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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의 하늘의 窓(창)] 폭력이 내장된 시장주의 그리고 “래디칼”

  • 등록 2021.04.16 06:00:00
  • 16면

 

“부르주아 체제의 헤게모니를 가진 소수 지배세력은 물리적 폭력을 발동하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계급(노동자 계급)을 속인다. 이들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이 제대로 형체를 갖출 수 없도록 확실한 방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건 부르주아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불가피한 작업이 된다.”

 

헝거리 출신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게오르그 루카치가 쓴 《역사와 계급의식(History and Class Consciousness)》의 한 대목이다. 이대로라면 자본주의의 지배세력은 “속임수를 제도화”해야만 한다. 왜 그래야 할까?

 

“날이 갈수록 부르주아 체제의 모순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이에 도전하는 세력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 《역사와 계급의식》, 루카치의 고뇌

 

하지만 그 도전은 그냥 되지 않는다. 노동자계급의 의식은 지배계급에 의해 끊임없이 세뇌되고 자본주의 전체의 구조와 모순에 대한 인식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교육, 그리고 지배 사상의 작동이 매일 일어나기 때문이다. 지배계급이 손에 쥐고 있는 언론은 그 대표적인 도구다.

 

감수성까지도 그렇게 만들어져간다. 무엇을 좋아해야 하는지, 무엇을 혐오해야하는지 조차 입력된다. 심지어 자신을 지원하는 운동과 조직까지도 혐오하게 만든다. 노동자 계급이 노동자들을 위한 정책을 내세우는 진보정당에 등을 돌리게 하는 냉전체제의 “빨갱이 선동”이 그런 경우다. 자신의 친구와 적을 몰라보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결집할 수 없게 한다.

 

7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이들의 손에 《역사와 계급의식》은 비밀 경전처럼 들려져 있었다. 영어판 영인본으로 돌아다니던 책이다. 마르크스 관련 서적을 지니는 것 자체가 감옥행이었던 시절, ‘루카치’라는 이름은 진보적 사유의 한 암호처럼 여겨진 때였다.

 

접근이 봉쇄된 마르스크에 대한 관심 때문이기도 했지만 《역사와 계급의식》의 의미는 또 따로 있었다. 자신의 사회경제적 처지에 따라 의식이 형성되는 것이 마땅할 진데 왜 노동자들이 보수 또는 파시스트 정당을 지지하는가에 대한 중요한 논거를 제시해준 책으로 받아들여졌다.

 

“래디컬(radical)”이라는 말의 뜻도 이 책을 통해 깨우칠 수 있었다. 마르크스가 쓴 《헤겔의 법철학에 대한 비판》의 한 문장이 인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래디칼’하다는 것은 문제의 근본 뿌리로 들어가는 작업이다. 인간에게 그 뿌리는 인간 자신이다.”

 

뿌리의 라틴어 어원 ‘radix’에서 나온 래디칼은 속도의 급진성을 포함하고 있기도 하지만 정작은 “본질적 접근”을 뜻했던 것이다. 문제는 자본주의 체제의 교육이 바로 이 근본을 파고드는 접근을 가로막고 실체와 인식 사이에 베일을 치고 진실을 가리고 있다는 점이다. 모든 것은 이른바 “물신화(物神化/reification)”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사실 이 “물신화”라는 말을 이해하는 것은 당시 쉽지 않았다. 루카치의 주장은 계속 이어진다.

 

“노동자들은 인간이 아니라 끊임없이 사물처럼 되어버리고 결국 상품 가치로만 평가되는 존재가 되고 만다. 이렇게 인간은 비인간화되고 그의 영혼까지 절름거리게 만들며 기진맥진하게 해버린다. 계급의식을 장착하고 이에 대해 저항하지 않는 한.”

