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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에서] 여름 방학 숙제

 

어릴 때도 방학은 무척 기대되는 이벤트였다. 늦잠을 자고 하루 종일 밖에서 실컷 뛰어놀 수 있으니까 손을 꼽아가며 방학을 기다렸다. 마냥 놀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때는 방학 숙제가 정말 많았다. 매일 일기 쓰기와 책 읽고 독후감을 몇 편 이상 작성하기는 1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빠지지 않던 숙제였다. 고학년이 되자 주제를 정해서 탐구해 오기와 문제집 한 권 풀어오기가 추가되었다. 당연히 방학 내내 아무것도 안 하다가 개학이 다가오면 이 모든 걸 다급하게 해결했다.

 

다른 건 몰아서 해도 지장이 없었는데 일기만큼은 그게 어려웠다. 일기의 내용을 채우는 건 아침 먹고 놀고 점심 먹고 뛰어다니고 저녁때 TV 봤다는 내용으로 채울 수 있었다. 문제는 날씨였다. 이미 지나간 날씨는 거짓말이 어려웠다. 그때는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여서 신문 같은 매체에나 날씨가 적혀 있었다. 앞일을 걱정했다면 그날그날 일기는 안 쓰더라도 날씨는 적어놓았을 텐데 그 정도의 계획조차 세우지 않을 만큼 아무 생각이 없었다. 학교 가서 친구의 일기를 보고 날씨를 베끼기로 하고 개학 전날 밤까지 열심히 일기를 써서 검사를 받았다.

 

교사가 되고 보니 방학 숙제는 담임교사 재량이었다. 처음에는 같은 학년에서 공통으로 정한 일기와 독후감 쓰기, EBS 시청하기 같은 방학 숙제를 그대로 냈다. 개학식 날 방학 과제를 발표하는 시간도 꼭 가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저런 과제들은 하고 싶은 사람만 원하는 숙제를 골라서 해오는 걸로 바꿨다. 처음 바꿨을 때는 정말 일기를 안 써도 되냐고 학생들에게 확인 문자가 왔었다. 개학하면 대부분의 친구들이 한두 개의 과제를 해오거나 아무것도 안 해왔는데, 공부를 사랑하는 소수의 학생들은 모든 방학숙제를 다 했다. 나였으면 아무것도 안 하고 놀았을텐데 요즘 초등학생들은 대단하다.

 

우리 반에는 공부하는 과제 대신에 꼭 해야 하는 필수 과제들이 있다. 8가지의 과제 중에 2개를 골라 방학 중에 실행한 다음에 소감을 준비해와야 한다. 과제는 다음과 같다. 1) 일주일에 한 번 노을 지는 거 보기. 2)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또는 형제자매들과 같이 신나는 노래 틀어 놓고 춤추기, 3) 부모님에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는지와 이유 물어보기, 4) 숲에서 나무를 껴안아 보고 나무와 이야기하기, 5) 집안의 욕실과 변기 깔끔하게 청소하기, 6) 내가 가고 싶은 곳 인터넷으로 찾아가기, 7) 혼자 밥하고 반찬 챙겨 가족들 상 차리기, 8) 논, 밭, 산길 등의 흙을 맨 발로 밟아보기.

 

8가지에서 몇 개를 제외하면 내가 어린 시절에 친구들과 자주 하고 놀았던 것들이다. 밖에서 놀다가 노을이 지는 걸 구경하고 괜히 흙길에서 맨발로 뛰어다녔다. 가끔 동생하고 춤을 추거나, 나무에 매달리기도 했다. 지금은 과제로 내주지 않으면 아이들이 평생 경험할 일이 없을지도 모르는 것들이다. 방학식 날 하고 싶은 과제를 2개씩 고르라고 했는데 8개 모두 누군가의 선택을 받았다. 재밌어 보인다며 2개 이상의 숙제를 고른 친구들도 있었다. 방학이 끝나면 아이들의 다양한 경험을 들을 수 있을 거다. 그 이야기들이 몹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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