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최광범의 미디어 비평] 취재원을 객관의 포장재로 쓰지말자

 

언론이 객관적일 수 있을까? 사실상 불가능하다. 공정성과 균형성도 마찬가지다. 관점에 따라 다 다르다. 북한산을 동서남북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른 것처럼. 불가능한 언론의 객관성을 마치 가능한 것처럼 포장하는 데서 문제가 발생한다. 특정 이념을 지향(주관적)하면서도 객관을 빙자해 때로는 심판처럼 행세하려 든다. 언론이 활용하는 객관용 포장재는 ‘취재원’이다. 기자의 이념성향에 맞는 취재원의 말만을 인용해 그 사안을 일반화하려 든다.

 

기자는 여러 방식으로 다양한 취재원을 만난다. 사건 현장이 가장 바람직 하지만 모든 사건 현장에 다 있을 수는 없다. 각종 통신수단을 활용해 취재원의 목소리를 듣는다. 코로나가 창궐한 후로는 비대면 취재가 더 느는 추세다. 어떤 방식으로 취재를 했던 문제는 기사 방향을 미리 설정하고 거기에 맞는 취재원만을 인용해 객관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것이다.

 

한 예로 KBS시청료 인상 문제는 찬반의 대립이 있다. 이런 사안을 보도하면서 특정 입장을 대변하는 전문가 의견만을 인용한다. 그 전문가의 이념 성향을 알 수 없는 독자들에게 방송계 전체 의견인 것처럼 포장한다. 취재원의 다양성과 관점의 다양성은 언론의 공정성을 담보하는 전제다.

 

박재영 고려대 교수와 이나연 성신여대 교수는 공동으로 연구한 논문을 통해 이 문제를 실증했다. 한국신문은 미국이나 영국신문에 비해 취재원 활용수가 현저히 적다. 국내 신문이 뉴스 1건당 평균 취재원 수는 3.3명으로 뉴욕타임스의 12.1명의 1/3에도 못 미친다. 영국신문 더타임스 6.1명의 절반이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관점이 다른 취재원의 목소리가 반영되기 어렵다는 반증이다. 관점의 다양성을 조사한 결과도 흥미롭다. 한국신문기사 60%가 단일한 관점만을 제시했고, 복합적 관점을 제시한 기사는 17.1%에 그쳤다.

 

익명 취재원 활용 폐습도 문제다. 기사에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다’ ‘한 전문가가 말했다’라는 표현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기사는 실제로 취재를 했는지 조차 의심해야 한다. 기자의 작문(조작 인용)일 수가 있는 것이다. 익명 취재원은 언론의 신뢰를 잠식하는 좀이다. 기자는 “어머니가 사랑한다고 말하면, 그것도 확인하라”는 말이 있다. 기사에 진실성을 담으라는 언론의 경구다. 익명 취재원 활용은 내부고발자나 취재원 보호 등에 한정 돼야 한다. 익명을 활용하는 기자들의 잘못된 관행이 팽배하고 있음에도 이를 지적하는 언론 내부 메커니즘도 고장이다. 이런 게 고쳐지지 않고서는 언론의 신뢰회복은 요원하다.

 

관점이 다른 사안을 기자가 결론을 내려고 해서는 안 된다. 독자를 끌고 가려는 욕망을 버려야 한다. 기자는 독자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도움만 주겠다는 절제력을 발휘해야 한다. 한국언론이 영국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평가에서 꼴찌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원인 중의 하나가 절제하지 못함에 있다. 권위는 절제와 정비례한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