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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자산어보, 불길한 시대를 예고하다

⑨ 자산어보 - 이준익

 

놀랍게도, 영화는 종종, 시대의 변화를 예측한다. 세상에 대한 예지 능력을 선보인다. 그리고 구약의 선지자들처럼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려고 광야를 떠돈다.

 

이준익 감독의 신작 ‘자산어보’는 한국사회가 다시 개혁의 시대에서 수구 반동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음을 점친다. 영화감독들은 시대를 따지기 위해 흔히 과거로 날아가곤 하는데 이준익의 타임머신이 이번에 착지한 곳은 순조 1년, 곧 1801년이다.

 

정순대비(영조의 계비. 조선시대 중기는 영조-사도세자-정조-순조로 이어진다)가 어린 순조를 섭정했던 이때에는 선대(先代)인 정조가 이뤄 놨던 수많은 개화(開化)의 전조(前兆)들이 짓밟히던 때였다. 왕권을 뒤에서 쥐고 조종하던 정순대비의 세력들, 곧 노론들은 자신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일종의 쇄국(鎖國)을 내세운다. 곧 서학(西學)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통제하는 태도를 취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천주교는 사학(邪學)이라 주장하는데 조선 이데올로기의 근간을 이뤘던 주자학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대대적인 탄압이 진행됐고 그 과정에서 수백명의 사람들이 투옥되고 참수된다. 닭띠 해인 신유년에 벌어진 일이라 해서 이른바 신유박해(辛酉迫害)라 부르는 참사다. 이후 조선은 어둠의 시대로 다시 돌입한다.

 

이준익은 이때의 핵심 인물로 정씨 일가 삼형제를 주목한다. 정약전-정약종-정약용이다. 이들은 모두 정조의 총애를 받았던 인물들로 실사(實事)야말로 구시(求是), 곧 진리를 찾는데 있어 중요한 방법론임을 주창했던 인물들이다. 실사, 즉 사실에 바탕을 두는 학문을 찾는 길은 당연히 서학으로 연결된다. 이들 삼형제 모두 외국 문물을 일찍 받아들이려 했던 것, 곧이어 천주교로 개종하려 했던 것은 실사구시를 최고의 덕목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개화의 사상을 지향했으며 개혁 군주 정조의 눈에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정조는 그 중에서도 맏형인 정약전을 가장 많이 총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조는 정약전에게 신신당부하기를 ‘너의 서학이 지나치게 다른 신하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했다. 조선시대에서 가장 똑똑하고 뛰어난 왕이었던 정조가 어렴풋이 반동의 기운이 만만치 않음을 우려했던 것이다. 시대는 그의 예측대로 갔다.

 

‘자산어보’의 시작은 신유박해의 과정부터이다. 정씨 형제는 가혹한 고문을 받았고 이 중 천주교에 대한 배교(背敎)를 끝까지 거부했던 정약종은 지금의 절두산에서 목이 잘린다. 노론들은 남인의 핵심 인물이었던 정약전의 목을 원했지만 정작 정약전은 스스로 배교를 선택하고 막내인 정약용까지 살린다. 이들은 각각 조선시대에서 가장 외진 땅이라는 흑산도와 강진으로 유배의 길을 떠난다.

 

‘자산어보’는 자산, 곧 흑산도에서의 귀향 생활을 하며 어민 백성들에게서 새로운 힘을 발견하는 정약전(설경구)의 일상을 담아내는 데 주력한다. 백성은 무지몽매하다. 사서삼경은 커녕 학문의 발끝도 경험하지 못한 인간들이다. 그러나 섬 안에는 글을 탐독하는 청년 창대(변요한)가 있고 정약전은 그를 유의깊게 관찰하기 시작한다. 무릇 지식이 지식에만 머물지 않고 더 큰 세계관으로 이어지기까지에는 큰 계기가 필요한 법이다. 무지한 자에게는 학문적 스승이 필요하지만 그 스승도 무지한 사람의 일상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스승과 제자는 그렇게 주고 받는다. 인간관계의 변증법이다.

 

자신에게 되바라지게 구는 것을 두고 ‘이 상놈의 새끼가’라며 같이 성깔을 부리던 정약전은 창대에게서 엄청난 깨달음을 얻는다. 창대가 중얼거리듯 말한 대목때문이다. “홍어가 가는 길은 홍어가 알고 가오리가 가는 길은 가오리가 알지라.” 홍어의 길과 가오리의 길. 선문답이듯 선문답이 아니듯 하는 이 논법은, 이후 정약전으로부터 대학(大學)과 중용(中庸)까지를 사사받고 학문을 섭렵한 창대에게 새로운 깨달음으로 다가간다.