 

자본주의의 지배력이 온 사회를 구석구석 쥐고 흔드는 상황을 경험하게 된 이후 “물신화”가 무엇인지 절감되기 시작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비극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모든 것은 돈으로 환산되는 이해관계로 판단하고 인간적 감정과 사유 그리고 태도는 사라진다.

 

그런 것들은 이해관계를 관철하는데 도리어 방해가 될 뿐이다. 이러면서 사람이 기계에 찢겨나가고 깔려 죽는 일이 일상이 된다. 쓰고 버리는 “일회용 인간”이 넘쳐나고 있다.

 

- 물신화의 폭력

 

결국 사람들은 이런 체제가 “운명적”이라 근본적으로 바꿀 방법은 없고 정책을 변화시키면 뭔가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정치는 그런 기대를 가진 표심에 따라 떠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폭력이 내장되어 있는 체제라면 그런 정치는 피상적인 처방일 뿐이다.

 

마르크스는 《자본론》 1권에서 자본주의 형성 초기 자본이 모아지는 과정을 “자본의 원시적 축적(primitive accumulation of capital)”이라고 불렀다. 그는 이 과정이 “폭력”이라고 단언한다. 자본주의가 제국주의 체제로 진입하는 과정은 더욱 그리했다.

 

“스페인, 포르투갈, 네델란드, 프랑스 그리고 영국은 그 순서대로 노골적인 폭력을 동원했다. 그 폭력의 이름은 ‘식민지 체제’다. 그리고 이 체제는 국가의 권력을 통해 이루어졌다. 봉건체제에서 근대체제로 전환해나가는 과정은 그런 폭력이 산파 역할을 했다.”

 

물건을 거래하면서 국가가 시장을 자연스럽게 놓아두고 상업자본이 얌전하게 쌓여가면서 그걸로 부를 축적해 부르주아 체제가 성립해나간 것이 아니라는 역사분석이다. 엄청난 국가폭력이 게재된 체제가 바로 부르주아 계급이 주도하는 시장주의 체제라는 것이다.

 

이걸 좀 더 분명하게 밝혀낸 것이 바로 《거대한 전환 (Great Transformation)》을 쓴 칼 폴라니(Karl Polyani)다. 중세 봉건체제에서 농민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공유지를 종획운동으로 번역되는 영국의 “인클로우져 무브먼트(Enclosure Movement)”로 해체시킨 사건의 정체를 정밀하게 밝혀낸 것이다.

 

그건 정치와 법으로 농민들의 것을 영주의 것으로 말뚝을 박아 접근을 금지시키고 사유화(私有化/privatization)한 명백한 강탈행위였다. ‘인클로우저 법안(Enclosure Act)’은 그 강탈행위를 합법화한 것이었다.

 

공유지에서 생존수단을 강구하고 있던 농민들은 쫓겨나 거지, 부랑자, 강도, 처지가 더 나빠진 농노, 저임 노동자로 전락하면서 그 삶은 비참해지고 만다. 마르크스가 짚은 바로 그 폭력이 낳은 필연적 결과였다. 근대 자본주의 시장사회의 탄생에는 바로 이 폭력구조가 역사적으로 내장되어 있다. 가난은 그 폭력의 열매다.

 

- 《거대한 전환》, “계획된 시장사회”

 

 

칼 폴라니는 이를 “근대 국가의 지배세력 부르주아 계급의 정치행위”라고 불렀다. 이들이 장악한 의회가 만든 법은 시장사회의 주도권이 누구에게 속해있는지를 명백히 했다. 그리고 그 의회는 시장사회의 구축과정에 동원한 폭력의 강제성을 법의 이름으로 관철해나갔다.

 

1994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는 《거대한 전환》 출간 50주년을 맞이해 국제 세미나가 열린다. 이 자리에서 칼 폴라니의 딸 폴라니 레빗은 다음과 같이 시장주의의 핵심을 짚는다.

