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5 (수)

  • 흐림동두천 14.8℃
  • 맑음강릉 22.2℃
  • 맑음서울 17.6℃
  • 맑음대전 17.8℃
  • 맑음대구 21.3℃
  • 맑음울산 21.5℃
  • 맑음광주 17.6℃
  • 맑음부산 20.9℃
  • 맑음고창 17.7℃
  • 맑음제주 21.5℃
  • 흐림강화 15.9℃
  • 맑음보은 16.5℃
  • 맑음금산 17.3℃
  • 맑음강진군 18.5℃
  • 맑음경주시 22.2℃
  • 맑음거제 19.6℃
기상청 제공

[생활에세이]황금 들녘의 소 울음소리

 

서울의 점잖은 수필문예지에서 원고 청탁이 왔다. 전에 써 둔 수필을 다듬어 완성해놓고 청탁서를 다시 읽어보았다. 작품 아래 기재하는 약력에는 ‘출생지, 등단, 약력, 수상 경력, 메일’ 등을 쓰라고 했다. 그런데 맨 끝에 ‘근황’을 두 줄 정도 짧게 쓰라는 것이었다. 원고보다 이 청탁이 더 머리 무거웠다. ‘구례에서는 물난리로 소들이 절집(山寺)으로 피난을 떠나기도 했다. 나는 코로나19로 독방에 갇혀 생명의 뿌리를 고민하며 ‘한국인의 웃음문화’를 공부하고 있다’라고 써 보냈다.

 

산길을 걸었다. 산은 몸살을 앓고 숲은 수척해졌다. 태풍이 지나간 길에는 바람의 흔적으로 어지러웠다. 나뭇가지가 부러져 있고 때아닌 푸른 나뭇잎들이 떨어져 있었다. 세상살이나 자연 생명이나 호시절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어찌하여 한 달 만에 네 번의 태풍이 한반도를 강타하는 것인가. 폭우로 집이 물에 잠기니 소들이 지붕 위로 올라가 있고 절간으로 대피했다. 사람들이 실종되고 길은 끊기고… 그 상처가 가시기도 전에 그 위에 소금 뿌리듯 장마에 태풍이라니.

 

코로나는 사람들을 수개월 동안 두려움 속에서 몸과 마음을 지치게 했다. 그런데 지금도 ‘거리 두기와 마스크와 손 소독’에 의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바이러스에 오염된 일부 교인들 행태와 앞뒤 분간 못하고 설쳐댄 목사도 있었으니 그는 ‘이웃을 사랑하라’ 라는 목사인지, 어떤 정치적 근간을 숨긴 두 얼굴의 천박한 인물인지 모를 일이다. 한편 공부 잘해 국민들이 선호하는 대학을 나와 생명을 돌보는 의사들 문제도 컸다. 그들은 죽어가는 환자를 팽개치고 상징적인 가운을 벗어 한 곳에 쌓아가며 보란 듯 데모 대열을 짓고 불만을 토하고 있었다.

 

교역자로서의 목사(牧師)와 면허를 받아 병을 고치는 의사(醫師)는 같은 스승 사(師) 자를 쓴다. 개인의 이해관계에 함부로 영혼을 팔거나 눈먼 짓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 있는 귀한 글자이다. ‘이름 값’ 소중히 생각하는 인간이 되기 위한 바탕 교육으로서의 소양(素養) 교육의 절대적인 필요성과 그 부족함을 의사인 자신들이 노출하는 추태였다. 어느 시절이나 가난한 농민과 노인들, 자본 부족으로 남 눈치 보며 살아가는 사람들 피해가 가장 컸다. 농사를 망치고 사과나무 아래에서 울고 있는 젊은 농부를 우리는 어떻게 위로해야 할 것인가!

 

올해 추석은 자기 위치에서 ‘꼼짝 마’일 것 같다. 마음 같아서는 오늘이라도 코로나19의 공포에서 벗어나 걱정 없이 오가고 만나고 악수하며 껴안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서울에서 온 아들과 손자 앞세우고 김제 만경 황금 들녘을 걷고 싶다.

 

조정래의 ‘아리랑 문학관’도 들러보고 황금 들녘 농가의 황소 울음소리도 들으며 ‘넓은 벌 동쪽 끝으로 / 옛이야기 지줄 대는 /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 얼룩빼기 황소가 해 설피 금빛 /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라는 정지용의 ‘향수’를 낮은 톤으로 읊조려 보고 싶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