은
아파트 20층에서 지상으로 곤두박질쳤다
이제 사람들은 내 슬픔과 치욕을 알게 되리라
깨진 얼음 조각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밟으며
지나가리라
얼음 조각과 얼음 조각이 부딪칠 때마다
얼음 조각이 태어나고
부드러운 눈은 먼지와 뒤엉켜 눈멀어 가리라
외적인 어떤 조건에도 구애받지 않고 내적인 자유를 누릴 수 있을 때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음을 “눈과 얼음”이 말해준다. 그런데 자유가 쓸쓸하다. 참 슬프다.‘허공’속의 슬픈 ‘나뭇가지’가 이고 있었을 눈의 무게, 그 삶의 무게가 고드름이 되기까지 견뎌야 했던 투명한 아픔을 알 것 같다. 시의 자리, 시의 조각들이 다시 부드러운 눈이 되어 내릴 때 쯤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갈 고드름을 상상해 본다. /권오영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