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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행 칼럼]조선일보 기자들에 대한 궁금증

 

 

조국 전 장관 부녀의 삽화를 성매매 기사에다 쓴 조선일보 사태를 보고 실로 오랫동안 품었던 궁금증이 터져 나왔다. 조선일보 기자들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일까? 보통 사람들과 같은 사람들일까?

 

이 궁금증은 언제부터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조선일보 기자들을 투명 인간 취급을 해왔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정말이지 그들은 내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가 닿을 수 없는 머나먼 나라의 차갑기 그지없는 사람들이었다. 감히 다가설 수 없는 무서운 사람들이었다.

 

그러다 이번에 그들에 대한 궁금증이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툭 터지고 마는 봉숭아 씨처럼 터졌다. 엉뚱하게도 그들은 그들 자신을 사랑할까, 하는 의문. 곧바로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답이 메아리쳤다. 왜일까?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십중팔구 자신을 객체화한다. 준열하게 자신을 꾸짖는다. 나는 고정불변의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다른 나와의 끊임없는 부딪힘 속에서 날마다 새롭게 탄생하기 때문에 자신과의 대화는 필수요소다. 조선일보 기자들은 다른 나와 아름다운 투쟁을 할까? 그런 것 같지 않다. 그랬다면 조선일보가 한 면을 통틀어 사과하는 일이 있었을까? 조 전 장관에게 10억 원의 손해배상소송을 당하는 일이 있었을까? 앞으로 미국 연방 법원을 통한 1000억 원의 손배소를 당하게 될지도 모르는, 회사가 거덜 날지도 모르는,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 서 있을까?

 

조선일보 노조는 이번 사태에 대하여 노보를 통해 온오프 기사 량이 많아 데스킹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시인했고 그 점을 매우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기술적·양적 문제 이면에 있는 질적 문제에 대한 성찰은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었다. 대형 오보 사고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들의 자신들에 대한 꾸짖음은 꾸짖음이 아니다. 조선일보 기자들의 자신들에 대한 애정, 회사에 대한 애정이 빈곤하다는 방증 아닐까?

 

우리는 일터를 통해 사람들과, 세상과 연결된다. 일터가 빵만을 해결하는 곳이 아니라는 얘기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일터에서 타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나로 거듭난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부정, 자기비판은 나를 향해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이런 과정이 없다면 나는 고립돼 있는 인간, 무인도의 로빈슨 크루소와 다를 바 없다.

 

조선일보 기자들도 뭇사람들처럼 자기부정의 과정 속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드러난 그들의 목소리에는 그런 흔적들이 묻어있지 않은 것 같다. 그것이 자기반성을 통해 오류를 고쳐나갈 수밖에 없는 존재인 인간으로서 두렵고 소름 끼친다. 그래서 기자윤리나 정의 등을 그들 앞에서 들먹이는 것은 부질없는 일일 것이다.

 

 

"사람은 우환에서 살고 안락에서 죽는 것." 요절한 괴짜 시인 김관식의 시 '병상록' 한 구절이 눈부시다. 우리는 근본인 것을 하찮은 것으로 치부해 인간다움마저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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