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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을 만세운동으로 물들인 독립운동가, 기생 김향화

‘향기로운 꽃’이라 불린 수원 권번의 대표 기생 김향화
1919년 3월 29일 자혜의원 앞서 만세시위 벌여
2009년 대통령표창 이어 수원시 명예의 전당 헌액

 

본명 김순이. 향기로운 꽃 향화(香花)란 기명을 지닌 수원 권번을 대표하는 기생으로, 1919년 3월 29일 만세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체포됐다.

 

1897년 한성부(현 서울특별시)에서 아버지 김인영, 어머니 홍금봉의 딸로 태어난 김순이는 어린 나이에 수원군 북수리 48번지에 사는 나이 많은 정도성과 결혼해 호랑이 같은 시어머니를 봉양하고, 자신보다 나이 많은 딸을 보살피며 시집살이를 한다.

 

1914년 아버지 김인영의 사망 전보를 받고 급히 서울로 향했던 김순이는 생계가 막막해진 가족들과 남수리 202번지로 이주해왔고, 남편과 갈등을 겪으며 결국 18살 나이에 이혼하고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수원 권번의 기생이 된다.

 

말할 수 없는 꽃이라 하여 ‘해어화’라고 불리던 기생은 조선의 신분제 안에서 천민에 속했다. 일제강점기 이후부터는 권번에 속해야 기생이 될 수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기생의 교육뿐 아니라 기생들이 요정에 나가는 것을 지휘·감독했다.

 

권번 입학은 8살부터 20살 여성으로 제한됐고, 시문(詩文)과 음곡(音曲), 습자(習字), 가무(歌舞), 예의(禮儀), 시조를 교육 받고 졸업시험에 통과해야만 기예증을 받아 기생활동을 할 수 있었다.

 

수원예기조합의 중심인물이 된 김향화는 검무와 승무, 양금 연주가 가능했다.

 

 

고종황제가 승하하자 김향화는 수원 기생들을 이끌고 대한문 앞에서 소복차림으로 망곡례를 했다. 이후 3·1만세 운동이 시작되자 김향화를 비롯한 기생 33명은 1919년 3월 29일,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자혜의원으로 가던 중 독립만세운동을 벌였다. 당시 화성행궁의 봉수당이 자혜의원으로 사용됐다.

 

‘삼일운동비사’를 살펴보면 수원기생조합 기생들이 자혜의원과 경찰서 앞에서 만세시위를 벌였다는 관련 사실이 기록돼 있다.

 

만세운동 주동자로 체포된 김향화는 2개월 간 고문을 받다 경성지방법원 수원지청으로 넘겨져 공판에 회부된 뒤 같은해 5월 27일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19년 10월 27일 가출옥돼 수원으로 돌아온 후 그의 삶에 대해 알려진 바는 없다. 이후 서울에서 지내다 1950년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정부는 2009년 김향화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수원시도 2018년 지역의 명예를 드높이고 공적으로 귀감이 되는 독립운동가 김향화를 수원시 명예의 전당에 헌액했다. 명예의 전당에는 그의 사진 및 간략한 생애와 경력, 업적 등이 새겨진 동판이 자리한다.

 

3·1운동이 가장 격렬했던 경기도 중에서도 대표적인 성지인 수원에서 수원예기조합 기생 30여 명은 그렇게 김향화의 주도 하에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만세운동을 벌인 것이다.

 

[ 경기신문 = 신연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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