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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가장 참된 추모는 뜻을 잇는 것

- 백기완 선생 49재에 부쳐

 

 

 

온갖 꽃들이 흐드러진 어제 4월 6일은 백기완 선생의 새긴 돌(묘비) 세우는 날이자 49재였다. 가림천을 벗기자 ‘백기완 묻엄’이란 글이 드러났다. 뒷면에는 선생의 시, '묏비나리'의 한 구절인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를 새겼다. 유홍준 교수의 설명대로, 선생의 삶과 민중미학에 따라 전체 묘역을 소박하면서 기품 있게, 무덤은 우리나라 뫼의 선을 따라 둥그렇게, 어머니처럼 낮게 모든 것들을 품는 형상으로 조성하였다.

 

불교가 아니라 우리 문화로서 49재인 민중 비나리를 지냈다. 명진 스님과 필자가 선생의 넋을 모시고 업을 씻고 왕생을 발원하고 배웅하는 비나리를 하였다. 임진택 명창의 선창으로 모두가 새로운 판을 여는 소리인 ‘불림’으로 “질라라비, 훨, 훨!”이라 외쳤다. 질라라비는 길들어져 묶였던 닭이 이를 끊고 날개 짓을 하는 것이니, 산 자든 죽은 자든 억압에서 벗어나 해방을 이룩하자는 다짐이다. 정태춘 가수가 클라리넷으로 연주하는 '봄날은 간다'의 애잔한 가락이 무덤을 훑고 지나갔다. 러시아 농민 혁명가인 '스텐카라친'의 선율을 따라 김수억 동지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백발의 젊은 불쌈꾼(혁명가)’의 유택 위로 꽃을 뿌렸다. 산화가를 부른 신라인처럼, 신경림 시인의 '월악산의 살구꽃'처럼.

 

그리 선생은 가셨다. 한 시대가 갔다. 유명을 달리하신 지 벌써 쉰 날, 그리움은 새록새록 솟아나 가슴에 사무친다. 가진 자들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히던 그 목소리, 모든 것을 부술 듯한 그 주먹질, 어떤 단단함도 녹여내는 환환 웃음이 사라진 그 빈자리는 날이 갈수록 커진다. 원래 49재란 죽은 넋이 이승과 저승 사이에 있는 중유(中有)란 곳에서 떠도는 동안 부처님께 망자의 선업을 고하여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의식이다. 원효는 설령 깨달아 부처가 되었더라도 단 한 명이라도 고통 받는 중생이 있는 한 아직 부처가 아니며 그 중생을 구제하는 그 순간에 비로소 부처가 된다고 하였다. 그처럼, “죽어서도 고통 받는 노동자 곁에 있겠다는데 무슨 새긴 돌을 세우고 무슨 재를 치르느냐?”라고 불호령을 치실 듯하다.

 

그럼에도 우린 선생을 보냈다. 이제 그건 우리의 산자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4대강 반대 운동에서 희망버스, 촛불항쟁에 이르기까지 바로 곁에서 모신 덕에 강인함 뒤에 어려 있는 선생님의 그 지극한 고독과 고통을 살짝 엿보았다. 당신의 몸은 전혀 돌보지 않으면서 니나(민중)들만 바라며 가장 앞장서서 한 발을 떼선 남다른 괴로움과 외로움을 겪으신 것을 잘 알기에, 이제 이승의 인연일랑 모두 여의시고 저승에서나마 안락하시기를 빈다.

 

가장 참된 추모는 가신 이의 뜻을 잇는 것이다. 한 살매(인생) 내내 추호도 흔들림 없으셨던 선생의 뜻은 두 가지다. 하나는 썩어문드러진 자본주의를 쳐부수고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되 올바르게 잘사는 노나메기 벗나래(세상)를 세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을 니나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그 편에 서서 연대하는 것이다. 지금 인류가 맞은 불평등의 극대화, 기후위기, 생명과 환경의 위기,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노동의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자본주의를 해체하고 노나메기와 같은 대안의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정녕 수많은 ‘백기완’이 필요한 이유다. 꽃이 지고 나네(새싹)들이 예서제서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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