 

“《거대한 전환》은 ‘자유방임주의(laissez-faire)’를 내세우는 시장주의 체제가 시장 자체의 자연발생적 방식이 아니라 ‘계획된 것’임을 입증해준다. ‘자발적’인 것은 도리어 이러한 시장주의 체제에 대한 사회적 통제운동이다.”

 

오늘날 “민영화”로 번역되는 영어의 원 단어는 “사유화”를 의미하는 “privatization”이다. 민영화는 민간 경영이라는 번역으로 공적 자산을 사유화하는 대자본의 지배구조를 은폐하는 말이다. 이는 법과 정치로 합법이 되고 거대한 자본축적의 동력으로 가동하고 있다. 칼 폴라니의 말대로 대자본의 지배구조를 위해 “계획된 사유화”다.

 

1920년 오스트리아 비엔나는 “붉은 도시”였다. 사회주의의 진로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고 훗날 신자유주의의 태두가 되는 하이예크의 스승 루드비히 폰 미제스와 그 반대진영의 논전이 펼쳐졌고 여기에 칼 폴라니가 끼어 있었다.

 

1930년대 대공황을 겪고 2차대전이 종료될 시점인 1944년 두 권의 중요한 책이 나온다. 하나는 하이예크의 《노예로 가는 길》, 다른 하나는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이었다. 당시 위세를 떨쳤던 경제학자는 케인즈였는데 하이예크는 애초 케인즈(캠브리지대학)의 논리를 격파하는 작업을 위해 영국 런던정치경제대학의 초빙을 받아 이 책을 집필했다.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주장한 케인즈와는 달리 하이예크는 자유방임주의를 옹호하는 논리를 편 것이다.

 

하이예크의 책은 출간 당시 별 관심을 끌지 못했다가 1970년대에 밀턴 프리드만을 중심으로 한 미국 시카고 학파를 통해 강세를 얻는다. 신자유주의의 원조가 된 것이며 그 실험은 칠레에서 사회주의 정권 아옌데를 쿠데타로 축출한 피노체트 체제에서 폭력적인 실험을 추진하게 된다. 대자본과 군의 동맹체제를 통한 신자유주의의 출범이었다.

 

공동체는 여지없이 파괴되고 노동운동은 궤멸되어갔으며 민주주의는 뿌리채 뽑혀나갔다. 신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도저히 양립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숨겨진 외피는 파시즘이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비정한 현실에서 우리는 누구의 손을 들어주게 될까? 하이예크일까, 폴라니일까?

 

- 어느 길로 갈 것인가?

 

우리의 근대자본주의 체제는 악랄한 식민지 체제의 폭력성까지 내재하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박정희 체제가 작동했고 90년대 이후로는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체제의 보이지 않는 수탈체제가 가동하고 있다. 게다가 우리는 분단에 기반한 미국의 군사력에 지배받고 있으니 그 폭력의 성격은 다층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교육은 역사를 변방에 내몰았고 비판적 지성은 도구적 기능으로 대체되고 있으며 파편적 현상에 몰두할 뿐, 총체적 구조에 대한 인식은 없다. 그건 분명한 “속임수의 제도화”다. 언론은 이 속임수를 매일 자행하고 있는 중이다.

 

누가 어떤 법을 만들어서 공공의 자산을 자신의 것으로 사유화하게 하는지 알아야 한다. 어떤 속임수가 교육으로 포장되고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다양한 폭력을 내장하고 있는 시장사회의 진상을 끊임없이 폭로해나가고 이를 공유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언론이 매일 먹여주는 허위를 진실인 줄로 알고 받아먹고 있는 젊은 세대들을 구해내야 한다. 역사를 배제한 몰역사적 사유의 무지를 벗겨내야 한다.

 

다시 루카치의 말을 들어본다.

 

“애초 자본주의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 기원을 드러내는 순간 비판철학은 시동을 걸게 된다.” ‘래디칼’해야 한다. 그래야 답이 보인다. 폭력으로부터 인간, 우리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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