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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2월의 의미

 

 

 

나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어느 해 설날 아버지는 내 손목을 잡고 고샅길을 걸으시면서 ‘설’은 ‘서러워서 설’이라고 했단다. 라고 들려주셨다. 묻지도 않았는데 들려주신 것이다. 한국인으로서 산촌에서 순박하게 살아가며 속상한 일 많을 것이니 미리 짐작하고 서럽더라도 참고 살아가라는 말씀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 아버지의 이 말씀을 지금껏 기억하고 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기억의 저장고 저변에 깔린 이 말씀이 내 삶의 중심으로 가끔 떠오를 때가 있다.

 

그 후 60년이 훨씬 지난 지금 사회에서는 배고파 죽는 사람은 거의 없다. 먹을 게 없고 입을 것 없어 서럽고 슬픈 세상은 아니다. 대신 어떤 죄 닦음인지는 모르나 ‘코로나’라는 역병으로 인하여, 여럿이 술·밥 먹지 말 것이요, 뭉쳐 다니지도 말고 집안에서 자중하며 고독하게 지내보란다. 질병관리본부에서 하는 말이 곧 코로나가 타이르는 말을 대신하는 듯.

 

이 집이나 저 집이나 TV 시청 시간이 늘었다. 안방에서나 거실에서나 TV에서는 ‘트로트 세상’이다. 장사 안되고 사업망치고 사람도 만나지 말라니 속 풀이나 하라는 듯 10여 개 방송사에서는 눈만 뜨면 궁짝 궁짝 네 박자 속에 세상 걱정할 것 없다는 식이다. 새파랗게 젊은 가수와 아직 초등학교에서 인간의 기본교육과 질서를 배워야 할 어린 녀석이 마이크를 입에 대고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고 악을 쓴다. 그런가 하면 편을 나눠 억대 상금을 걸어놓고 전국 시청자들 앞에서 트로트경연인지 몸부림인지 생판 난리다. 코로나로 난리인지 트로트 공화국이 되어 시끄러운지 마음 어지럽다. 하긴 일부 교회에서는 성스러울 ‘성(聖)’자를 버린 지 오래다. 방역 당국에서는 전 국민 건강을 위해 지킬 것 지켜달라고 호소를 해도 외면하고 딴 길로 가는 신자와 집단도 있다.

 

지금은 한물 간 가수들이 나이 든 얼굴로 젊은 청년들에게 트로트 게임을 붙여놓고 자기가 불렀던 노래가 세계적 명곡인 양 심사석에 앉아 제법 근엄하다. 어느 채널을 돌려보아도 원로 교수나 철학자나 사회학자나 기후 위기로 인한 멸종을 고민하는 분의 말씀은 들어볼 길이 없다. 대신 ‘트로트 전국체전’ ‘트로트의 민족 쇼’ ‘미스터 트롯의 0’ 같은 열풍만 TV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서러움과 슬픔에는 희망이 있지만, 즉흥적이고 향락적이며 마취적인 것에는 ‘될 대로 되라’는 자학이 따를 뿐 희망은 없다.

 

2월은 다른 달에 비해 3일이 부족하다. 28일뿐이다. 그래도 2월은 침묵하고 있다. ‘보릿고개’를 하루라도 빨리 넘기고 새봄을 맞으라는 것일까

 

2월은 성인군자 같은 달이다. 자신은 배고파하면서도 남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자기 살 깎아 베풀고 민족을 위해 희생하는 정신이 있다. 제 몫을 덜어서 남에게 보태주는 달이 2월이다. 하루는 3월로 넘겨 3·1 운동의 날로 쓰게 하고, 또 하루는 8·15 광복절로 이용하게 한다. 다시 하루는 한글날이 있는 달로 양보한 것 같다. 2월은 그냥 2월이 아니다. 2월이 가기 전 겸손하게 2월의 의미를 생각해보며 지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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