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5 (일)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윤종준의 경기여지승람(京畿​​​​​​​輿地勝覽)] 8. 성부산(星浮山) - 별이 솟아오른 산


성부산은 성남시 수정구의 봉국사(奉國寺)가 있는 산이다. 서기 661년의 역사적 사건으로 인해 생겨난 지명으로 아직 일반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름이다. 봉국사는 고려 현종 때 처음 지어졌는데, 조선의 불교억압 정책으로 사라졌다가 조선 현종 임금의 공주인 9살 명혜와 13살 명선이 석달 사이에 천연두로 죽게 되니 공주의 원찰로 재건되었다.

 


신라 태종무열왕 김춘추가 백제를 멸망시킨 후 한산성에 군사를 배치하였는데, 서기 661년 5월 11일부터 고구려 장군 뇌음신(惱音信)과 말갈 장군 생해(生偕)가 이끄는 연합군이 한산성의 신라군을 포위하여 40여일간 맹렬한 공격을 퍼부었다. 날쌔고 용감한 고구려군이 활 뿐 아니라 돌을 쏘아 날리는 도구인 포석(砲石)으로 성을 파괴하니, 성주 동타천(冬陀川)을 비롯한 군사들과 백성들이 죽기 살기로 막아 냈지만, 화살은 떨어지고 먹을거리는 바닥이 났다. 마치 조선군이 청나라 군대 앞에서 맥을 못 추었던 병자호란보다 1천 년 전에 치열한 전투상황이 전개된 것이었다. 곧 성이 함락당하거나 굶어 죽을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니 남녀노소가 서로 붙들고 울고불고 아우성이었다.

 

이런 상황을 보고받은 무열왕은 신하들과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이때 김유신 장군이 "일이 다급하네요. 이 일은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고, 다만 신의 힘을 빌려야 하겠심더" 하였다. 이에 소두방산에 단을 설치하고 신술(神術)을 베풀었더니 갑자기 큰 항아리 같은 불덩이가 단 위에서 솟구쳐 올라 살별처럼 날아가서는 적의 포석기 30여 곳에 벼락처럼 쏟아져 내렸고, 포위망은 풀렸다.

 

이 사건은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기록에 모두 전하는 이야기로 특히 ‘삼국유사’에는 이 날이 6월 22일이라고 기록하였다. 

 

 

성부산 사건보다 앞서서 선덕여왕 16년(서기647)에 비담의 난이 일어났을 때는 하늘에서 별이 월성에 떨어져 군사들의 사기가 떨어졌다. 이 때 김유신 장군이 밤중에 큰 숯불을 연에 매달아 날리면서 별이 다시 올라갔다고 선전하여 군사들의 사기를 회복한 전설도 있다. 

 

김유신 장군이 신술을 부린 소두방산은 광주와 이천 사이의 산인데, 소당산 또는 정개산이라고도 한다. ‘중정남한지’에 정개산(鼎蓋山)은 ‘형세가 높고 우뚝하며, 흡사 솥뚜껑 같이 생겼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다’라고 하였다. 광주와 이천 사람들은 번갈아 가며 2년에 한 번씩 산신제를 지내는데 일제강점기에도 지내왔고, 6.25때도 전사자나 마을에 피해가 없었던 것이 산신제를 지낸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성부산 지명은 처능(處能)이 지은 ‘봉국사신창기’에도 ‘성부산 봉국사’라고 기록하고 있다. 봉국사는 조선 현종 왕비 명성(明聖)왕후가 두 딸의 명복을 빌기 위해 금강산의 축존대사에게 광주 성부산에 짓게 한 절이 봉국사임을 밝히면서 이는 애통한 정에서 비롯된 것임에도 숭불 행위라고 비판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반박한다. 

 

숯불을 매달아 연을 날린 일화와 함께 고구려군과 싸워 대역전승을 연출한 김유신 장군의 성부산 이야기를 여러 가지 문화콘텐츠로도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경기신문 = 김대성 기자 ]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