 

목민심서의 길이냐, 자산어보의 길이냐. 양반이라면 여전히 목민의 길, 곧 백성과 민중을 가르치고 이끌어 나가는 지도자의 길(정치의 길)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자산(흑산도)에 머물며 물고기 학문을 연구하는 실질적인 학문에 전념할 것인가, 그렇게 백성들과 함께 하는 길을 택할 것인가 라는 얘기인 셈이다. 전자는 정약용의 길이고 후자는 정약전의 길이다. 지식이 쌓여 갈수록 고민은 깊어만 가는 법이다. 창대는 처음엔 목민심서의 길을 가려고 한다. 그러나 썩을 대로 썩은 세상을 목도한 그는 스승 정약전의 길이 결국 옳았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이준익의 영화는 이 두 가지의 핵심 대구(對句), 곧 ‘홍어/가오리’ 얘기에서 ‘목민심서/자산어보’의 갈등 아닌 갈등의 구조로 서사를 구성하고 이끌어 나간다. 그 이야기의 전개 과정이 실로 감동적이다. 영화가 흔히 빠지기 쉬운 신파와 교육의 분위기가 별로 없다. 이준익의 생각은 뾰족하다. 동시에 따뜻하다. 세상은 늘 지식인의 잘못되고 오도된 세계관이 망쳐 왔으며 그건 ‘백성=국민=인민’ 안에서 자신의 정치적 모토를 찾지 않아서였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자산어보’는 그렇게, 이준익 스스로, 정약용보다 정약전의 삶을 선택하겠다고 고백하는 영화다. 그런 그의 정치사상적 커밍아웃이 느껴진다. 그가 앞으로 나로드니키로(인민주의자)서의 삶을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금의 한국사회는 새로운 브 나로드(인민 속으로) 운동이 전개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한다.

 

한국의 지식인 사회는, ‘1801년 조선의 성리학이 썩었듯이=그렇게 그 숭고한 이론이 지배층의 기득권 유지에만 쓰였듯이=그래서 신문물인 서학과 성리학을 금기시했듯이=고착화되고 부패한 보수 이데올로기에 여전히 휘둘리고 있다’고 이준익은 생각한다. ‘그때의 알량한 성리학자=지금의 지식인들’이 사회와 세상을 망치고 있다고 생각하며 과거의 정약전처럼 스스로들이 지식의 귀양과 유배를 떠나야 할 때라는 것이다. 흑산도처럼 외진 곳,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곳으로의 침잠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준익은 ‘동주’와 ‘박열’에 이어 이번 ‘자산어보’도 컬러가 아닌 흑백의 질감으로 선보인다. 흑백 스크린은 단순히 지나간 버린 영화 시대를 회고하고 향수해 내는 것을 넘어서 현실 이상의 현실감을 부여해 낸다. 시대의 불운을 암시해 내는데 흑백의 명암을 대비시키는 것만큼 정확한 것도 없다.

 

흑산도의 풍경을 보여 주고 백성의 삶을 그려 내는 이야기인 만큼 풀 쇼트의 풍광이 자주 나온다. 그럼으로써 인간은 세상의 먼지 같은 존재이며 지식인은 그 자연과 백성의 품 안에 있는 한 점 같은 존재임을 보여주려 한다. 의도적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풀 쇼트의 장면들은 꽤나 예술적이다.

 

세상에 대한 이준익의 완숙한 사상이 흑산도의 세찬 바람처럼 전편에 몰아치는 영화다. 이준익은 이번 ‘자산어보’ 를 통해 자신이 시네아스트로서의 정점에 올랐음을 입증해 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준익의 ‘자산어보’는 매우 불길한 작품이다. 개혁군주 정조의 죽음과 수구화된 순조 시대처럼 지금의 시대가 그 당시와 같이 보수반동의 시대로 회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목민의 길을 갈 것인가. 자산(玆山)에 머물 것인가. 홍어의 길과 가오리의 길은 홍어와 가오리가 알 것이라는 말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자산어보’는 시대에 대한 질문을 잔뜩 던지고 있는 작품이다. 영화 안에 그 답이 있다. 당신이 그 답을 찾아내면 세상을 구할 수 있다. 영화 ‘자산어보’의 유의미성이 크나 큰 이유이다. 이준익은 이 영화로 시대의 사표 (士標)가 됐다. 그런 얘기를 들을 자격이 있다.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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