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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피해자가 말해준 범인 이름 놓쳐…목숨도 놓쳤다

경기남부경찰청, '광명 지인 살인사건' 중간조사 발표
112 신고 접수 요원, 피해자가 말해준 피의자 이름 놓쳐…38분 지나서야 재확인
경찰, 50분만에야 현장 도착…범인은 검거했지만, 피해자 죽음 못 막아
유족 "경찰 처벌·제도 개편 요구"…국민청원 3천명 넘어

 

경찰이 “흉기로 위협받고 있다”는 112 신고 접수 과정에서 피해자가 언급한 피의자의 이름 등을 놓쳐 범인 검거가 지연되는 일이 발생했다. 경찰이 뒤늦게 도착했을 때는 이미 신고자가 숨진 뒤였다.

 

경찰은 현재 당시 신고와 관련해 수사를 벌인 직원들을 대상으로 감찰을 진행 중이다.

 

경기남부경찰청이 24일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112신고 접수 요원은 지난 17일 0시 49분에 “흉기로 위협받고 있다"는 신고를 받았다.

 

접수 요원은 신고자의 위치를 물었고, 신고자는 “모르겠다. 광명인데 ○○○의 집이다”라고 답했다.

 

○○○는 신고자인 A(40대·여) 씨와 평소 알고 지내던 B(50대·남)씨의 이름이다.

 

접수 요원은 42초간 신고 내용을 파악한 뒤, 위급한 상황이라고 판단해 ‘코드 제로’(납치와 감금, 살인, 강도 등이 의심될 경우 발령되는 경찰 업무 매뉴얼 중 위급사항 최고 단계)를 발령했다. 동시에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시작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접수 요원이 A씨가 언급한 B씨의 이름을 놓쳐버린 것이다.

 

코드 제로가 발령되자 지령 요원은 접수 요원으로부터 보고 받은 상황을 광명경찰서에 전파했는데 이 과정에서도 당연히 B씨의 이름이 누락됐다.

 

심지어 A씨 휴대전화의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이 꺼져있어 오차범위 반경이 큰 기지국과 와이파이 값만을 이용해 얻은 위치만 파악된 상태였다. 당시 이 곳에는 660여 가구가 있었다.

 

상황을 전달받은 광명경찰서 경찰관 21명은 신고 접수 5분 만인 0시 54분에 현장에 도착해 44가구에 대해 수색을 진행했지만, 결국 현장을 찾는 데 실패했다. 동시에 진행된 CCTV 수사에서도 그렇다 할 단서를 찾지 못했다.

 

이후 경찰은 0시 59분에 A씨 신상정보 등을 확인하기 위해 휴대전화번호에 대한 통신수사를 요청했다. 그로부터 10분 뒤인 오전 1시 9분에 A씨의 주소지를 확인했고, 오전 1시 20분쯤 A씨 집으로 가 딸에게 A씨의 소재를 물었다.

 

그러나 딸은 “엄마가 어디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진술했다. 이에 경찰은 딸로부터 A씨의 인상착의를 파악한 후 다시 수사에 나섰다.

 

그럼에도 현장 확인이 되지 않자 광명경찰서는 오전 1시 27분쯤 접수 요원이 받은 신고 전화 녹취를 다시 확인하자고 요청했다. 바로 그 때, 신고 접수 과정에서 B씨의 이름이 누락된 사실을 알아챘다.

 

경찰은 곧바로 특정조회를 통해 B씨 주소지를 확인한 뒤 A씨 딸에게 전화를 걸어 “B씨를 알고 있냐”고 물었다.  A씨 딸은 B씨에 대해 알고 있다고 답했고, 그의 주소지를 경찰에게 알렸다.

 

경찰은 A씨 딸이 알려준 주소지와 특정조회로 확보한 주소지가 일치함을 확인하고, 곧바로 현장으로 출동했다. 그렇게 신고가 접수된 지 50여 분 후인 오전 1시 42분쯤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지만, A씨는 이미 B씨에 의해 목숨을 잃은 상태였다.

 

현장에서 자포자기한 상태로 앉아있던 B씨는 곧바로 현행범 체포됐다. B씨는 현재 범행을 인정한 상태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당시 B씨는 A씨에게 “다른 남자를 만나지 말라”고 요구했고, A씨가 거부 의사를 밝히자 다퉜던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던 중 B씨는 자신이 담배를 피우러 나간 사이 경찰에 신고한 A씨가 다른 남자에게 전화한 것으로 착각하고, 격분해 A씨를 둔기와 흉기를 마구 휘둘러 살해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A씨 시신 상태와 B씨 진술 등을 토대로 A씨가 신고 전화를 한 직후 사망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경찰관들이 현장에 신속하게 도착했을 경우, A씨가 생존했을 가능성도 있는 만큼 감찰을 철저히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신고 당시 녹취를 다시 들어보니 (피의자의 이름을) 들으려면 들을 수도 있을 정도로 들렸다”며 “급하게 상황을 전파하려다가 벌어진 일로 보인다. 접수 및 지령단계부터 현장 초동조치까지 전반적으로 감찰을 진행해 잘못이 드러난 경찰관들에 대해서는 엄중히 문책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피해자의 유가족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사건 현장에 늦게 도착해 저희 부모님을 돌아가시게 만든 경찰관에 대한 엄중한 처벌과 제도의 개편을 요구합니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24일 오후 2시 8분 기준 3171명이 동의한 상태다.

 

[ 경기신문 = 김기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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