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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한 특별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와 박물관

 

서울에서 자유로를 타고 가면 편도 왕복 8차선의 넓은 도로 위에 적힌 생소한 이정표가 보인다. 직진 화살표와 함께 적힌 지명은 ‘개성’이다. 그 화살표를 따라 개성공단으로 매일 아침 출근을 하는 남쪽 사람들을 태우고 달리던 통근버스는 이제 임진강을 건너지 못한다.

 

개성으로 가는 길이 막힌 자유로의 마지막 마을이 마정리다. 남에서 북으로 가는 끝 마을이고, 북에서 남으로 오는 첫 마을인 마정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치는 것이 육중한 콘크리트로 축조한 대전차 방호벽이다.

 

성문처럼 버티고 선 대전차 방호벽을 통과하면 지하 주민대피소가 있다. 지난 17일 이 주민대피소 입구에 새로운 간판이 내걸렸다. ‘마정리 마을박물관 평화충전소’다.

 

남북대치가 첨예해지면서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치닫던 2015년 ‘뭔가’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정부가 만든 대피소는 단 한 번도 쓸 일이 없었다. 5년 넘게 비어 있던 주민대피소를 단장해서 문을 연 마을 박물관의 첫 전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과 손’이다.

 

마을의 제일 연장자인 홍갑이 할머니(97세)와 정정순 할머니(94세)를 비롯한 스물아홉 분의 손 석고상은 마정리 사람들의 고단했던 삶을 보여준다. 더러 지워지고 끊긴 자리가 선명한 지문에는 전쟁을 ‘겪고’ 평화를 ‘견딘’ 이들의 삶이 배어 있다. 박물관이 된 지하대피소의 안쪽 벽에서는 마정리 사람들과 함께 살아온 저어새, 물까치, 재두루미, 백로, 독수리도 다큐 영상을 통해 방문객을 맞이한다. 통로에는 마정리로 이주해온 미술가들의 그림이 마을 풍경의 깊이를 더해준다.

 

강민정 가수가 만든 노래 ‘마정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마정리 마을 박물관은 작지만, 규모가 작다고 해서 그 의미가 작은 것은 아니다. 한국전쟁을 가장 먼저 겪고, 가장 마지막까지 감당했던 사람들만이 지닌 생생한 기억과 지혜를 간직한 살아있는 박물관은 오직 마정리에만 있다.

 

마정리의 마을 밖 강가에 세워진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 매일 수많은 관광객이 ‘분단 현장’ 관광을 하고 돌아간다. 대전차 방호벽 안에 감추어진 마을로 들어오지 않고서는 ‘전쟁’과 ‘정전’의 진정한 실체를 알지 못한다. 진실은 언제나 평범한 사람들의 조용한 일상 속에 감추어져 있다.

 

전시관에 비치된 ‘마정리 사람들’이라는 책의 구술자인 박덕연(75세)씨와 박창영(71세)씨, 두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전쟁이 터지면 이짝 저짝 다 죽는 건데 대피소가 뭔 소용이야.”

“저짝을 어떻게든 잘 달래서 전쟁이 안 나게 해야지.”

 

전쟁의 시간도 격렬했지만, 평화의 시간도 격렬했던 마정리 사람들보다 전쟁과 평화를 치열하게 살아낸 사람들은 없다. 박제된 박물관이 아닌 인간의 기억을 기억하는 살아있는 박물관을 만든 마정리 주민들과 경기문화재단의 에코 뮤지엄 사업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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